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첫 단추를 잘 채워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매일신문>이 보도한 'DJ, 참여정부 시절 국비지원현황'이 수시로 인용되고 이것이 영호남의 정서를 자극할 우려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이 내용이 타당한지에 대한 검토는 뒷전입니다.

조원진 의원 "DJ‧참여정부 때 호남 편중"

얼마 전 국회운영위에서 'TK인사 편중'이 논란이 된 것 같습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TK인사편중'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 의원이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는데요.

위는 <매일신문> 2010년 9월 10일자 1면, 아래는 <영남일보> 5면
 위는 <매일신문> 2010년 9월 10일자 1면, 아래는 <영남일보> 5면
ⓒ 매일신문-영남일보

관련사진보기


반론의 주요 화두는 'DJ‧노무현 정부 때 국비지원비 규모가 대구경북 8조(兆)-광주전남 45조(兆)', 즉 대구경북이 광주전남의 1/5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매일신문>은 10일 1면 <국책예산 배정 대구경북 8兆-광주전남 45兆>, <영남일보>는 같은 날 5면 <"DJ‧盧정부 때 호남편중 더 심했다">며 조 의원의 주장을 주요하게 보도했습니다.

<매일신문> 기사는 "조원진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이라고 제시하고 있지만, 영호남 간 국비지원예산 비교는 2008년 2월 <매일신문> 기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기사의 내용은 참여정부 5년 동안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의 국책사업 및 국비지원 현황을 비교해봤더니 광주전남 45조, 대구경북 8조로 차이가 났다는 것이죠.

국비 예산, 총액 기준의 단순 비교는 금물

무엇인가 비교할 때 고민해야 할 점은 비교대상 간에 유사한 맥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학생 2명이 100m 달리기를 했는데 A군이 이겼다는 사실이 있을 때, 이것만 보고 A군이 B군보다 우수하다고 할 순 없죠. 두 명의 학생의 신체상태, 나이 등 조건이 동일했는지 함께 비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산 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하게 총액만 비교했을 경우, '우와~이렇게 차이가 나는가?'라며 놀랄 수 있겠지만, 사업기간과 사업규모 등을 대입해서 총괄적으로 비교해보면 판단을 내리기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매일신문> 2008년 2월 28일자 1면
 <매일신문> 2008년 2월 28일자 1면
ⓒ 매일신문

관련사진보기


<매일신문> 분석은 이 오류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광주전남과 대구경북권의 대형국책사업 추진현황에 대해 사업비 기준 5개 프로젝트 총액만 비교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죠. 각 지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사업기간, 사업규모 등은 비교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현재 제시된 표에는 각 사업의 규모는 제시되어 있지 않으니 비교하긴 힘들 것 같고, 광주전남지역 사업기간은 대부분 2011년~2025년까지로 최소한 4년에서 길게는 19년 정도의 장기간 프로젝트이고 대구경북지역은 3년~11년 정도로 광주전남에 비해 단기간이라는 점입니다.

총액만 비교했을 경우 이런 형태의 변수를 전혀 고려할 수 없습니다.

<매일신문>식 해석, 예산 편성 때마다 단골 인용

총액 기준으로 숫자만 비교하는 <매일신문>식 자료 분석 방법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활용되었습니다. <매일신문> 2009년 9월 18일 1면 <野, 이래도 국비 특혜냐>, 10월 9일 <호남권, 대구경북 7배> 등이 그 사례입니다.

<매일신문> 2009년 9월 18일자 1면, 10월 9일자 1면
 <매일신문> 2009년 9월 18일자 1면, 10월 9일자 1면
ⓒ 매일신문

관련사진보기


또한 2008년 2월 <매일신문> 자료를 국회의원들이 틈만 나면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한나라당 강석호 의원이 2008년 9월에 "참여정부 때 대형 국책사업 대구경북 예산 배정 홀대"라고 주장했지요. 이번엔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이 같은 자료로 같은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지난 7~8월 <매일신문>과 <영남일보> 기사에 대해 '설득력이 부족한 일방적인 주장만 나열,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7건의 기사에 대해 '경고' 조치를 내렸습니다.

정치권의 주장을 여과없이 전달하기보다 그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권이 인용하는 자료가 역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검증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입니다. 그 역도 존재합니다. 언론의 자료를 인용할 때 설득력이 충분한지 한번 더 검토하고 신중을 기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역할일 것입니다.

정치권이 현안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것은 민주주의 과정의 일환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단 그 전제는 자신들의 주장 근거가 제3자가 봤을 때 설득가능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은 채 정치권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활용하고 지역언론 역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만 가공한다면, 언론 뿐만 아니라 선출직 공직자에게 필요한 '공정성'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 채운 첫 단추가 끊임없이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오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글쓴이는 참언론대구시민연대(www.chammal.org) 사무국장입니다.



태그:#매일신문, #영남일보, #조원진, #영호남 국책사업, #역차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