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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속을 들여다 보게 하는 그림들

평양 시내의 모습
 평양 시내의 모습
ⓒ S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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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남서방송>에서 만든 문화콘텐츠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구려 고분군'에는 고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다. 고분들을 품고 있는 도시 평양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인다. 평양은 현재 북한의 수도일 뿐 아니라, 427년 집안에서 수도를 옮긴 후 240년 동안 고구려의 수도였다. 그래서인지 북한은 자신을 고구려 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비디오에서는 고분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평양의 시가지 장면이 보인다. 여자 교통순경의 지시에 따라 차들이 시내를 달려간다. 이어 북한은 전지전능한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인민으로 이루어진 나라라고 소개한다. 이때 김일성의 동상이 보이고, 이어 시내 어딘가에 국민을 독려하는 대형 걸개그림이 걸린다. 그곳에는 인민군 복장에 총을 든 세 명의 전사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평양을 결사수호하는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자'는 구호가 보인다.

김일성 광장: 붉은색이 둘러쳐진 광장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다.
 김일성 광장: 붉은색이 둘러쳐진 광장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다.
ⓒ S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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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나타나는 장면은 김일성 광장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횃불행진 연습을 한다. 나무로 만든 횃불을 양손에 들고 뭔가 구호를 외치며 걸어간다. 김일성 광장은 만수대 언덕 남쪽에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민광장으로, 행진과 군사 퍼레이드용으로 만들어졌다. 면적은 7만5000㎡이다.

화면은 잠시 평양 인근의 들판과 불교 사찰인 광법사를 보여준다. 광법사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나서는 대동강변을 따라 평양의 아침풍경이 나타난다. 대동강에는 다리와 철교가 놓여 있고, 강변으로는 숲과 고층건물들이 보인다. 이어 아침에 출근하는 시민들의 표정이 느린 화면으로 클로즈업된다.

'고구려 고분군' 비디오에 보이는 평양 시민들의 표정

대부분의 화면이 그렇듯이 사람들은 인민복이나 단정한 복장을 하고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흐트러진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표정이나 옷차림 역시 수수하다. 그리고 살이 찐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규범이나 기준을 중시하는 그들의 시스템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자율성과 다양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이 그들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노동자탑
 노동자탑
ⓒ Wikipedia: Mannen av b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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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화면은 고층건물과 사회주의 기념물로 이루어진 평양 시내를 보여준다.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전차가 지나가고 건물 위에 백전 백승이라는 선전문구가 붙어 있다. 건물 사이에는 대형 망치와 낫, 그리고 횃불 조각이 하늘로 솟아 있다.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조각 작품이다.

곧 이어 전차는 보통문 앞을 지나간다. 잠시 시간이 현재에서 과거로 바뀌며, 보통문 아치 사이로 평양 최고 건물인 유경호텔이 보인다. 보통문은 고구려시대 평양성의 서문으로 처음 만들어졌고, 현재의 것은 1473년에 재건되었다. 보통문을 매개로 하여 이야기는 고구려의 성으로 이어진다. 고구려는 성곽의 나라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분과 도성을 안내하는 역사학자 김인철의 표정이 조금은 경직되어 있다.

보통문: 평양성의 서문
 보통문: 평양성의 서문
ⓒ S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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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면은 도성 안에서 무술을 연마하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태권도복을 입은 군인으로 보인다. 그들은 품세 연습을 통해 몸을 단련한다. 내레이터는 태권도를 최소의 힘으로 효과적으로 싸우는 기술이라고 소개한다. '재빨리, 목표를 향해 정확히, 돌발적으로'라는 형용사를 사용한다. 그리고 태권도가 고구려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서, 그 증거를 안악고분의 수박도(手搏道)에서 찾고 있다.  

평양 역사박물관

구글 어스를 통해 본 평양
 구글 어스를 통해 본 평양

평양 역사박물관의 공식 명칭은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이다. 2008년 2월 예맥출판사에서 나온 <아름다운 우리문화재 ②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 따르면, 박물관은 김일성 광장에 있다.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19개실로 나누어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시대 분류는 우리와 비슷하게 구석기, 신석기, 고조선, 삼국, 발해, 고려, 조선, 근대 순으로 되어 있다.

발해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특히 고조선, 고구려, 발해 및 고려의 유물 중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고조선실에 락랑국문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락랑국은 대동강 남안의 평양을 중심으로 문화를 일궜고, 한자와 철기를 사용했다고 적혀 있다. 고구려실의 유물은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 장군총과 광개토대왕비는 집안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실에서는 고분벽화가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고분벽화라는 말 대신 무덤벽화라는 말을 사용한다. 불교미술과 금속공예는 눈에 익은 것이 많다. 그렇지만 토기와 기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토기의 종류에 대한 표현도 재미있다. 단지, 시루, 접시, 귀잔, 독, 항아리, 버치, 대야, 뚝배기, 보시기 등. 여기서 귀잔은 손잡이가 달린 잔을 말하고, 버치는 자배기보다 조금 깊고 아가리가 벌어진 큰 그릇을 말한다.

