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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입구
▲ 세계유산 불국사 불국사 입구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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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불국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면서 세계 어디에 내놓더라도 탁월한 유산이에요. 등재를 추진할 당시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어요. 반대한다거나 뭔가 좀 부족하다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자거나 하는 이런 이견이 전혀 없었어요."

석굴암과 불국사는 1995년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이자 한국미술사연구소의 문명대 소장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15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이 10개로 늘어났고 등재관련 노하우도 많이 쌓인 상태지만 당시에는 그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심사단이 와서 현지심사를 하는데 대부분 동양사상과 동양미술을 아는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일본 사람도 심사단에 포함되고요. 그런 사람들은 불교미술에 훤하니까 이의가 있을 수가 없지요. 심사단이 와서 둘러보면서 '원더풀, 원더풀' 하더라고요. 석굴암과 불국사는 최근 백 년간 수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역사가 오래되었고 세계의 수많은 사원과 비교하더라도 월등한 사찰입니다. 종묘의 건축미도 뛰어나지만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요."

석굴암과 불국사는 천몇백 년을 견뎌왔고 지금도 살아있는 유적이라는 이야기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런 유적을 보기가 쉽지 않다. 역사는 둘째치고 석굴 자체의 아름다움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중국과 비교해 볼때 석굴의 숫자는 훨씬 적지만, 하나만 놓고 본다면 중국, 인도의 어느 석굴보다도 월등하다고 한다.

통일신라의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석굴암, 불국사

석굴암과 불국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 한국미술사연구소 문명대 소장 석굴암과 불국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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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차이티아'는 예배당의 성격을 갖고 있지요. 석굴이니까 예배굴로 봐야지요. 다른 하나는 승방 등을 가지고 있는 종합사원 같은 성격의 '비하라'입니다. 승방이 딸려 있는 예배당이니까 번역하자면 승방굴로 보면 됩니다. 석굴암은 이중에서 차이티아에 속합니다."

문 소장은 '비하라'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몇 년 전 중앙아시아를 여행할 때 들렀던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도시 '부하라'를 떠올렸다. '부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원'을 뜻한다. 도시 이름에 걸맞게 부하라에는 수많은 이슬람 사원이 있었다. 부하라의 구시가지 자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이기도 하다.

부하라 또는 비하라, 발음이 뭐가 정확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부하라에 있는 커다란 사원들은 종합사원의 성격이고 석굴암은 '차이티아'에 속한다. 문 소장은 석굴암이 차이티아 중에서 짜임새와 규모 등 모든 면에서 단연 최고라고 말한다. 석굴을 다른 방식으로 분류하자면 산이나 바위를 뚫어서 만드는 개착석굴과 돌을 쌓아서 만드는 축조석굴로 구분된다. 석굴암은 이 중에서 축조석굴에 속한다.

석굴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중국 실크로드에 있는 석굴들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만들어놓은 수많은 석굴들.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사본이 발견된 곳도 그곳이다.

문 소장은 외국 어디를 가더라도 석굴암같은 석굴이 없다고 말한다. 실크로드에 있는 석굴들은 보통 내부가 벽화로 장식돼 있는데, 석굴암은 그 대신에 조각을 둘러놓았기 때문에 굳이 벽화를 그릴 필요가 없다. 그 조각들도 세계에 유례가 없을 만큼 일목요연하고 체계적이다.

"석굴암에 들어가면 입구에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있고 그 안쪽에 금강역사(金剛力士)와 사천왕(四天王)이 있죠. 여기까지가 전실입니다. 본실로 들어가면 부처님의 제자와 보살들이 쭉 둘러서 호위하고 있죠. 이렇게 체계적으로 잘 짜여진 석굴은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중국이나 인도에도 없어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석굴이에요. 석굴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합니다."

불교의 불이사상을 표현하는 다보탑, 석가탑

극락전 앞 마당에 황금돼지상을 조각해 두었다.
▲ 세계유산 불국사 극락전 앞 마당에 황금돼지상을 조각해 두었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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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는 어떨까. 삼국시대에는 주로 경주시내 평지에 가람을 배치해서 사찰을 만들었다. 황룡사가 대표적이다. 불국사는 통일신라시대로 들어오면서 언덕을 끼고 만들어낸 사찰이다.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넓게 비어 있는 평지가 별로 없어서 산언덕에 가람을 배치한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처럼 산속 깊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지형적 특징 때문에 불국사는 크게 보아서 3단의 구성을 가진다. 일주문에 들어간 후에 보이는 마당이 1단. 청운교, 백운교를 올라서 자하문에 들어가면 2단. 거기서 더 올라가서 비로전 영역이 3단이다. 이 세 개의 단을 연결하는 것이 돌로 만든 계단이다. 그것도 작은 돌이 아니라 규모있는 판석으로 만들어낸 계단이라서 석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평지에 있는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석축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청운교, 백운교하고 자하문을 받치는 기단부가 아주 아름답습니다. 대웅전과 극락전 등의 건물들은 목조건물이지요. 불국사는 석축의 아름다움과 목조건물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사찰입니다. 이렇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찰은 세계에 없습니다."

