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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 저녁 9시 30분경. 대청도 근해에 있던 인천해경 소속 501함으로 긴급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침몰하고 있는 천안함을 구조해달라는 것이었다. 현장에 급파된 501함은 고속단정을 이용해 생존자 56명을 구조했다.

 

윤현석(26·한국예술종합학교2)씨는 당시 501함의 내무반장이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의 한 카페에서 지난 5월 전역한 윤씨를 만났다. 그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처음에는 해군 함정에 작은 구멍이 나서 구조를 요청하는 줄 알았어요. 설마 1000톤급 함정이 침몰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가 말하는 구조 당시의 상황은 아수라장이었다.

 

"조명탄으로 하늘이 붉게 변했어요. 501함에서는 해경 대원들과 천안함 생존자들이 뒤엉켜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서글프게 울고 있는 병사들도 있었는데, 한 장교가 '울지마!'라고 크게 소리를 쳤어요.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해요."

 

천안함에서 구조된 생존자들은 501함에 올라탄 뒤 식당 등으로 옮겨졌다. 내무반장이었던 윤씨에게는 천안함 생존자 명단을 작성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윤씨는 그 명단을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출석부'라고 불렀다.

 

"그들조차 누가 살았는지 모르고 있었어요. 천안함에서 구조된 병사와 함께 차례대로 한 명씩 생존자 명단을 작성했어요. 누구 살아 있느냐고 소리를 지르는 장교도 있었어요. 가슴이 아팠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었죠."

 

천안함 생존자들, 공포감 속에 담배 찾기도

 

윤씨는 추위에 떨고 있는 생존자들을 위해 동료들과 계속해서 뜨거운 물을 준비했다. 상당수 병사들은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터였다. 그는 신발을 못 신고 구조된 생존자를 위해 운동화를 내주기도 했다. 구조작업이 마무리되자 담배를 찾는 병사도 나왔다.

 

"얼마나 무섭고 떨렸으면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담배를 찾았겠어요. 동료들이 갖고 있는 담배를 모아서 그들에게 나눠줬어요. 바들바들 떨면서 담배를 태우는 병사도 있었어요."

 

모든 구조작업이 완료되고 천안함 생존자 56명은 해군에 인계됐다. 그러나 윤씨를 비롯한 해경 대원들은 쉴 틈이 없었다. 이어지는 업무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윤씨는 "당시 1시간도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피곤한 것보다 정신적 충격이 더 컸다고 했다. 501함은 이후에도 사고 해역 부근에서 수색작업을 계속하다 출항 6일째 되는 3월 30일이 되서야 인천해경 전용부두로 복귀할 수 있었다. 

 

"천안함 사건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현재 윤씨의 직업은 두 개다. 하나는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대학생. 다른 하나는 만화가다. 그는 지난 달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특이한 점은 그가 출품한 작품의 내용. 한 소년의 허무한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는 그의 만화 끝 부분에는 천안함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천안함 희생자들의 명단이 차례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윤씨는 "사람은 누구나 어떤 삶을 살았든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들이 누구였든 간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연민의 정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품을 통해 죽은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천안함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 쓴 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진보든 보수든 제발 천안함 희생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국민들이 정치적인 해석 없이 천안함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작 그들은 없어요. 이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아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죠. 이걸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

 

윤씨는 담담하게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설명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그:#천안함, #501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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