발해실은 네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무덤벽화, 기와, 토기, 불교미술. 발해의 문화유산은 크게 고구려의 문화유산을 계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른 부분이 보인다. 당나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발해가 신라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왕건의 청동좌상
 왕건의 청동좌상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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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문화유산으로는 2005년 우리나라에도 왔던 왕건의 청동좌상도 보인다. 고려시대 전시물 중 가장 많은 것은 청자와 백자다. 이들 도자기는 아주 친숙하다. 참외, 구름과 용, 사자, 국화, 매화, 모란, 포도넝쿨, 학 등이 그려지거나 상감되어 있다. 불교조각 중 특이한 것은 금제 미륵보살좌상이다. 도록에는 이 보살좌상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금강산 만폭동에서 발견된 불상 중 하나인 금제보살상은 독특한 조형양식으로 이름 높다. 이 보살상은 머리에 썼던 보관은 잃어버렸으나, 전체적인 세부처리는 시대양식을 반영하면서도 매우 뛰어나다. 삼국시대의 미륵보살과는 달리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오른팔을 직선으로 뻗치며 명상에 잠겨있다.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천의는 양 다리에서 U자형의 주름을 짓는 점은 통일신라의 영향이며, 양 다리를 벌리고 한 발을 올린 변형 윤왕좌의 자세에서는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고려불상의 특징이 엿보인다."

외국의 자료를 통해 본 평양 아리랑

아리랑 공연 모습
 아리랑 공연 모습
ⓒ Ryuugakusei,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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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군'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은 북한의 집체극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음악과 무용이 결합된 일종의 매스게임 또는 악극으로, 북한의 과거 영광스러웠던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아리랑은 북한이 현재 내세우는 가장 대표적인 문화예술 공연이다. 이 비디오에서도 여군들이 경쾌하고 절도 있게 칼춤을 춘다. 뒤로 보이는 구호도 '어버이 사랑으로 강군을 키우자'다.

그 다음으로는 흰옷을 입은 여인들이 속이 들여다보이는 붉은 천을 걸치고 물결춤을 선보인다. 그 여인들의 일렁임 뒤로는 북한의 국기인 인공기가 나온다. 흰색과 붉은색의 대비로 강한 인상을 준다. 지금까지 북한을 방문한 외국의 귀빈 중 아리랑 공연을 보지 않은 사람을 거의 없다고 한다. 남과 북이 교류할 때에도 아리랑 공연 참관이 문제된 적이 있다.

아리랑을 공연하는 능라도 5?1경기장
 아리랑을 공연하는 능라도 5?1경기장
ⓒ S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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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공연에는 10만 명이 출연하며 공연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 주석 탄생 90주년이 되는 2002년 처음 만들어졌고, 해마다 주제나 슬로건이 조금씩 바뀌는 것으로 되어 있다. 2005년부터는 매년 8월 능라도 5·1경기장(May Day Stadium)에서 공개된다고 한다. 2006년 수해로 인해 한 해 공연을 못했기 때문에 2010년 공연이 5회째가 된다.

이번 고구려 고분군 방송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가 북한의 방송을 볼 수는 없을까? 독일은 1972년 양독 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상호 방송을 개방했다. 그후 20년이 지나지 않아 양독은 통일되었다. 우리에게도 잠시 북한방송을 보는 것이 허용될 듯한 때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시절인 1998년 2월이다. 그러나 그 후 웬일인지 북한방송 개방이라는 의제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말았다.

이제부터라도 북한방송 개방 의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려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방송개방이 남북간의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알아야 이긴다 하지 않았는가. 지금 전파 장벽을 무너뜨리면, 20년 안에 분단의 장벽이 무너질 줄 누가 알겠는가. 독일처럼. 지금 우리가 잡아야 할 통일의 화두는 개방과 교류다.

덧붙이는 글 | 독일 남서방송국(SWR)에서 제작된 ‘고구려 고분군’ 비디오와 텍스트를 보려면, http://www.swr.de/schaetze-der-welt/koguryo-graeber/-/id=5355190/nid=5355190/did=5983388/pd4z5w/index.html 에 접속하면 된다.

장경희가 쓰고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이 감수하고 예맥에서 나온 『아름다운 우리문화재 ②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2008)에 보면, 북한의 중요 문화유산이 사진과 글을 통해 잘 설명되어 있다. 4-5쪽에 조선중앙력사박물관 사진과 배치도가 나와 있고, 99쪽에 금제 미륵보살좌상이 나온다.



태그:#고구려 고분, #평양과 대동강, #조선중앙력사박물관, #아리랑, #방송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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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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