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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아침이 우리를 과거로 데려갔다.
 안개 아침이 우리를 과거로 데려갔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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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 지척을 구분할 수 없었던 안개는 아침이 되자 가시거리가 멀어졌습니다.
밤에 소주 '각1병'후 헤어졌던 소엽선생님과 김용규감독께서 다시 모티프원으로 오셨습니다.

저를 빼고 해장국을 드실 수 없다, 는 어여쁜 발걸음이셨습니다.

우거지해장국을 가뿐히 비운 뒤에도 따뜻한 방바닥 탓에 쉬이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바깥의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방안 분위기가 절로 과거의 한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갔습니다.

소엽선생님이 초등학교3학년 때의 아드님 얘기를 꺼냈습니다.

"가을 운동회의 100m달리기에서 성배가 일등으로 들어오고 있었어요. 전 아들의 분발에 기뻐서 얼른 카메라를 들고 골인테이프 전방으로 갔습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서 골인테이프를 휘날리는 장면을 찍고자 기다리는데 좀처럼 골인을 하지 않는 거예요. 결국 2등으로 달리던 친구가 1등으로 골인테이프를 걷었고, 3등이 2등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카메라를 내리고 성배를 보니 골인지점 5m쯤 전방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꼴찌였던 친구가 달려오자 마침내 그 친구 손을 잡고 함께 골인점을 들어오는 겁니다. 저는 의아해서 왜 제자리 뛰기를 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말했어요. '상 받아서 뭐해요? 진짜 일등이 중요한 거지.'라고……."

소엽선생님의 육상경기얘기를 마치자 김용규감독님이 말을 받았습니다.

"저는 달리기에 젬병이었어요. 뛰기만 하면 언제나 꼴찌였습니다. 그것도 끝에서 2등과 썩 멀어진 꼴찌로……. 응암국민학교 운동회날이었어요. 우리반의 100m 달리기가 시작되고 마침내 제 순서가 왔습니다. 출발선상에 다섯 명이 나란히 섰습니다. 출발총성이 울리자마자 저는 눈을 질끈 감고 정신없이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한 참을 달린 후 앞을 보니 멀리 제 가슴높이로 웬 테이프가 가로질러 있는 겁니다. 저는 높이 처진 그 테이프를 어떻게 뛰어 넘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나를 앞서 달리던 경쟁자들은 도대체 저것을 어떻게 넘어갔을까 의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나를 지켜보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어떡해든 넘어볼 심산이었습니다. 마침내 그 테이프에 가까이 가자 발을 굴려 힘껏 하늘로 솟구쳤습니다. 그리고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달려와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긴장한 탓에 발이 엇갈려 뜀박질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 테이프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던 것입니다. 마침내 제가 정신을 차리자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용규야! 너는 도대체 왜 골인테이프를 뛰어넘으려고 한거야?'"

그 테이프는 허들경기의 넘어야할 장애물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아장아장 그러나 최선을 다해 뛰어오는 꼴찌의 인내를 격려하기 위해 일등이 가슴으로 걷었던 그 테이프를 다시 펴서 잡고 있었던 골인테이프였던 것입니다.

운동장을 학생들과 그 동네 사람들로 가득 메웠던 가을운동회의 100m 경주에서 제자리 뛰기를 했던 임성배는 지금 대학강의와 각종 연주로 바쁜 오보에이스트가 되었고 골인테이프를 허들 장애물로 착각했던 꼴찌 전담의 김용규는 대한민국드라마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감독이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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