문 소장은 또 자하문 안으로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석가탑, 다보탑과 석등은 석조미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다보탑은 기기묘묘한 구성, 석가탑은 육중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좌우대칭이자 이형대칭의 묘미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탑이다. 목조건물인 대웅전과 함께 다시 목조와 석조의 조화를 보여준다. 극락전과 비로전에는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금동불상이 두 구 놓여 있다. 석굴암 내부의 조각미와 함께 통일신라의 미를 우리에게 잘 전해주고 있는 불상이다.

문 소장은 다소 복잡한 구조를 가진 다보탑이 2층이라고 말한다. 지붕돌이 두 군데 있고 층처럼 보이는 다른 곳은 난간이라는 것이다. 3층 또는 4층이라고 보는 설도 있는데 2층설은 자신이 제일 먼저 주장했다고 한다. 이 두 개의 탑에 통일신라의 불교사상이 함축되어 있다.

"석가여래(釋迦如來)가 법화경을 설법하는 자리에 다보여래(多寶如來)가 와서 보고 있었지요. 그때 마침 석가여래가 아주 중요한 진리를 얘기하는 거에요. 그래서 다보여래가 자신의 자리 절반을 내주며 이곳에서 설법해달라고 했어요. 다보여래와 석가여래가 나란히 앉아있는 불상이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입니다. 입상도 있지만 주로 좌상인데 우리나라에도 있고 특히 중국에 많습니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이불병좌상을 두 개의 탑으로 구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불교의 불이사상(不二思想)도 포함되어 있다. 둘이 다르지 않다. 하나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화엄경에서는 하나가 수많은 것으로 변하고 수많은 것이 하나로 합쳐진다고 말한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진리와 세속이 다르지 않다. 석가탑과 다보탑이 그 사상을 나타낸다.

관광객을 위해서 제2석굴암을 만들어야

석굴암으로 들어가는 입구
▲ 세계유산 석굴암 석굴암으로 들어가는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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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와 석굴암을 둘러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지 못하고 석굴암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던 점을 이야기해 보았다. 문 소장은 대대적인 보수공사 후에 보존문제 때문에 그렇게 출입을 금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옛날 저는 초등학교때부터 불국사에 갈 때마다 청운교, 백운교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런데 그때하고 지금하고 상황이 너무 달라요. 하루에 오는 관광객의 수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습니다. 개방하면 하루에 많게는 수백 명이 오르내리고, 올라가서 안 내려오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웃음). 청운교, 백운교의 돌이 천몇백 년이 지난 돌이라서 그럴 경우 버티지 못할 겁니다. 혹시라도 파손되면 그때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지요."

석굴암도 지금 관광객이 내부에 들어갈 수 없으니 제2석굴암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제2석굴암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두 차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문화재청이 주동이 돼서 한 차례 있었고, 2000년 들어서 문 소장이 중심이 돼서 다시 한 차례 있었다.

"석굴암에 들어가지 못하고 유리벽 너머로 내부를 보아야 하니까 당연히 관광객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았지요. 석굴암의 명성을 듣고 멀리 외국에서 찾아온 여행자들도 '이게 뭐냐'고 불평합니다. 유리벽 너머로 본존불도 잘 안보이고 그런데도 돈은 다 받아가고 하니까요. 그러니까 제2석굴암을 만들어야 합니다. 석굴암이 있는 곳 아래 마당에 만들면 되요. 마당을 지붕삼아서 똑같은 크기의 석굴을 만들면 되지요."

그렇게 문화재청 담당자들과 함께 위원회를 만들고 예산까지 확보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주시측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언제 다시 제2 석굴암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을까. 문 소장은 언제라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커다란 공사도 아니고 자연이 훼손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제2석굴암을 아무리 석굴암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원래 석굴암 내부에서 느낄 수 있는 천 년의 세월까지 재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유리벽에 가로막힌 본존불을 보는 것보다 제2석굴암에 들어가 볼 수 있다면 나름대로 덜 실망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복제품을 만들어서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 소장은 제2석굴암에 대해서 아래처럼 강조한다.

"석굴암이 언제 노화될지 모릅니다. 제2 석굴암을 만들면 앞으로 2000년은 더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가 되면 제2 석굴암도 국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국보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거지요(웃음)."

세계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기와에 글을 남겨두었다. 이곳 관리인에 의하면 170개국에서 석굴암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이 유리벽 너머로 본존불의 앞모습만 보았을 것이다.
▲ 세계유산 석굴암 세계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기와에 글을 남겨두었다. 이곳 관리인에 의하면 170개국에서 석굴암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이 유리벽 너머로 본존불의 앞모습만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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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터뷰는 지난 달 9월 30일 진행됐습니다.



태그:#세계유산, #불국사, #석굴암, #문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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