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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과 현실의 갈등에서 방통위는 '현실'을 택했다. 그 현실은 다름 아닌 '조중동' 등 종편 준비 사업자들을 위한 '배려'와 '특혜'였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는 17일 오전과 오후, 장장 6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방송채널 사용사업 승인 기본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이로써 최시중 위원장이 올해 안으로 못 박은 종편 사업자 선정 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다만 사업자 선정 공고만큼은 헌재 '부작위 소송' 결정 뒤에 하자는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의 '소신'이 막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숫자 제한 없는 '절대평가'... 총점 80% 넘으면 '통과'

 

이날 오전 회의까지만 해도 기본계획안 심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오후 3시에 재개된 회의는 종편 최소 납입자본금 규모와 5% 미만 주주의 컨소시엄 중복 참여 제한 문제 등을 놓고 난상 토론이 벌어지며 오후 7시까지 이어졌다. 

 

우선 사업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사업자 선정방식은 사업자 숫자를 미리 정하지 않고 일정한 심사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자를 모두 선정하는 절대평가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현재 조선, 중앙, 동아, 매경, 한경 등 5개 언론사 컨소시엄이 경쟁을 벌이는 종편 사업자의 경우 최대 5개까지 선정될 가능성이 열렸다. 

 

지금까지 증권사 미디어분야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들은 KBS 시청료 인상에 따른 KBS 2TV 광고 축소와 민영 미디어랩 등장에 따른 방송광고시장 확대를 감안해도 종편 사업자는 1개가 가장 적당하다고 지적해 왔다. 사업자들 가운데도 동아, 한경 등은 비교 평가를 통한 1개 사업자 선정을 주장한 반면 중앙, 매경 등은 절대평가를 주장했다.

 

하지만 방통위에선 "공청회에서 전문가들 다수가 정부 개입 최소화, 시장 자율, 숫자 제한의 기술적 한계 등을 들어 절대평가 방식을 많이 얘기했다"며 '절대평가' 쪽 손을 들었다. 

 

형태근 상임위원은 "지상파 주파수처럼 자원이 한정되거나 불가피하게 숫자를 정할 땐 비교평가를 선호하지만 종편은 주파수 제한이 없고 사업하기에 따라 시장이 늘어가거나 경쟁 시너지도 있기 때문에 절대 평가가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밝혔다.

 

비교 평가를 선택할 경우 사업자 숫자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는데 숫자가 적을수록 탈락자의 윤곽이 드러나고, 거꾸로 숫자가 많을수록 선정 사업자의 사업성까지 책임져야 하는 정부 부담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김준상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은 "절대평가는 사전에 사업자 수를 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사업자 숫자와 연관 지어 예단할 필요는 없다"면서 "심사 기준에 따라 사업자 수가 0이 나올 수도 있고 다수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승인 최저 점수는 전체 총점 80% 이상으로 하되 5가지 심사사항별(대분류) 총점이 70% 이상이 돼야 하고 일부 특정 심사항목(중분류) 총점에도 60% 이상 '과락'을 두기로 했다. 

 

종편 최소 자본금 3000억 원... 5000억까지 '가산점'

 

오후 회의에선 최소 납입자본금 규모를 놓고 상임위원 간에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양문석 상임위원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만든다는 정책 취지에 맞추자면 1년치 영업비용에 해당하는 최소 납입자본금 3000억 원은 터무니없이 작다며 6000억 원으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논란 끝에 최소 자본금은 3000억 원으로 하는 대신, 심사항목을 평가할 때 3000억 원을 제시한 사업자에게 심사항목 승인 최저점수(60%)를 주고 5000억 이상은 100% 부여하되, 최소 충족을 못하면 0점 처리하고 3000억 원과 5000억 원 사이는 금액별로 최저 점수와 100% 사이에 균등하게 배점하기로 했다. 즉, 자본금 50억 원 당 1%씩 차이가 나는 셈이다. 보도채널도 마찬가지로 최소 납입자본금은 400억 원으로 하되 600억 원까지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최시중 위원장이 "종편은 케이블을 통해 시청 범위가 이미 확보돼 있어 좋은 콘텐츠만 있으면 지상파와 맞먹는 파워풀한 방송사가 될 수 있다"면서 "정책적으로 배려해서 낮은 채널을 배정할 수 있고 케이블로 전국적 시청을 보장하고 초기니까 노사 갈등도 없을 것 아닌가"라면서 '낮은 채널' 지원 등 종편 사업자 '특혜'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에 양문석 위원은 "더 이상의 특혜는 안 된다"면서 "종편 하나 살리려다 다른 PP(케이블 채널사업자)나 지상파까지 붕괴시킬 위험 있다"고 바로 반박했다.

