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나라에는 벽화마을이 곳곳에 있는데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는다. 사실 말이 벽화마을이지 도시의 옛 추억을 대신 기억해주고 있는 달동네로, 언제 재개발로 사라질지 모르는 애환이 깃든 마을이기도 하다. 그런 마을들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내가 사는 서울에, 저멀리 남부지방의 통영과 강원도 해안가 등지에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하기도 한 벽화마을의 공통점이라면 많은 사람들의 작은 마음이 모여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인 '혼자 꿈꾸면 꿈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가 명언으로 실현되는 현장이라고 할까.

여러 사람들의 붓과 손길로 초라한 담벼락에 그림을 그릴 때마다 동네는 다시 태어난다. 그런 동네가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암골목 1번지에 있다. 청주의 어머니산이라고 불리는 우암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수동이라는 동네로 이웃 우암동과 더불어 수암골이라고 한단다. 수동은 해방 직후 중국, 일본에서 돌아온 귀향민과 한국전쟁의 피란민 등이 뒤섞여 마을을 이뤘다고 한다.

동네를 오르는 길에 마주친 재치있고 깜찍한 그림들에 웃음이 난다.
 동네를 오르는 길에 마주친 재치있고 깜찍한 그림들에 웃음이 난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이때부터 수암골은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골목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청주의 대표적 달동네요, 빈민가로 꼽혔다. 1970년대에 재개발, 2000년 초 주거환경 개선 사업이 이뤄졌지만 달동네라는 별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달동네에 2007년 골목마다 벽에 꽃이 그려지면서 주민들 얼굴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이런 소식을 제일 먼저 알고 찾아오는 사진가들이 동네를 촬영하면서 알음알음 소문이 퍼지더니 결국 TV 드라마에 배경으로 나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요즘은 아예 '김탁구 마을'이라고 부른다. 초라한 담벼락이 캔버스가 되고 재개발로 철거예정인 동네가 벽화마을로 남아있게 되다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예술의 힘이란 참 대단한 것 같다.

작은 텃밭과 좁은 골목 저 밑으로 청주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작은 텃밭과 좁은 골목 저 밑으로 청주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꼬불꼬불 골목길, 허름하고 기운 담장, '니야까'도 겨우 올라왔던 동네에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떼 지어 붓을 들고 몰려와 금 간 담벽이고 대문이고 전봇대고 쓰레기통이고 버려진 화분이고를 가리지 않고, 들입다 그림 그리고 색칠했다고 한다. 순식간에 동네 전체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80여집 저마다 다른 필체로 사는 사람의 이름이 적힌 나무 문패까지도 이채롭다.

무표정했던 골목의 벽에 그림과 글이 얹히면서 마을에 생기가 돌고 있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합심하여 주민들에게 풍물을 가르치고 전시회를 여는 등 수암골을 문화 사랑방으로 키워가고 있다고 한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마을에 구경온 사람들을 구경하던 어느 할아버지는 "그림이 마을을 이렇게 바꿔 놓을지는 꿈에도 몰랐다"며 "전국에서 온 어른, 아이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사람 사는 마을이 됐다"고 흐뭇하게 웃으신다.

수암골 벽화마을엔 귀여운 어린이들이 많이 나오는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많다.
 수암골 벽화마을엔 귀여운 어린이들이 많이 나오는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많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드라마 <카인과 아벨>(에스비에스)에 이어 최근 방송되고 있는 <제빵왕 김탁구>(한국방송)가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마을은 그야말로 전국에 '떴다'. 평일에는 1000여 명, 주말에는 4000~5000여 명이 마을을 찾는다고 한다. 동네 가게 앞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던 어느 할머니는 "50여 년을 이 마을에서 살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는 처음"이라고 하신다. 외지인들이 집 앞을 기웃거리며 왔다 갔다하니 생활하는데 불편하시기도 할 것 같은데 그런 말씀은 안 하시니 고맙다.   

TV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김탁구가 빵을 만드는 곳인 수암골 초입의 세트장 팔봉제과점은 실제 빵을 팔면서 덩달아 '대박' 행진을 하고 있다. 내가 찾아간 이날도 남녀노소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빵과 음료수를 사가고 있었다. 제과점에서 파는 빵도 요즘같은 세련된 빵이 아닌 보리빵, 옥수수빵, 곰보빵 등을 큼지막하게 구워 내놓았다. 

무표정했던 골목의 벽에 그림과 글이 얹히면서 마을에 생기가 돌고 있다
 무표정했던 골목의 벽에 그림과 글이 얹히면서 마을에 생기가 돌고 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달동네는 추억속의 정겨움과 함께 진한 애환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달동네는 추억속의 정겨움과 함께 진한 애환도 느끼게 하는 곳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수암골에서 눈인사를 하며 마주치는 주민 대부분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예쁜 벽화들로 동네가 한결 환해지고 산뜻해졌지만, 골목 한 구석에 앉아 저 아래로 펼쳐진 청주 시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백발의 할머니를 만나기라도 하면 오래되고 진한 삶의 애환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여느 달동네처럼 30분쯤 골목을 기웃거리면 동네 그림이 그려진다. 닫힌 듯 열린 녹슨 철대문, 쓰러질 듯 기대선 담벽들과 대문짝만하게 적힌 '근면·자조·협동' 표어 따위들이 옛 풍경화 속으로 끌어당긴다. 산비탈로 촘촘히 손수건만한 지붕을 쓴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사이를 겨우 비집고 나간 골목길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렇다고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신기하게도 길들은 어떻게든 서로 만난다. 처음 찾아온 사람도 길을 잃게 하지 않는 골목이 있는 곳이 수암골 벽화마을이다.

오래된 동네에는 '신비한 돌 할머니'나 '선녀'들이 주민들을 상대로 점을 쳐주고 심리상담을 하는 집이 꼭 있다.
 오래된 동네에는 '신비한 돌 할머니'나 '선녀'들이 주민들을 상대로 점을 쳐주고 심리상담을 하는 집이 꼭 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 8월 21일에 다녀왔습니다.
* 청주 수동 수암골 찾아가기 :
청주 시외.고속버스 터미널 앞 버스 정류장 - 청주시청 - 우암초등학교 하차 도보 5분



태그:#수암골, #청주, #달동네 , #벽화마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