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14주년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결혼14주년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아직 새벽기운이 남아 있는 이른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사진앨범을 펼쳐놓고 넘길때 마다 미소가 절로 나오는 것은 지금도 그때와 같은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며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오늘 9월 15일은 결혼14주년이 되는 날이며, 아내를 알게 된 날로 따지면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친구도 연인도 아닌 어색한 관계속에서 이별을 고할 때는 연인이었고, 다시 만날때는 친구였던 우리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됐다.

14년 전 백수였던 내게 '결혼'은 언감생심이었다

당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럽 배낭여행이 대유행이었다. 여행에 대한 별다른 추억이 없던 우리는 유럽여행 자금을 모아보자며 무작정 적금통장을 만들었다. 백수이면서 알바로 근근히 살아가던 나는 아내가 내는 돈의 절반만 내는 혜택을 받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당시 변변한 직장도 없이 공무원 시험공부에 매달리기도 하고 취직도 해봤지만 오래 다니지 못했던 터라 결혼은 언감생심이었다. 게다가 집안형편도 넉넉치 못하였기에 마음 한구석의 이별시계는 해가 바뀔수록 55분을 넘어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별후 내가 다시 아내를 찾은 것이기에 시계를 멈추고 싶은 심정은 절박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결혼이 내겐 너무 먼 이야기임을 절감할 때마다 혼자 좌절하면서도 아내 앞에서는 항상 웃었다. 이후 아내는 빈털털이 남자의 껍데기를 본 것이 아니라 그 속의 됨됨이를 봤었다고 했다(여보 맞지?).

내 처지에서 결혼해 달라는 말은 너무 어려웠지만, 이 사람과 꼭 결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상태에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내에게 월 몇만원씩 모아서는 유럽 여행의 비행기삯 정도밖에 안될 것 같다며 제안을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결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꿈에 그리던 유럽여행도 가고…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해보자는 것이 당시 내 생각이었다.

'내 딸이 선택한 남자'라며 고봉밥을 담아주신 장모님

10년후 애들과 다시 오자고 했는데..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10년후 애들과 다시 오자고 했는데..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양가에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유럽배낭여행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 가진 것 없고 직장도 없이 찾아온 나를 장모님은 밥을 고봉으로 담아주며 내 딸이 선택한 남자라면 틀림 없다며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양가 어른들의 상견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결혼준비와 함께 배낭여행 준비를 하였고, 결혼날짜와 예식장소는 어른들의 불평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유럽배낭여행에 맞춰서 우리가 결정을 했다.

예식은 추석을 며칠 앞둔 1996년 9월15일, 장소는 시댁인 의정부와 처가인 영등포의 중간 지점인 제기동으로 내가 결정했다. 원래 남자측 지역에서 하는 것이라며 아버지는 기득권을 주장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기에 꺾이지 않았다. 여행경비를 최대한 모으기 위해서 야외촬영이나 큰 액자사진은 하지 않았고, 친구들의 축의금도 직접 받아 챙겼다.

여름·결혼휴가와 추석휴일를 모두 보태서 15일간의 유럽4개국 배낭여행은 완벽하게 준비가 됐고, 추석을 앞두고는 결혼하는 경우가 없었는지 예식장을 우리 부부가 단독으로 사용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친구들과의 요란한 결혼식 뒤풀이로 많은 뒷얘기를 남기며, 우리는 유럽행 비행기에 꿈과 사랑을 싣고 높이 날았다.


태그:#결혼, #결혼기념일, #배낭여행, #유럽, #예식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