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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흩어져 있으면 필패한다는 것은 이번 사태를 통해서 더욱 분명해졌다."

 

이철희 민주당 전략기획부위원장은 지난 8일 한나라당의 새해예산안 날치기 처리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의 말처럼,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진입한 뒤 단 2시간 40분만에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처절하게 끌려나갔다.

 

민주당 이종걸·홍영표·양승조 의원 등이 차례로 뜯겨져 나갔고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은 단상 밑으로 잡아당겨졌다. 의장석에 양팔을 걸고 버티던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의 완력에 의해 끌려가다 실신하고 말았다. 본회의장 밖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9일 만난 한 야당 여성당직자의 팔엔 멍자국이 시퍼렇게 남았다. 손등에도 이리저리 할퀴어진 상처가 눈에 띄었다. 아수라장으로 변모했던 '민의의 전당'에서 집권여당이 남긴 '상처'였다.

 

우위영 민노당 대변인은 "미디어법 강행처리 때보다 훨씬 더 처참한 패배"라고 규정했다. 신문·방송 겸영 등을 허용하는 미디어법 처리 당시엔 공청회 및 토론회가 있었고 상임위에서 여·야 간 치열한 논쟁이 진행됐지만 이번에는 그 모든 과정이 생략됐단 진단이었다. 또 '직권상정 최소화'의 원칙이 상실되면서 상임위 중심으로 현안을 풀어가던 '의회주의' 자체가 망가졌다. 국회 고유의 권한인 예·결산 심의권과 입법권은 자연히 훼손됐다.

 

물론 궁극적 해법은 선거를 통한 '의회 권력 교체'지만 당장 국회가 '견제'라는 고유 기능을 상실했다. 야당은 장외투쟁을 통해서라도 이번 사태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책임을 묻고 의회민주주의 회복에 나서겠단 입장이다. 특히 각자 수위에 차이가 있지만 다른 야당과 시민사회 모두 함께 전선을 구축하는, 이른바 '야권공동투쟁'을 논하고 있어 이번 예산안 날치기 사태가 야권연대의 촉진제가 될 수 있을 지 여부도 주목된다.

 

'비상시국회의' 출범시키는 민노당,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반MB 여론전' 계획

 

일단 원외에서 야권공동투쟁의 틀을 마련, 정부·여당의 일방 독주를 막아서자는 주장의 선봉엔 민주노동당이 있다. 민노당은 지난 9일 야권 및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비상시국회의'를 구성, 광범위한 이명박 정권 심판 여론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장외전에 나서는 야당들의 투쟁동력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한편, 시민사회를 결합시켜, '반MB전선'을 분명히 세우잔 얘기다.

 

시민사회도 여기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4대강사업저지 범국민대책위(4대강 범대위) 역시 민주당 등 다른 야당에게 오는 14일을 기점으로 '비상시국회의'를 구성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민노당 역시 시민사회의 주도로 보다 광범위한 세력이 참여하는 넓은 전선이 형성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단 판단 아래 비상시국회의에 대한 논의사항을 지켜보기로 했다.

 

비상시국회의 외에도 민노당은 의원단 및 지도부가 참여하는 '시국순회농성'을 통한 '여론전'에도 나선다. 다음 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도시의 거점에서 '진지'를 마련한 뒤, 기자간담회, 대국민선전전, 지역 사회 각계와의 간담회 등을 진행해 MB정권의 예산안·문제법안 날치기에 대한 광범위하 규탄여론을 규합하겠단 얘기다.

 

특히 부산의 경우, 6.2 지방선거 등을 통해 구축한 야5당(민주당·민노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의 관계가 매우 긴밀해 '시국순회농성'이 야5당 공동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하고 있다.

 

다시 천막 세운 민주당, "이번엔 2~3일만에 돌아오지 않는다"

 

민주당은 우선 야권연대보다 장기적인 장외투쟁을 위해 당내 동력부터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난 9일 밤 서울시청 앞 광장에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접었던 천막을 다시 쳤다. 9일 밤부터 14일 오전까지 100시간 동안 당 대표가 먼저 장외투쟁의 선두에 나서고 14일 이후부턴 당 소속 의원 등 당내 동력이 적극 결합하는, 이른바 '2단계 장외투쟁'이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이번엔 2~3일만에 돌아오는 장외투쟁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적으로 갈 수 있는 투쟁을 만들 것"이라며 단계적 투쟁의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이 최고위원의 말처럼, 민주당은 12월, 1월 예정돼 있는 의원들의 외유 일정을 모두 취소하란 지시도 내리는 등 '아스팔트 정치'의 장기화를 예고했다.

 

민주당은 당대표 100시간 시한부 농성기간 동안 '4대강 날치기 예산안 법안 무효화'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며 "이명박 정권의 의회 폭거"에 대한 여론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지역대의원대회를 권역별로 묶어 전국대의원대회를 여는 등 당 차원의 대규모 정치집회를 연속으로 개최, 당내 동력을 최대한 확보하겠단 전략을 세웠다. 당의 장외투쟁을 전국적 규모로 키워 정부·여당을 포위한다는 점에서 민노당의 '시국순회농성' 전략과 닮아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민노당이 제안한 '야5당·시민사회 비상시국회의' 참여여부에 대해선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전현희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와 관련, "(당의 대응전략을 논의한)의원총회에서 상당수 의원들이 야당과의 공조투쟁을 강조했다"며 "어차피 이번 사태에 대해 야권과 시민사회가 같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 만큼 시민사회와 민노당이 제안한 비상시국회의에 대해서도 곧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국민참여당도 합류 움직임

 

진보신당과 국민참여당은 장외투쟁 및 연대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진 않았지만 다른 야당의 움직임에 적극 동조하겠단 입장이다.

 

진보신당은 지난 9일 대표단 회의에서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처리를 강력 규탄하는 한편, ▲ 비정규직 철폐 ▲ 4대강 사업 반대 ▲ 한미FTA 반대 등 정국 현안사업을 중심으로 야5당과 공동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진보신당의 원내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박철한 의정지원단장은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지난 8일 국회 상황은 요근래 의정사에서 찾기 힘든 정부·여당의 독재적 행태로 본다"며 "진보신당은 그에 대응하는 다른 야당과 어떤 협력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민노당·4대강 범대위가 제안한 '비상시국회의' 추진에 대해서도 "명칭이 뭐가 됐든 이번 사태에 응하는 야권 공조의 틀이 필요하다"며 "장외투쟁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선 좀 더 고민이 필요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 곧바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원외 정당인 국민참여당은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 예산 불복종 운동 ▲ 악법 무효 투쟁 등의 형태로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사태에 대응할 것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참여당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원외 정당의 한계가 존재하는 이상 원내의 다른 야당들의 투쟁 방법 등이 결정되면 그에 맞춰서 공조하는게 더 효과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참여당은 오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의 날치기 처리사태와 한미 FTA 등 정국 현안들에 대한 당의 입장과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태그:#예산안 강행처리, #야권연대,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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