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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맨 여인은 기모노를 입은 것으로 보아 일본인인 것 같다. 여인 오른쪽에 판자를 사각으로 도려낸 일본 전통 아궁이 이로리(いろり)가 있다. 일본인이 틀림없다. 그 아궁이에 검게 그을린 주전자가 걸려있고 그 아래 절석(切石)은행 발행 예금통장이 있다.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야 할 예금통장과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아궁이. 썩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가까이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인의 머리칼이 검은 흑발이 아니다. 반백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파다. 여인의 머리맡에 세 자루의 낫이 걸려있다. 여인은 농부의 아내인가 보다. 여인의 어깨 위에 볏이 초라한 장닭이 올라앉아 곡을 하고 있고 얼굴에서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내려 고드름이 되었다. 가방을 멘 개가 그것을 핥아먹으려고 앞발을 곧추세우고 있다.

 

상황을 유추해 보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농사가 천직인 농부가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농부의 아내는 먹고 살 식량을 제외한 농산물을 현금화해 꼬박꼬박 저축했다. 잔고가 불어나는 것이 그들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은행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예금통장이 휴지가 되었다. 망연자실한 여인이 예금통장을 불쏘시개로 사용하려고 아궁이에 쳐 박았으나 분을 삭이지 못하고 목을 매고 말았던 것이다.

 

그림의 배경은 이렇다. 1950년 대 초. 원자폭탄 2방에 '무조건 항복'한 일본은 전쟁 후유증에 시달렸다. 식량난에 허덕였고 물자가 부족했다. 있는 자는 없는 자를 편취했고 힘이 센 자는 약자를 갈취했다. 정의가 실종된 사회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졌다. 미래가 암담했던 일본에 기회가 왔다. 군수물자 제조창이 된 일본은 활발하게 돌아갔으나 그 과실은 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후지산 아래 아케보로라는 마을이 있었다. 일본의 전통적인 농촌마을이었다. 그 마을에 절석(切石ゾルソック)이라는 신용협동조합이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역주민들이 출자한 우리나라의 농협과 서민금고(저축은행)를 결합한 형태의 금융기관이었다. 이 은행의 이사장이 고의로 부도를 냈다. 소액 예금자들의 돈을 떼어먹으려고 일부러 한 짓이었다. 이사장은 협동조합의 대주주이면서 지역에 많은 땅을 갖고 있는 대지주였다. 정의가 실종된 혼란한 사회에서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착취하는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믿었던 금융기관이 부도나자 예금통장만 믿고 살았던 순박한 농민들이 목을 매다는 일이 속출했다.

 

정부에서는 검찰을 동원하여 수사에 나섰고 정당과 사회단체에서는 실태조사에 나섰다. 고위 정치인과 줄이 닿아 있던 이사장이 잠자코 있지 않았다. 조직원을 동원하여 방해하고 협박했다. 그러던 와중에 사회단체에서 파견한 활동가가 저수지에서 익사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림 왼쪽 시뻘건 물에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물고기를 가슴에 안고 떠오른 사내가 바로 그 활동가다. 사건이 있은 후 사회단체에서는 다른 활동가를 또 파견한다. 당시 조사요원으로 활동했던 야마시타 키쿠지는 그 사실을 황마(黃麻) 화폭에 기록했는데, 그 그림이 아케보노 마을 이야기다.

 

1880년부터 1980년까지 100년 동안은 전 세계적으로 격동기였지만, 아시아인들은 더욱 큰 격랑에 휘둘리어 고통을 겪었다. 대륙의 맹주 청나라도 힘을 잃고 구미열강에 의해 국토가 찢겨졌다. 이후 국공내전과 대장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러 공산주의적 시장경제를 실험하고 있다.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던 일본은 전쟁의 참화를 딛고 패전국에서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했다.

 

한국 역시 군주시대와 식민시대, 그리고 동족상잔의 전쟁과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전통적인 가족 구성이 해체됐다. 화가 오윤이 그린 '가족∥'를 살펴보자.

 

늙은 노부부를 중심으로 모처럼 일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명절인지 집안의 경사인지 그것은 모르겠다. 노란 셔츠를 입은 외손자의 손에 그 당시 인기를 끌었던 OO콘이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1980년대 초반인 것 같다.

 

돈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간 아들들이 일용근로자가 되고 서적외판원이 되어 병풍처럼 뒷자리에 서있다. 그 앞줄에 중국집 철가방 담당이 된 '철식이' 먼지투성이 다락방에서 미싱을 돌리던 '공순이' 도시 남자들의 여인이 된 '빠순이'가 초점 잃은 눈동자로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을 응시하고 있다. 그 중에 스티커를 붙인 '빠순이'의 속눈썹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압권이다.

 

그밖에 필리핀,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국민들은 타의에 의해 고통을 겪어야 했다. S 수조요노가 '진실이 최상의 것이며 그 다음이 아름다움이다' 라고 말했듯이 진실은 숭고한 가치다.

 

 

1942 파죽지세로 동남아를 석권하던 일본군의 서진을 막기 위해 콰이강의 다리가 폭파되었다. 일본 공병대가 부서진 다리를 단 이틀만에 복구하여 일본군의 서진을 도왔다는 기사가 일본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그들이 극찬한 공병대가 '말레이 가교 공병대'다. 이 작품은 그 당시의 보도사진을 근거로 2년 후인 1944년 일본 육군이 미술협회에 주문하여 제작되었다. 화가 시미즈 토시는 1907년 미국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각지를 전전했다. 귀국 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상하이에 건너가 파견되 종군작가로 활약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싱가포르 국립미술관,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고 외교통상부가 후원한 '아시아 리얼리즘전이' 10월 10일 막을 내렸다. 청소년과 교사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네이버가 미디어 후원자로 나서서 일까? 관람객도 예상을 웃돌았다. 많은 관람객들이 주목하는 작품은 일본판 게르니카라 일컬어지는 화가 야마시타 키쿠지의 아케보노 마을 이야기였다.

 

 


태그:#아시아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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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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