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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7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했다. 8.8개각은 이명박 정부 집권 후반기의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참신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6.2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소통과 화합 주문을 외면한 '친위내각'이라는 반응이 더 우세하다. 이번 개각의 문제점을 분야별로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말>

개각을 하면서 특정인들을 바꾸지 않아서 '화제'가 되는 경우도 드물다. 청와대가 8일 국무총리와 장관 7명을 바꾸는 중폭 이상의 개각을 하면서도 현인택 통일, 유명환 외교, 김태영 국방 등 외교안보라인은 전원 유임시켰다. 대부분의 언론이 김태호 총리 내정자 등을 소개하기에 바쁜 가운데서도, 제각기 색깔대로 "대북강경·한미동맹 올인, '이대로 간다'", "'대북출구전략 없다' 천안함 제재 계속될 듯"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청와대의 개각방침이 공개된 지난 한 달 동안 이들 중 최소 한 명은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세 장관 모두 교체할 수 있는 명분은 차고 넘쳤다. 지난해 2월 취임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8월 북한 조문단으로 온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것 외에는 사실상 '공식적 대북창구'로서는 별로 한 일이 없다. 그나마 이 만남도 북측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는 쪽이었다.

 

지난해 10월 이상득-김양건 라인이 싱가포르에서 맺어온 '남북정상회담 가합의' 내용에도 비판적인 쪽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내에서도 "현인택, 목적 없이 북한에 그저 강경" 비판

 

이제 통일부에 대해서는 '분단관리부'라는 표현을  넘어 '반통일부'라는 비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청와대 내에서조차 그와 김태효 안보전략비서관에 대해 "북한에 대해 강경한 것도 좋은데, 목적 없이 그저 강경하기만 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통일부에서는 "이렇게 한가한 것이 나중에 부서 폐지의 근거가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를 유임시킨 것은 역설적으로 북한으로 보인다. 북한이 그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통일 역적", "공동성명의 파괴자"라고 비판하자, 청와대는 그를 교체할 경우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난형난제다.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회부했으나, 애초 목표인 제재결의안 도출을 통한 국제제재 유도는 고사하고 북한을 공격주체로 명시하는 데도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인 그는 줄곧 '미국 올인 외교'를 해왔고 특히 천안함 사건 때는 그 강도를 더욱 높였지만, 이는 중국 관영언론들이 한국에 대해 '망령', '보복은 시간문제'라는 막말을 하는 상황으로 나타났다.

 

한국 외교 곳곳에 구멍... 유명환 '막말'까지

 

러시아는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자체조사보고서를 미국과 중국에는 전달하면서도 우리에게는 주지 않아,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요약본을 전달받는 '왕따'를 당했다. 또한 리비아에서는 국정원 직원의 스파이 혐의와 관련해 카다피 국가원수가 '단교'를 운운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동참 문제로 주한 이란대사가 "만일 한국이 제재를 가한다면 한국의 기업들이 이란 시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국 외교 곳곳에 큰 구멍이 난 형국이다.

 

유 장관의 입도 큰 문젯거리다.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투표한 젊은 층을 겨냥해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라"고 하는가 하면, 지난해 4월에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천정배 민주당 의원에 대해 "여기 왜 들어왔어, 미친 X"이라고 했다. 또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문제로 격하게 대립하는 의원들을 향해 "기본적으로 다 없애버려야 해"라고 국회를 부정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반기에는 6자회담 재개노력이 시작될 것이고, 대승호 나포 사건에서 보이는 것처럼 남북관계 악화의 후유증이 본격화될 텐데 지금의 외교, 통일 장관으로 이에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현재의 외교안보 현황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경계에 실패한 장수, 김태영도 용서

 

김태영 국방장관의 유임은 거의 할 말이 없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46명의 젊은 장병이 사망한 천안함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었음에도 유임됐다. '경계에 실패한 장수'를 확실하게 용서한 것이다.

 

D&D포커스의 김종대 편집장은 "군의 사기를 고려했다고 하지만 진보니 보수니 하는 차원을 떠나서 이해할 수 없는 인사"라면서 "국방개혁 차원에서 보면,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나 안보총괄점검회의를 만들고 문민장관도 검토했지만, 인재풀도 바닥났고 겁이 나서 새로운 시도도 못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국방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상징으로 해석된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이들의 유임배경을 G-20 정상회의 준비의 일관성 차원이라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난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의 '전쟁기념관 대국민담화' 때부터 이들의 유임은 예고됐던 일로 봐야 할 것 같다.

 

6.25를 기념하는 이 전쟁기념관에서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의 UN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방침, 개성공단과 영유아 지원을 제외한 남북 간의 모든 교역·교류 중단 등을 선언했다. 대북 포용정책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7·7선언 이전으로 남북관계를 되돌리는 것이었다. "단기적으로는 옳은 조치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신중론은 무시됐다.

 

6월 4일 안보리 회부 사실 발표도 이 대통령이 직접 했다. 당시 외교부는 이날 자정까지 관련 기사에 엠바고(보도유예)를 걸어놨지만,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9차 샹그릴라 안보대화에 참석한 이 대통령은 오후 8시쯤 기조연설에서 직접 발표해버렸다. 대체로 국방장관급이 모이는 샹그릴라 안보대화에 '국제여론 조성'을 내걸고 직접 참석할 정도로 그는 적극적이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천안함 사건 후속조치에 대해 이 대통령이 가장 강경하다는 말이 공공연했다.

 

MB, 천안함 후속조치에 가장 강경

 

이처럼 강경흐름을 주도한 이 대통령으로서는 외교안보라인 장관 교체가 천안함 사건 후속조치 실패에 대한 시인과 대북정책에 대한 방향전환으로 해석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난달 13일 대통령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을 대폭 교체하면서도 김성환 수석, 김태효 대외전력비서관 등 외교안보수석실은 손대지 않았다.

 

결국 청와대와 내각의 외교안보라인 유임은 대북강경책과 미국 올인외교를 바꾸지 않겠다는 뜻인 동시에, 이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준 면죄부인 셈이다. 국민들은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정부의 지나친 대북강경책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이를 무시한 것이기도 하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임태희 실장이나 이재오 의원이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남북관계의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세 장관과 국정원장이 그대로라는 점에서 금년 말까지는 물론 이 대통령 임기 내내 같은 기조가 유지될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의 힘겨루기를 강화하기 위해 핵무기 소형화, 경량화를 시도하면서 핵능력을 더욱 강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흔히 남북관계나 국제정치에서는 바로 내일 일을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국면에서 세 장관(또는 일부)의 교체를 계기로 남북대화가 성사된다 해도, 남북 간 신뢰가 완전히 깨져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 결과를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태그:#현인택, #유명환, #김태영,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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