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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영변에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보유했다는 보고서가 미국의 핵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에 의해 제출됐다. 보고서에서는 이 시설들이 2009년 4월 영변에서 IAEA 사찰단이 철수할 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며,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2006년 10월 첫 핵실험 이후 취해진 유엔 안보리 제재를 피해 외부 도움을 받아 건설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더 이상 2002년 미국의 HEU(고농축우라늄) 의혹 제기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의혹의 시작점이었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 시기상으로 봤을 때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이명박 정권의 <비핵·개방·3000>, <그랜드바겐> 등 '구호에 불과한 대북정책'으로 대화의 문을 닫아버린 실패한 대북정책이 그 원인임이 명백해졌다.

 

대화 중단 3년, 북한의 우라늄 농축활동은 '역사적으로' 예고된 수순

 

북한은 그간 대화의 테이블이 닫힐 때마다 핵과 미사일 능력을 증강 시켜 왔다. 2002년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이어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화를 닫자, 3년 뒤인 2005년 2월 북한은 핵무기 보유선언을 했다.

 

그 이듬해인 2006년 9·19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BDA(방코델타아시아) 계좌를 동결하자 10월 9일에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2007년 2·13 합의와 북의 핵시설 신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검증의정서' 문제로 6자회담을 교착 시키자 2009년 4월 미사일 실험과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강행한 바 있다.  

 

이명박 정권 취임 후 3년 사실상 남북 간 대화는 문이 닫혔다. 이 때에도 '대화 중단=핵능력 증강'이라는 공식은 그대로 적용됐다. 2002년부터 제기됐던 우라늄 농축활동을 줄곧 부인하던 북한은 2009년 4월 '경수로 자체 건설'을 처음 언급하며 공식화했다. 2009년 5월에는 2차 핵실험 이후 우라늄 농축작업 착수를 선언했으며, 9월에는 우라늄 농축실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가고 있음을 공언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은 구호뿐인 <비핵·개방·3000>과 <그랜드바겐> 등 '선핵폐기'에 집착하면서 6자회담의 발목을 잡았다. 남북 간의 대화의 문은 물론이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6자회담의 문고리마저 놓아 버렸다. 이명박 정권의 대화 거부, 끝내 열리지 않는 6자회담, 북한의 우라늄 농축활동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MB정부, 정책 실패 반성-중대국면 대응 모두 실패

 

보고서에서 언급한 원심분리기 2000여 대가 사실이라면 탄두 무게 20Kg 정도 되는 핵무기를 매년 2대씩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는 북한의 핵능력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단계로 발전했다는 의미다.

 

미국의 스티븐 보스워즈 대북특사가 한·중·일을 급히 방문한 것은 미국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원심분리기 확보로 인해 한반도와 동북아에 핵보유 도미노 현상을 촉발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제 북핵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그간 실패한 대북정책에 대한 반성은 물론이고, 사안의 중대성만큼이나 신중하면서 철저한 대응을 해야 한다. 정부는 "이미 알고 미국과 공조하던 부분이다. 작년에 우리 정부가 그랜드바겐(일괄타결)을 제안한 배경 중 하나가 농축 우라늄이었다(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면서 대북정책 실패론에 대한 책임 추궁을 면하려 한다.

 

하지만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국방부장관의 '전술핵 재배치' 발언은 정부의 신뢰를 스스로 하락시키고 있다. 정부는 벌써부터 '북한의 원심분리기 2000기 보도'에 '한반도 전술핵 배치도 고려할 수 있다'면서, 한반도에 핵전쟁의 위기감만을 조장하고 있다.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도, 중대국면에 대한 대응도 모두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남북은 이미 지난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함"은 물론,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고 합의했다. 또한, 지난 2005년 9·19공동성명(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대한 준수, 이행을 명확히 한 바 있다.

 

북한의 농축 우라늄 시설에 대해 안보리 결의 1874호 위반을 이유로 추가 제재에 임할 가능성도 있겠으나, 이에 대한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미국 역시 북핵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는 9·19 공동성명에서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공개한 우라늄 농축시설이 경수로 발전의 연료, 즉 전력 생산을 위한 평화적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적 추가 제재마저도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핵문제 급변상황, 책임은 이명박 정권에 있다

 

이명박 정권이 이번에도 제재와 봉쇄의 카드를 선택하고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북한은 계속해서 핵능력을 증강 시켜 나갈 것이다. 이것은 최근 20년 동안의 북한핵 개발의 역사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게 되면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비확산 논의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북한의 몸값은 올라가고 동북아의 평화는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다.

 

9·19 공동성명은남북은 물론 미·중·일·러가 동시에  한반도의 비핵화를 약속한 국제적 합의다. 비핵화의 약속과 그에 상응하는 경제·에너지 지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동북아 다자안보협의체의 구성까지 전망했다. 이러한 국제적 합의를 놔두고 핵전쟁의 위험에 한반도를 빠뜨려서는 안된다.

 

이명박 정권은 그간 민주정부 10년의 성공적인 햇볕정책에 대해 근거 없는 힐난으로 일관했다. '기다리는 것도 정책'이라며 대북강경정책만을 고수하더니 급기야 북한의 핵능력을 예측불가능한 상황으로까지 급진전했다. 이 모든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통일부장관 경질하고, 6자회담-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야

 

정부는 시급히 6자회담을 재개하고 9·19 공동선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관련국과의 협의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그것만이 한반도의 비핵화와 동북아의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 아울러,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실효성 없는 비핵·개방·3000을 즉각 폐기하고, 대북정책 기조를 즉각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정책담당자 교체다. 통일부는 정부 출범 후 3년간 남북관계 기본계획에 따라 매년 작성토록 하고 있는 연도별 이행계획을 단 한 차례도 수립하지 못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 2007년 처음으로 만들어진 남북관계기본계획을 수정하겠다고 공언한 지 1년이 넘었지만 변경안은 지금도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책임질 수 없다면 대북정책 책임자인 통일부장관이라도 책임져야 한다. 해법은 대화요, 대화의 시작은 현인택 장관의 경질에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태그:#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9.19 공동성명, #그랜드바겐, #비핵개방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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