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곤파스'가 오던 날의 기억이 있어선지 '말로'가 올라오는 밤은 영향권에 들지 않았음에도 잠자리가 시끄러웠다.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친구와 관악산에 올랐다. 산 속은 태풍 곤파스가 할퀸 상처로 수많은 나무들이 쓰러졌고, 가지와 나뭇잎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다행히 누군가의 노력으로 등산로는 대부분 복구되어 있었지만, 태풍의 상처가 의외로 큰 것에 놀랐다. 산에서 내려와 안양예술공원이 있는 계곡에서 막걸리를 한잔하면서 잠시 에너지와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자동차를 갖지 않는 나에게 말했다. "친구야 자동차에 대한 개념을 바꿔. 자동차는 이제 스마트폰처럼 가장 필수적인 물건이야" 맞는 말일 것이다. 내 주위에서 자동차를 끌지 않는 가정은 많지 않으니 그 말은 맞다.

친구는 한 에너지 기업의 대표가 화석에너지 등 유한 에너지가 사라지면 그 대체 에너지가 개발된다는 강연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맞다. 태양 에너지 등 많은 에너지원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에너지가 한꺼번에 지표면으로 나온 것은 지구 역사상 많지 않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자동차를 타는 것처럼 중국인이나 인도인들이 자동차를 타는 순간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기상이나 지구 환경 문제에 유독 관심을 가져온 나에게는 우리의 인식이 결국 머잖아 파국을 가져올 것이고, 올 여름 유난한 날씨와 매서운 태풍 등은 그 묵시록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친구와 헤어져 전철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입 안에는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떠올랐다.

"친구야 문제는 태풍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이아의 분노는 시작됐다

1998년 12월 말 나는 당시 근무하던 신문의 신년호에 짧은 공상과학소설 한 편을 썼다. '2050년 오딧세이 지구호'(http://blog.naver.com/chogaci/37163799)라는 유치한 제목의 이 소설은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지구를 대지의 어머니라는 큰 생명체로 인식한 이론)을 근원에 두고, 2050년에 매트릭스와 온난화 문제로 지구를 떠나는 인류의 운명을 그린 말 그대로 졸작소설이다.

그런데 러브록이 만든 가이아의 개념으로 이 지구를 본다면 현실이 어떤지 살펴보자. 지구온난화에 대한 반대도 있지만 지금 이 동아시아에서 진행되는 기온의 변화는 미래학자들이 예측하는 것보다 상황이 더 나빴으면 나빴지 좋을 일은 없다. 9월 중순을 앞두고 있지만 이 땅 대부분의 낮 최고기온은 30도가 넘고, 일본도 40도에 육박하는 날들이 많다.

뜨겁고 차가운 기압대가 만나는 곳이 중국 동북 3성에서 북한, 한국, 일본으로 이어지는 선에 형성되면서 통화-지안-단동-신의주 라인은 이미 수차례에 물폭탄을 맞았다. 또 가압대가 교차되는 곳이 올라가면서 한반도는 태풍의 주된 진로가 되면서 가을 태풍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기상 현상이 올해에 한정된 이상기온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한 해에 벌어지는 이상기온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문제가 많다. 이미 뉴스거리도 안 되는 바다수온의 상승으로 인한 어류 생태계의 변화 등 급속한 기후 변화의 징후는 너무 많다.

파단지린 사막 등의 사막화 지역에는 이런 고정물로 사막화를 막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지만 쉽지 않다
▲ 사막화를 막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중국 파단지린 사막 남부 파단지린 사막 등의 사막화 지역에는 이런 고정물로 사막화를 막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지만 쉽지 않다
ⓒ 조창완

관련사진보기


이상기후는 단순히 기상 이변이라는 영향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많다. 기자는 2002년부터 지속적으로 황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 해 올 황사를 예측했다. 그리고 지난해까지는 누구보다 정확히 황사 상황을 예측했다. 하지만 올해의 예측은 대실패했다. 기자는 올해 황사가 강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 올해 황사는 초반에만 몇 번 왔지 미미했다.

기자가 황사를 예측하던 가장 큰 근거는 황사 발원지의 상태다. 우리나라에 황사가 오는 3~5월은 봄철에 대기가 순환하는 시간이라 언제나 강한 편서풍이 부는 계절이다. 이런 시기에 우리의 서쪽에 있는 황사 발원지(쿠푸치-마오우쑤-훈찬타커 사막 등)의 상황이 나쁘다면 그해 황사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올 위 황사 발원지에는 지난해 강수가 거의 없어서 아주 나쁜 상황이었다.

거기에 라니냐 현상이 있는 해는 황사가 유독 강했는데, 올해가 바로 라니냐가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올해 큰 황사가 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한반도까지 영향을 줄 큰 바람이 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황사가 오지 않는 것은 반갑지만 수천년 동안 일정하게 불어오던 바람이 불지 않는 것은 더 나쁜 징조가 아닐까.

물론 황사 근원지의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고, 바람의 방향이나 강도도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 황사의 발생시기나 강도는 예측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조금이나마 태양의 빛을 녹여내줄 초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을 목도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날로 위축되어 가는 만년설산의 하류에 있는 이 빙천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 중국 윈난성의 밍융빙촨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날로 위축되어 가는 만년설산의 하류에 있는 이 빙천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 조창완

관련사진보기


또 해마다 그 크기를 줄여가는 만년설산의 해체는 인간을 향한 묵시록 같다. 그 산 아래 사람들은 이미 수자원의 고갈, 약초 재배 환경의 변화로 고통을 겪고 있다. 물론 혹독한 겨울추위를 피할 수 있지만 그들이 숭배하던 설산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

지구 기상 이변은 황사 수준이 아니다

해류 기온 변화로 인한 기상 재앙을 그린 영화 투모로우 포스터
▲ 기상 재앙영화에 대표작인 투모로우 해류 기온 변화로 인한 기상 재앙을 그린 영화 투모로우 포스터
ⓒ 영화사

관련사진보기


많은 이들은 기상재앙으로 인해 인류가 겪는 고통을 담은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해류의 변동으로 인해 다시 지구가 빙하기를 맞는 것을 그린 '투모로우', 지구의 핵 폭발로 인한 재앙을 담은 '코어', 화산폭발로 인한 재앙을 담은 '볼케이노' 등의 상황은 과연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일까.

우선 현실은 이미 이런 영화들이 예고하는 상황으로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에너지의 개발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가속화, 지구의 허파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산림자원들의 파괴는 이미 누구나 공언하는 현실이 됐다.

그런데 인간이 이성적으로 이런 현실을 파악해 제어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도 뻔한 현실이다. 2005년 2월에 발효된 교토의정서는 미국 등의 선진국의 무관심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선진국들의 진입장벽으로 인식되면서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외면받는 처지다.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으로 군림하는 중국과 인도 역시 전 지구적 문제는 발전의 뒤를 잊는 부수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개발을 위해 쏟는 에너지와 같은 양의 힘을 쏟아도 복구하기 힘든 지구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럼 점에서 지구의 신 가이아는 지금도 태풍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에게 경고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간 누구도 그 경고에는 무관심하고, 태풍의 피해에만 집중하는 게 현실이다. 산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사람들을 가이아는 안타깝게 볼지도 모른다.

그럼 점에서 이번 태풍의 이름인 '말로'는 씁쓸하다. 싱가포르에서 작명한 이 이름이 한자에서 온 것은 아니지만 무엇의 끝을 의미하는 '말로'(末路)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태그:#태풍, #기상재앙, #사막화, #지구온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