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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에서 만난 구세주, 20대 청년사장

박영희 시인과 함께 하는 만주기행'을 다녀와서(5)

 

만주기행 둘째 날(8월 13일)에 북한, 중국, 러시아 3국 국경지대와 봉오골 항일 전적지, 안중근 의사 유적지 등을 둘러본 소감은 한 마디로 착잡했다. 그래도 아픈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에도 담았다고 생각하니까 작으나마 위로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가 자꾸 뇌까려졌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과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장면들도 옛날 독립군 영화를 다시 보듯 눈앞에 비쳐졌다.

 

숙소가 있는 연길(옌지)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가이드가 백두산에 오르는 내일은 오늘보다 시설이 좋은 차를 이용하게 될 것이고, 저녁에는 불고기로 유명한 식당 '한라산'에서 쇠고기 불고기를 드시게 된다니까 모두 기뻐했다. 연길의 불고기 맛은 어떤지 기대되었다. 

 

식당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까 곧바로 음식상이 차려졌는데, 콩나물 무침, 나물 등 반찬 종류가 고향에서 먹는 그대로였다. 불고기를 사먹을 상추와 마늘, 쌈장까지 다를 게 없었다. 쇠고기 불고기는 소문대로 맛이 좋았다. 삼겹살 맛은 어떤지 궁금해서 30엔을 따로 지불하고 1인분을 시켜먹었는데, 육질이 연하고 고소했다.

 

기분이 묘했던 호텔 잠자리

 

 

'연길시사법국' 건물과 마주한 호텔에 도착하니까 밤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인솔자가 카운터에서 방 열쇠를 가져와 나누어주며 몇 가지 주의를 당부했다. 열쇠를 잘 간수할 것. 외출은 짝을 지어 할 것. 사람들 앞에서 돈 많은 티를 내지 말고, 소매치기를 조심할 것. 지갑을 소지하고 외출하지 말 것 등이었다.  

 

침실 이용은 2인 1실, 연길에서의 첫 번째 밤을 아내와 오붓하게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28년 전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을 때, 모 은행 서귀포 지점에 근무하던 친구가 예약해준 호텔에서 보낸 첫날밤 추억들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지나갔다. 

 

침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기분이 묘했다. 집 놔두고 외박이라니, 연애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아내는 침대로 올라가더니 뒹굴면서 "아~ 편해서 좋다" 소리만 질러댔다. '하여간, 자기는 감정이 쇠말뚝인게벼!' 소리가 입에서 금방 나왔지만, 피곤하니까 그러겠지 하고 참았다. 

 

이틀을 씻지 못해 샤워부터 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더니 욕조가 없었다. 물도 누렇고 면봉도 없었다. 낮에는 관공서 사무실 전등도 꺼놓을 정도로 절약 정신이 강한데다 물이 귀한 지역이어서, 낭비를 줄이려는 호구지책으로 이해했다.

 

가장 불편한 것은 컴퓨터가 없는 거였다. 호텔이니까 있겠거니 믿고 USB까지 챙겨 기사도 작성해보려고 했는데 실망이었다. 인터넷도 가능한 한국의 장급 여관과 비교되었다. 하지만, 앉아서 불만만 터뜨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밤거리에서 만난 조선족 여학생

 

아무리 피곤해도 PC방에 가서 카메라 사진이라도 USB로 옮겨놔야 할 것 같아 방에서 나왔다. 메모리칩도 배터리도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호텔 카운터에도 컴퓨터가 없었다. 잠시 이용할 방법이 없겠는지 물어봤더니 PC방으로 가란다. 그걸 누가 몰라서 물었나.

 

미리 잔돈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해서 여직원에게 5엔과 10엔짜리 지폐로 바꿔달라며 1백 엔짜리 한 장을 건네주니까, 신기한 물건 보듯 앞뒤로 돌려보았다. 그러고는 위조지폐검사기에 넣고 확인하더니 바꿔주었다.

 

 

연길의 밤은 조용하고 거리 불빛도 아름다웠다. 살포시 불어오는 밤바람도 무척 상쾌했다. 습기가 없는 지역이어서 그런지 피부도 끈적이지 않았다. 여름엔 한국보다 덥지만, 열대야가 없고, 섭씨 40도 가까이 올라가는 낮에도 나무그늘은 무척 시원하단다. 

