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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브리핑실에서 정부의 이란 제재 방안을 발표하기 들어서고 있다.
 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브리핑실에서 정부의 이란 제재 방안을 발표하기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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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미국이 폐쇄를 요구한 이란의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에 대해, '업무정지 2개월' 수준의 중징계 방침을 통보했다. 그러나 핵 또는 테러활동 관련 부분을 밝혀내지 못한 가운데 '별건'인 외국환거래법 위반을 적용한 징계를 내려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또 이란과의 금융거래는 모두 정부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했으며, 102개 단체와 24명의 개인을 제재대상으로 지정하고 한국은행의 허가 없이는 외국환 지급·영수를 금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같은 제재조치 속에서도 이란 중앙은행에 원화 결제 계좌 설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원유 도입 등 정상무역의 결제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란 중앙은행에 원화 결제계좌 설치 추진... 원유 도입통로 확보 위해

기획재정부, 외교통상부 등 정부합동 이란제재 대책반은 이날 오후 외교부청사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대이란 유엔 안보리결의(1929호) 이행조치'를 발표했다. 이번 제재는 금융-무역-운송·여행-에너지 등 네 가지 분야로 진행된다.

정부는 이미 제재대상자로 지정된 단체(40개)와 개인(1명) 이외에, 이란혁명수비대(IRGC), 이란국영해운회사(IRISL), 멜라트 은행을 포함한 102개 단체(은행 15개 포함)와 24명의 개인을 금융제재 대상자로 지정했으며, 한국은행의 허가가 없이는 이들 기관과의 외국환 지급·영수를 금지하도록 했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는 법체계상 자산동결을 취할 수 없지만, 외국환 지급·영수를, 한국은행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자산동결과 같은 효과"라고 설명했다.

금융제재와 관련해 특히 주목받은 것은 이란의 3대 국영은행 중 하나인 멜라트은행의 서울지점이었다. 멜라트 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은행이 유엔의 이란 제재 결의안 1929호의 제재 대상에 올랐으나,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중동 이외 지역에서는 유일한 해외 지점으로 '아시아 금융 허브' 역할을 해 온 서울 지점을 이란제재법(CISADA)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지난 8월 초 방한한 아인혼 미 국무부 이란·북한 제재조정관도 우리 정부에 폐쇄를 요구했다. 미국 정부는 이 지점이 이란의 핵확산 및 테러 활동과 관련된 자금거래를 했다는 기록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사실상 이 문제를 한국의 이란 제재 동참 수위의 시금석으로 간주해왔다.

이에 따라 정부도 조사를 벌였으나, 핵프로그램 또는 테러행위 관련 자금이 들어간 사실을 밝혀내지는 못하고 대신 외국환거래법 위반사실을 적발했다. 재정부 장관이 정한 금융제재 대상자와 거래시 한국은행 총재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한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핵 관련 거래 증거를 잡지 못하자, 원래 사건과는 관계없는 외국환거래법 위반혐의를 적용한 셈이다.

당국자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은 유엔제재 내역과는 관련없다"

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브리핑실에서 정부의 이란 제재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브리핑실에서 정부의 이란 제재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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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자도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은 유엔제재 내역과는 관련이 없다"고 인정하면서 "멜라트 은행을 명시한 유엔 제재의 취지와 미국, 일본, EU의 조치를 감안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관련절차를 밟아 업무정지 2개월의 징계를 내릴 예정이나 사실상 고사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경우 당국의 사전허가 없이는 단 1 달러도 거래될 수 없다"면서 "두 달 후에 다시 판단을 할 것이고, 추가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가중처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뚜렷한 혐의가 없는 데다가 이란 입장도 최소한으로나마 감안해야 한다는 점에서 바로 폐쇄조치를 취하지는 못했지만, 실질적으로 미국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정부는 제재대상이 아닌 이란 기관과의 금융 거래에 대해서도 4만 유로 이상은 사전허가제, 1만 유로 이상은 사전신고제를 도입하기로 했고, 이란 은행의 한국내 지점·자회사·사무소 개설을 불허하기로 했다. 또 이란 은행과 국내은행간의 코레스(외국환 거래) 관계 신설을 불허하는 한편, 기존 관계도 단계적으로 종료시킬 예정이다.

무역부문에서는 이란에 대한 단기·중장기 수출보증을 축소해 나가기로 했다. 또 핵공급국그룹(NS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호주그룹(AG), 쟁거위원회(ZC) 및 바세나르체제(WA) 등 5대 국제 수출통제체제상 이중용도 품목을 포함한 전략물자의 대이란 수출도 불허했다.

운송·여행 부문에서는 안보리 금지품목 적재가 의심되는 이란행 선박과 항공기에 대해 검색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의심 선박과 항공기에 대한 지원서비스와 연료보급 등 지원을 금지할 예정이다. 또 핵확산 민감활동이나 핵무기 운반체계 개발과 관련돼 의심되는 이란 국적 화물항공기의 국내공항 접근도 불허한다. '에너지'와 관련해서는 이란의 석유, 가스 부문에 대한 신규투자, 기술·금융 서비스 제공, 건설계약 체결 등을 금지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 "자주적 결정"... MB의 '대미 올인외교 대가" 비판 면키 어려워

정부 당국자는 이번 제재안에 대해 "외부 압력이 아니라 유엔 결의를 근거로 미국과 협의한 우리 정부의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결정"이라고 적극 강조했다. 그러나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의 '별건 수사'에서 단적으로 나타난 것처럼, 미국의 요구를 적극 반영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미 올인외교'의 대가라는 비판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부가 북핵문제를 대북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핵 문제로 이란 제재 동참을 요구하는 미국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이같은 조치에 대한 이란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란은 한국의 원유 수입량의 9.5%를 공급하며, 교역량은 100억 불에 달한다. 25개의 대기업과 2000개의 중소기업이 이란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제재안에 대해 이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화계좌 개설문제에 대해서는 "이란도 우리에게 석유수출 대금을 받을 통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한 이란 대사관은 이번 제재안 발표 뒤에 "당분간 내놓을 입장이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모하마드 레자 라히미 이란 부통령은 한국이 제재 움직임을 본격화하던 지난 8월 9일 "한국은 혼날 필요가 있다(need to be slapped)"며 "관세를 200%까지 올려서 아무도 외국 물건을 못 사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란 정부 인사가 제재와 관련해 미국 이외의 특정 국가를 지목해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태그:#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아인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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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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