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매일 저녁이면, 여의도 국회 앞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들이 차가운 초겨울바람을 맞으며 미사를 연다. 새찬 바람에도 꺼지지 않은 수십 개의 촛불이 신부님들과 미사 참가자들을 안온하게 데우고 있지만 곧 찾아올 본격적인 한겨울의 추위에도 촛불의 온기가 계속 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농지가 파괴되었거나 농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내년에 씨를 뿌릴 수 있는 땅을 되찾기 위해 이번 겨울을 편히 쉬지 못한다. 또한 작년에 이어 이번 겨울에도 국회 앞 찬 바닥에서 농성을 펼칠 활동가들은 끝나지 않는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 정부의 4대강 사업 때문이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중앙정부 차원의 국가적인 사업으로 홍보하고 추진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란 국민적인 요구나 수요가 있는 사업을 의미하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적인 반대는 들어 봤어도 국민적인 요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국민적 요구도 없는, 각종 절차를 무시하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며 진행되고 있는 일개 토목사업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과잉의미화하여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국토에 대한 국민의 주권을 통치자들이 전유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즉 4대강사업이란, 아직까지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완전히 정착되지 못한 우리 사회에, '국가주의'를 등에 업은 토건세력이 침투하여 국민을 속이고 국토를 탈취하는 행위인 것이다. 국가주의는 4대강 사업을 원할하게 추진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인 것이다.

 

국가주의에 매몰된 체 추진되고 있는 4대강사업

 

현 정권인사들은 '국가적 사업'라는 말을 신성하고도 검증이 불필요한, 따라서 '비판해서는 안되는 그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4대강사업 논쟁과 관련해서도 드러나는 부분이다. 환경적, 법적 근거를 내세우는 4대강사업 반대 주장에 대응하는 정부를 비롯한 찬성측 주장의 특징은, 4대강 사업에 대한 모든 비판들은 국가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을 방해하는 정치적 주장으로 매도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와 관련해 다른 지역의 문제까지 시도지사가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국책사업에 종교계가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경솔한 행동"이라는 심명필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장의 발언은 사업 추진세력이 어떤 생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즉 4대강반대 의견에 대해 국가라는 무소불위의 관념에 포섭된, 지극히 반민주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어 4대강 논의 자체가 전체주의적 국가절대주의에 함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4대강 사업이 단지 환경관련 사안을 넘어 민주주의의 문제를 안고 있는 정치적 사안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수 국민의 지속적인 반대에도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이 정부의 행태로 볼 때, 현 정권이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국가절대주의에 경도된 일방적 국정운영을 일삼고 있는 현 정부가 바라보는 국민의 모습은 국가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논의하는 민주적 소양을 갖춘 건전한 시민이 아닌, 국가정책에 무조건 순응해야하는 어설픈 신민(臣民)일 뿐이다. 얼마 전 여당 국회의원이 현 영부인을 '국모'로 지칭한 것은 현 정권 인사들의 이런 시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4대강 사업도 국가라는 절대적 조직체가 백성을 위해 집행하는 완전무결한 과업으로 상정되어 사업에 대한 반대를 불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이 정권의 4대강 사업은 강주변의 천재지변에 항시 시달리고 있는 가엽고 어린 백성들을 위해 마련된 치산·치수 사업이며, 그 과업을 이룩하여 백성에게 하사하겠다는 어진 임금의 덕치의 발현인가? 오히려 각종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법 위에서 사업을 추진하면서 자연자원이라는 귀중한 국가자산을 토건투기세력에게 팔아넘기는 마피아의 행태에 더 가깝지 않은가? 임금과 마피아 둘 중 어느 쪽이든 모두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새로운 국토관으로의 전환에 걸림돌인 4대강 사업

 

우리사회에 환경문제가 주된 쟁점으로 부각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경제성장과 함께 각종 대규모 개발사업이 추진되었고 그에 대한 반대 여론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이제 환경문제가 환경만의 사안이 아닌 주된 정치적인 쟁점이 되었다. 이것은 국토에 대한 인식을 국가적 차원에서 재고해야 하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이제껏 국토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해왔다면 이제는 국토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우리 사회가 당면하게 된 것이다.

 

경제성장의 동원요소로 국토를 보아 왔던 압축성장시대의 국토관에서 국민 삶의 질의 향상이라는 맥락에서 자연과의 공존이 모색되어지는 새로운 국토관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때이다. 그러나 현 정권은 아직도 전자의 국토관에 머물러 있다. 선진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정부의 국토관 치고는 매우 구태적이고 후진적이다. 선진국가로의 도약을 원한다면 정부는 국토의 자연환경에 대한 철학 부터 먼저 세워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의 삶의 질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국토관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요구된다. 같은 맥락에서 4대강사업 논쟁도 어떤 국토관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닿아 있다. 즉 4대강 논쟁 앞에 '기득권층의 국토관'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과 공존을 바라는 '국민을 위한 국토관'으로 전환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4대강사업은 새로운 국토관으로의 전환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주권회복으로서 4대강 사업 반대

 

새로운 국토관을 설정해야 하는 지금의 이 시기, 구래의 국토관으로의 퇴행을 의미하는 4대강 사업은 당연히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탈정치화시켜 탈쟁점화 시키려한다. 탈쟁점화 과정에서 4대강사업은 국민적 논의대상이 아닌 국가 행정부의 권한으로 진행할 수 있는 행정사안이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 과정에서 국토에 대한 국민의 권리 행사는 차단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국토에 대한 국민의 주권이 무력화되어 가는 속에서 민주주의는 토건경제의 늪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 지점에서 4대강 사업의 반대는 국토에 대한 국민 주권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다시 민주주의의 문제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로 시끄럽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역시 4대강사업 예산이 쟁점으로 떠 올랐다. 작년 말에 통과된 올해 4대강사업 예산으로 전국토의 강들은 이미 상당부분 파괴되었다. 작년까지 국토의 주인이 국민이 아닌 건설사들과 토건정치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4대강 예산을 반드시 막아내서 국토의 주인이 국민임을 선언해야 한다. 4대강을 '저들의 4대강'에서 '국민의 4대강'으로 돌려놓는 그 순간이 바로 국토에 대한 국민의 주권이 회복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종겸 시민기자는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입니다.


태그:#4대강사업, #4대강살리기, #대운하, #이명박, #민주주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