 

조선족이 절반 가까이 살고, 중국어를 몰라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연길. 그러나 밤에 PC방 찾아가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호텔에서 큰길을 따라 바둑판 모양으로 한 바퀴 돌면서 찾아보았다. 하지만, 허탕이었다. 

 

폭을 넓혀 두 번째 큰길을 돌면서 몇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하나같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길 잃은 아이가 부모를 찾는 심정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묻다 보니까 말이 통하는 여학생을 만났다. 반가웠다.

 

PC방으로 향하면서 "우리 아버지 고향은 북조선 황해도 해주입니다"라고 했더니 자기 할아버지도 함경도라면서 이웃집 아저씨 대하듯 했다. 안내해줘서 고맙다면서 음료수라도 마시라니까 집에 가야 한다며 인사를 정중히 하고 돌아갔다. 

 

신분증(여권) 제시를 요구하는 PC방

 

PC방은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다. 눈짐작으로 100평은 넘는 것 같았고, 자리도 2/3쯤 차있었다. 한쪽에는 당구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당구 연습에 열중인 남녀 젊은이들이 말로만 듣던 중국 개방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20대 여성이 카운터를 보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다. 손짓 발짓으로 겨우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다. 수상하게 보였는지 사진 촬영도 못 하게 하면서 신분증(여권) 제시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호텔에 두고 온 신분증을 내놓으라니 짜증이 났다. '컴퓨터 한 번 사용하기가 이렇게 어렵나?' 하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그들도 답답했는지 한국말이 능통한 젊은이를 데려왔다. 되든 안 되든 말이라도 통하니까 속이 시원했다.

 

PC방에 온 목적을 설명하니까 젊은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여직원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인터넷은 못해도 사진은 자기가 USB로 옮겨주겠다고 했다. 얼마냐니까 요금은 받지 않겠단다. 고마운 마음에 음료수와 과자를 몇 봉지 사다 주었다.

 

젊은이가 작업을 시작했는데, 문제가 또 생겼다. 모델이 달라서인지, 사양이 오래되어서인지 메모리칩을 삽입할 곳이 없었다. 필자 눈에도 컴퓨터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불쌍하게 보였다. 젊은이가 케이블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데, 칩만 믿고 가져오지 않은 게 더욱 미칠 일이었다.

 

호텔 주변 골목에서 만난 구세주

 

'이게 아니다' 싶으면 빨리 포기할수록 생활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미련 없이 PC방에서 나왔다.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었다. 호텔로 돌아오면서도 곰곰이 생각했으나 마땅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날(14일) 백두산 천지에 오르려면 아침 여섯 시 전에 일어나야 했다. 그렇다고 사진을 USB로 옮기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보인다'고 했던가. 발에 힘이 빠져 터벅거리며 걷다 호텔 주변 골목에서 반가운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국산 제품도 취급하는 자그만 휴대전화기 가게(국보통신)인데 여학생이 진열장 앞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가 해결사로 보였다. 절박하기도 했지만, 사정을 얘기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가게에 들어서니까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수줍어했다. 한국말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낭패였다. 하지만, 그냥 나오지 않고 "어른은 없습니까?", "주인은 어디 가셨나요?"라고 묻는 등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졌다. 

 

여학생은 안 되겠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길 건너편에서 아저씨들과 환담을 하는 주인을 데리고 왔다. 곱상하게 생긴 20대 청년이었다. 인사를 건네니까 서툰 우리말로 대답하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PC방에 다녀온 이야기를 듣던 '청년사장'은 조용히 웃더니 묻고 따질 것도 없이 컴퓨터를 켰다. 그는 컴퓨터를 장난감 주무르듯 했다. 키보드 위를 오가는 손놀림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교했다. 오타도 실수도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길 건너 슈퍼마켓에서 음료수를 사다 마시면서 대화도 하고, 배터리 충전도 했다. <오마이뉴스> 화면을 띄워놓고 필자 기사 모음을 보여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기도 2년 전 경남 마산에 있는 모 초급대학에 다녔다고 소개했다. 

 

청년사장이 컴퓨터 앞에 앉은 지 10분도 안 되어 이틀 동안 촬영한 사진을 USB에 저장했다. 사진이 저장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필자 가슴은 3년 묵은 체증이 넘어가는 것처럼 시원했다. 이튿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는데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고, 전날 밤 보약을 먹은 것처럼 기운이 솟았다.

 

세상에 구세주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나타나 해결해주면 그가 구세주이지.


태그:#연길(옌지), #구세주, #카메라, #PC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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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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