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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명성황후, 제국의 아침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 KBS역사드라마 해상촬영지 태조 왕건, 명성황후, 제국의 아침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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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한우에 안동 소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이튿날(8월 22일) 오전 안동댐으로 향했다. 공사가 한창인 안동댐은 날씨가 더워서인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고 한산한 느낌마저들었다. 안동댐 호수를 바라보면서, 이곳에 있는 야외 상점(리어카)에서 엿과 구운밤을 사, 인근 벤치에서 입놀림을 했다.

불볕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할아버지가 그늘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댐 호수 수상집에는 수상스키와 보트를 즐기는 마니아들이 간간이 물길을 가르고 있었다. 바로 인근에 KBS 드라마 해상촬영지가 있었다. 태조 왕건, 명성황후, 제국의 아침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푯말이 보이기도 했다.

해상촬영지를 보니 잘 꾸며져 있었다. 댐 관람이 끝나고 안동 중심가로 옮겨 전통시장에서 먹은 '선지해장국' 맛이 어제 저녁 마셨던 술로 인한 갈증을 말끔히 해소시켜주었다. 후배는 이곳 전통시장에서 밀짚모자와 갈아 입을 옷을 사기도 했다.

안동댐 휴게소에서 바라본 안동댐 호반
▲ 안동댐 호수 안동댐 휴게소에서 바라본 안동댐 호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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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너무 더웠다. 더위를 달래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향한 곳이 안동에서 최고의 수질을 자랑한 학가산 온천이었다. 이용료가 5000원이니 비용도 제법 쌌다. 우람한 온천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피서를 즐기는 듯했다. 면적도 상당히 넓었다. 특히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야외 온천탕은 제법 잘 꾸며져 있었다. 냉탕과 온탕을 반복했다. 시원한 냉탕은 더위를 식히기에 충분했다.

특히 미끈미끈한 온천수가 몸에 닿으니 피부의 촉감이 20~30대 젊은이처럼 탱탱해진 듯했다. 주변에 비치해 놓은 하얀 야외용 침대에 누워 있으니 자연스레 눈이 감겼다. 3시간이 지났을까. 후배가 깨웠다. 좀 더 자고 싶었지만 할 수 없이 다음 일정을 위해 일어 날 수밖에 없었다. 안동 그자체가 관광지였기 때문이었다. 학가산온천 로비에 먹음직스럽고 통통한 간고등어를 팔았다.

2008년 중소기업청 지원공동브랜드 '청어당'의 상표가 찍힌 냉동 얼간재비(간고등어)였다. 시골 장날 노란 새끼줄에 매달린 고등어를 들고 사립짝(대문)을 들어선 할아버지가 생각 나기도 했다. 2만 원을 주고 고등어 한 손을 샀다. 스티로폼에 아이스를 넣고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 주는 아주머니가 정겹게 느껴졌다.

목욕을 하고 학가산온천에서 나오니 제법 배가 고팠다. 안동간고등어, 안동한우 맛도 봤으니 새로운 음식을 찾게 됐다. 바로 헛제사밥이었다. 밥을 먹기 위해 월영교 인근에 있는 전통전문음식점 '까치구멍집'으로 향했다. 모범음식점 표시가 먼저 눈에 들어오니 군침이 돌았다. 이 식당은 옛 한옥을 연상케 해 제법 잘 지어져 있었다.

안동 전통모범음식점 까지구멍집의 헛제사밥
▲ 헛제사밥 안동 전통모범음식점 까지구멍집의 헛제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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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 선생이 죽은 후 제자들과 유생들이 선생의 높은 덕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 도산서원이었다.
▲ 도산사원 이황 선생이 죽은 후 제자들과 유생들이 선생의 높은 덕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 도산서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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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는 카운터가 있었고 그 뒤에는 정말 가고 싶은 도산서원 전경이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해동의 주자라고 일컫는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지어 유생을 교육해 학문을 쌓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선생이 영면한 후 제자들과 유생들이 선생의 높은 덕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 도산서원이었다.

한식당에 맞게 벽면, 식탁, 의자 등 실내 인테리어도 잘 돼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다양한 메뉴가 선보였다. 헛제사밥, 양반상, 탕평채, 구절판, 안동간고등어, 쇠고기산적, 상어꼬치, 녹두전, 감자전, 파전, 부추전, 안동식혜 등이었다. 먼저 헛제사밥을 주문했다.

