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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멋진 낭만을 가진 로맨티스트가 분명하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를 로맨티스트로 만들어주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올 한해 손으로 쓴 편지 받은 것을 모아보니 무려 14통이나 되었다. 14통의 편지를 받았으면 나 역시 14통의 답장을 썼다는 얘기다. 아, 아직 답장을 못 쓴 편지가 한통 있으니 13통의 손으로 쓴 편지가 오고갔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휴대전화가 있고 인터넷 메일이 있어 편지함에는 각종 고지서밖에 들어있지 않은 요즘, 우표 위에 발송지의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펜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가슴을 설레는 일이다.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일인가? 지금 저 멀리 남쪽 따듯한 곳에서 벗이 보내온 편지를 읽고 있다. 답장을 쓰려고 하니 뭔가 그래도 근사하게 쓰고 싶은데 잘 안 된다. 해서 이곳에 먼저 쓰고 만년필로 편지지에 옮겨 적어볼까 한다.


 

 

나의 사랑하는 벗에게.

 

한 달 후면 달력도 새로 바꾸어야 되는 것을 보니 세월이 참 빠르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0년을 되짚어볼 때 비 내리고 눈 내리는 궂은 날도 많았지만 벗이 있어서 유난히 햇살 좋은 날만 기억에 남습니다. 지난번의 여행으로 후유증이 심했습니다만 그나마 다행인 것이 벗과 함께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편집하고 앨범으로 꾸미면서 참을만 했습니다.

 

모니터에 사진을 수십 장 띄워놓고 선별을 하며 벗과의 알콩달콩했던 시간을 잊을 수 있었고 앨범을 만들어 우체국으로 가면서 또다시 그리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누군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 이것이 벗님께서 저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곤하면 잠을 자는,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일체의 경계 없이 사는 저이지만 벗에 대한 그리움의 경계만은 항상 있으니 저 역시 아직은 살아 숨 쉬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확인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벗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서로가 "고맙다, 미안하다." 이런 말은 없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고마운 일이 있다면 그저 씩 웃고 미안한 일이 있어도 뒤통수 긁으며 그저 씩 웃고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벗이니까 동무니까 기꺼운 마음으로 베풀었을 것이고, 벗이니까 동무니까 미안한 마음도 보듬어줄 수 있다 여기는 까닭입니다.

 

암튼 지난번 안동여행의 후유증이 가실만 하는 순간에 벗님의 편지로 인해서 또다시 내 마음은 흔들립니다. 아마도 올 섣달 그믐날에는 남해의 미조항으로 여행을 떠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조항에 촌놈 한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떠주시는 회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싱싱하고 맛나다고 어느 시인 한분이 초대를 했습니다. 나는 시를 모르는 사람이니 회 한 첨에 소주 한 잔과 바닷바람이 그리워 떠나기는 합니다만 만약에 시인께서 뻥을 치셨다면 남해바다 모래사장에 패대기를 치고 올 심산입니다. 왜냐하면 시인이 치는 뻥은 용서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말 많은 것 때문에 탈도 많은 사람인데 글이 길어졌습니다. 아무쪼록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이만 펜을 놓을까 합니다.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오빠께도 안부 부탁드립니다.

 

2010년 11월 18일 당신을 사랑하는 벗 조상연 씀.

덧붙이는 글 | 우체국 소인이 찍힌 만년필로 꾹꾸 눌러 쓴 편지를 받아보셨는지요. 올해가 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운 편지지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 한 통 보내보면 어떨까요? 꽃반지 매어주던,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태그:#편지, #사랑,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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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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