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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대전'이 벌어지는 때는 언제일까? 여름이다. 언론은 물론이고 서점들도 여름 피서법으로 추리소설을 추천하며 다양한 테마로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때문인지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초여름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니, 많았다. 이제 그러한 모습은 과거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피엔드에 안녕을> 표지
 <해피엔드에 안녕을>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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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숨겨진 걸작들이 계속해서 소개되고 인기 작가들의 작품들도 꾸준히 번역되다보니 이제 추리소설의 성수기는 때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저번 달에도 그랬고 9월에도 멋진 추리소설들이 소개돼 독자들을 유혹했다. 그리고 그건 여름을 훌쩍 넘긴 11월에도 마찬가지다.

11월의 추리소설 대전에 임하는 작품들은 무엇인가? 중순에 다다른 지금, 네 작품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의 본격미스터리 대상을 사상 최초로 2회 수상한 우타노 쇼고의 <해피엔드에 안녕을>과 <밀실살인사건>,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와 함께 '본격 추리소설의 신'이라 추앙받는 아유카와 데쓰야의 <리라장 사건>,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추리소설가로 손꼽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의 고뇌>가 그것이다. 이렇게, 각기 독특한 개성과 매력을 지닌 작품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한 혈투를 벌이는 중이다.

'신본격 미스터리의 귀재'라고 불리는 우타노 쇼고는 현재 가장 부상하고 있는 작가 중 한명이다. 이 작가의 장점은 정밀한 트릭과 허를 찌르는 반전인데 <해피엔드에 안녕을>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집이다.

언니를 질투하는 소녀, 시골 친척 집에서 비밀의 방을 발견한 소년, 미팅에서 만난 남자의 선물 공세에 지친 젊은 여자,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던 노숙자 등을 주인공으로 하는 <해피엔드에 안녕을>은 11개의 단편소설을 선보이는데 '반전종합세트'라는 수식어가 떠오를 정도로 다양한 트릭을 사용해 예측불허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건 그 반전들로 장식된 결말이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해피엔드의 정반대쪽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 좋은, 추리보다는 감동을 앞세운 요즘의 추리소설에 대한 반발심에서 그렇게 한 것일까? 우타노 쇼고의 의도가 어쨌든 덕분에 <해피엔드에 안녕을>은 허를 '제대로' 찌르고 있다. 본격추리의 맛 또한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밀실살인게임> 표지
 <밀실살인게임> 표지
ⓒ 한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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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추리소설 대전에는 우타노 쇼고의 소설이 한권 더 참여하고 있는데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표지가 돋보이는 <밀실살인게임>이 그 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극단을 향해 달려가는 본격추리소설이라고 할까?

<밀실살인게임>은 다섯 명의 네티즌이 추리게임을 펼치는 내용이다. 그런 모습이야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속내를 알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밀실살인게임>의 '그들'은 상상으로 트릭을 만들고 맞춰보라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살인을 하면서 트릭을 선보이고 있다.

"죽이고 싶은 인간이 있어서 죽인 게 아니라 써보고 싶은 트릭이 있어서 죽였지"라고 말하는 그들에게는 범죄의식 같은 것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맞추지 못하는 새로운 트릭을 선보이고 싶은 욕망뿐이고 또한 그런 것을 맞추고 싶다는 욕심 밖에는 없다.

연쇄살인을 저지르면서 "다음은 누구를 죽일까요?"라고 묻고 있으니 더 말해 오죽하랴. 이런 탓에 내용이 좀 잔인해보일지 모르겠지만, 본격추리의 모습만큼은 혁혁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각종 트릭은,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만들고 있다.

<리라장 사건> 표지
 <리라장 사건> 표지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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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노 쇼고의 소설에 비하면 아유카와 데쓰야의 <리라장 사건>은 조금 얌전한 편이다. 일곱 명의 남녀 예술대학교 학생들이 찾아간 산장에서 연쇄살인이 벌어지면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한다는 고전적인 플롯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얌전하기만 한 건 아니다.

산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에게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가 하면 모두가 범인이 될 수 있다는 단서를 남겨놓기도 하는 이 소설은 치밀하면서도 정교한 트릭, 완벽에 가까운 복선, 예측불허의 결말로 추리소설의 마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 팬들이 가장 원하는 내용은 뭘까? '범인 찾기'가 아닐까? <리라장 사건>은 그러한 순수한 즐거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반면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의 고뇌>는 범인을 찾는 것보다 새로운 트릭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트릭을 알아가는 즐거움이란 무슨 뜻일까? <용의자 X의 헌신>에 등장하기도 했던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교수'와 경시청 형사 '구사나기'의 기묘한 범죄 소탕을 그리고 있는 <갈릴레오의 고뇌>는 과학과 초자연적 현상을 이용한 범죄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범인 맞추기는커녕 트릭 맞추기도 쉽지 않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소설의 매력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면서 정교한 추리게임을 선보이는 것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갈릴레오의 고뇌> 표지
 <갈릴레오의 고뇌> 표지
ⓒ 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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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트릭들만 등장했다면 <갈릴레오의 고뇌>는 '생소한' 추리소설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누군가. 히가시노 게이고다. 그런 트릭들이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또한 감동을 선사하는 반전이 더해지면서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처음부터 트릭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소설이 재밌으며 종종 콧등을 시큰거리게 만드는 애틋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독자들에게 어필할 만한 힘이 충분하다.

네 권의 작품은 하나같이 쟁쟁한 작가들의 소설이지만 약점들도 있다. <해피엔드에 안녕을>은 단편소설로 구성됐다는 점과 해피엔드에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아킬레스건이다. 국내 추리소설 팬들이 좋아하는 특징들을 비껴가고 있다. <밀실살인게임>은 트릭을 사용하고 싶어 사람을 죽인다는 설정이 선정적이면서도 잔인하게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극단에 향해 달려가는 만큼 또 다른 극단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리라장 사건>은 작품이 쓰여진 시기가 50년도 더 된 까닭에 분위기가 옛날 스타일이라는 점이 아킬레스건이다. 인물들의 성격이나 대화 등이 추리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갈릴레오의 고뇌>는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제5탄인 만큼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선뜻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있다. 소설의 분위기부터 시리즈를 읽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지라 읽지 않은 독자라면 완전한 즐거움을 느끼는데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아킬레스건은 전체적인 즐거움에 비하면 아킬레스건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해피엔드에 안녕을>, <밀실살인게임>, <리라장 사건>, <갈릴레오의 고뇌>의 수준은 어느 작품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 모두 다 최후의 승자가 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그러니 더 말해 무엇할까. 이래나 저래나 추리소설 팬들은 즐거울 따름이다.


해피엔드에 안녕을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문학동네(2010)


태그:#추리소설,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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