헛제사밥과 더불어 새콤달콤한 안동식혜도 한잔시켰다. 놋그릇 안 김칫국물에 밥알과 땅콩이 잘 어우러져 있어 식혜 맛이 정말 맛있었다. 제기에 올려놓은 산적, 전, 고기, 삶은 달걀과 놋그릇사발 안의 나물 그리고 두부, 무 등으로 만든 묽은 국물과 놋그릇에 담은 흰쌀밥을 보니 진짜 제사상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진짜 제삿밥이 아니라 헛제사밥이라는 사실이었다.

국보 16호인 신세동7층전탑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었다.
▲ 신세동7층전탑 국보 16호인 신세동7층전탑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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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구멍집 인근에는 철교 다리인 월영교를 잠시 살펴보고 향한 곳이 신세동7층전탑과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이었다. 국보 16호인 신세동7층전탑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었다. 탑 높이 16.8미터, 기단 폭 7.75미터, 단층기단에 7층의 몸돌 크기를 차츰 줄여가면서 쌓아 올린 것이 특징이다. 이 탑의 일대가 법흥동으로 보아 8세기 통일신라시대 법흥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탑 이외의 유물은 남아 있지 않았다.

현재 이 터에는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이 존재했다. 이 탑은 기단부와 탑신부 및 탑두부로 돼 있으나 현재 탑두부는 노반이 남아 있고 상륜부는 유실됐다. 기단부에는 네모꼴로 팔부중상과 사천왕상을 돌로 새김한 판석이 축조돼 있으며, 팔부중상과 사천왕상의 조각수법에는 서로 차이가 있다. 각층 지붕 윗면에는 기와를 이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인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의 본채는 조선 숙종 30년(1704년) 좌승지 이후식이 지었고, 북정은 영조 51년(1775) 진사 이종주가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솟을대문체, 사랑채, 안채, 정자와 연못 등이 잘 보존돼 있다. 나중에 방앗간채, 사랑채, 외양채 등이 더 지어졌다. 사랑마당에는 연못이 있고, 안채 동쪽에 3칸 크기의 사당이 있다.

조선 숙종 30년(1704년) 좌승지 이후식이 지었고, 북정은 영조 51년(1775) 진사 이종주가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조선 숙종 30년(1704년) 좌승지 이후식이 지었고, 북정은 영조 51년(1775) 진사 이종주가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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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는 정면 8칸, 측면 6칸으로 높은 자연석 축대 위에 세워져 있다. 이 집은 숲이 우거진 야산과 계곡에 흐르는 물을 건물과 잘 조화시킨 사대부의 저택으로 전통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 관람을 끝내니 오후 4시 30분이 지났다. 서울로 향할 시간이었다. 부랴부랴 안동역으로 향했다. 역사 내로 진입해 광고판을 보니 안동시 수상동에 있는 안동소주박물관, 안동음식박물관을 소개하고 있었다. 친구가 자랑했던 소주박물관의 안동소주 제조과정, 음식박물관의 전통 음식을 만드는 법 등이 궁금해 졌다. 하지만 다음 기회로 돌려야 했다.

대합실에는 안동방문기념 스태프가 비치돼 있었다. 관광객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첩이나 종이에 기념 스태프를 찍었다. 역 가게에서는 상황버섯을 첨가해 만든 안동의 미소 하회탈 빵을 팔았다.

안동관람을 마치고 열차를 타기위해 안동역에 도착했다.
▲ 안동역 안동관람을 마치고 열차를 타기위해 안동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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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빵과 뒤에 안동기념 스태프가 보인다.
▲ 하회탈빵 하회탈빵과 뒤에 안동기념 스태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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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빵 하나를 사가지고 5시 5분 청량리행 열차를 탔다. 5분 지연돼 5시 10분에 출발했다. 열차 안에 공기청정기를 보니 왠지 기분이 상쾌해졌다. 아까 보았던 낙동강 가로 질은 철교 월영교의 모습이 스쳐갔다. 정말 아름다웠다.

열차는 영주, 풍기, 단양, 제천, 신림, 원주, 지평, 양평을 거쳐 청량리에 도착했다. 저녁 8시 57분이었다. 곧바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지하철을 이용해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집으로 향했다.


태그:#안동헛제사밥, #신세동7층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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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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