 

종편-보도 '복수 지원' 허용, '낮은 채널' 등 종편 '특혜'

 

종편 사업자 배려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종편 탈락자 배려용'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종편-보도전문채널 순차 선정 문제는 '동시 선정'으로 정리됐지만, 신규 사업자의 종편-보도채널 '복수 지원'을 허용해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자본금 3천억 원에 맞춰 준비해온 종편 준비 사업자의 경우 보도전문 채널에 중복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준비 자본금이 적은 보도채널 준비 사업자는 현실적으로 종편 복수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김준상 국장은 "신청 단계에서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란 지적 때문에 일단 복수 신청은 허용하되 동시 선정될 경우 한 곳을 포기하도록 했다"면서 "특정 사업자를 우선 배려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5% 이상 지분 참여자는 다른 신청 법인에 중복 참여할 수 없게 제한하면서 5% 미만 주주 중복 참여를 사실상 허용한 것도 회의 막판 쟁점으로 부각됐다.

 

양문석 상임위원은 "신문사의 힘으로 기업에 '보험금'을 뜯어내기 시작하면 한 기업에 4.9%씩 최대 250억 원까지 '보험'을 들어야 하는 악질적 행태가 나타날 수 있다"면서 "현실적으로 그런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편 준비 사업자인 유력 언론사들이 납입 자본금을 모으려고 주요 기업들을 상대로 지분 투자를 종용한다는 풍문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결국 방통위는 5% 미만이라도 다른 사업자 중복 참여 시 문제가 있는 만큼 향후 세부심사항목에 5% 미만 중복 참여 시 감점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소신' 꺾고 종편 연내 선정 강행... '헌재 변수' 남아

 

방통위는 10월 중 세부심사항목을 의결한 뒤 오는 10월에서 11월 중 승인 신청을 공고할 계획이다. 이날 종편 선정 기본계획은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지만 사업자 선정 일정 문제부터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이날 오전 국회 일정 때문에 회의에 뒤늦게 합류한 이경자 부위원장은 "헌재에 계류 중인 부작위 소송이 끝나 방송법의 법적 안정성, 신뢰성이 담보된 뒤에 사업자 선정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게 일관된 소신"이라며 "기본계획 의결을 10월 중순쯤 예상되는 헌재 결정 이후로 미루자"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7월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법 통과 과정에서 입법 의사결정권이 방해를 받았다며 지난 연말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여당 쪽 형태근 상임위원은 "헌재에서 방송법 자체는 유효하다는 결정이 나와 이후 진행 과정은 문제될 게 없다"면서 "사업자들은 이미 2년 전부터 준비하며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데 시장의 기대와 우리 목표를 지체할 수 없다"고 맞섰다.

 

같은 여당 쪽 송도균 위원 역시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데 시간적으로 다급하다"면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문제를 결론 내리고 집에 가야 되지 않겠나 하는 초조한 생각도 있다"며 결정을 서두르자고 주문했다.

 

결국 야당 쪽 양문석 위원이 "선정 공모 이전에 모든 것을 준비하고 선정 공모는 헌재 결정을 보고 하자"면서 "최소한 헌재 결정 이전에 심사 기준까지는 가도 동의할 수 있지만 선정 공모 문제는 동의할 수 없다"고 이날 기본계획 의결에 조건부 동의하면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경자 부위원장은 오후 7시에 끝난 회의 말미에도 "(기본계획) 내용에는 이견이 없지만 지금 방송법이 효력 여부에 관계없이 절차상 부적절하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어, 종편 정책 진행 일정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라며 거듭 일정 연기를 주문했다.


태그:#종편, #방통위, #종합편성채널,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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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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