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보건소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어르신들.
 보건소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어르신들.
ⓒ 최성규

관련사진보기


2009년부터 전남 고흥군 나로도에 배치 받아 공중보건의로 지낸 지 1년 반 정도가 지났다. 일반인 입장에서 공중보건의라는 직업은 다소 낯설겠지만,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는 거의 날마다 보는 낯익은 얼굴이다. 주로 도서산간지방과 같이 의료시설이 열악한 곳에 근무하는 공중보건의는 의대·치대·한의대를 졸업하고 면허를 취득한 의료인들이 군 대체복무의 일환으로 지원하게 된다.

공공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공중보건의로 일하다 보면, 예전에는 관심 없었던 국가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정부의 정책과 의지에 따라 예산과 사업 방향이 결정되는 보건소의 성격상, 정부 정책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지원의 성격이 강한 것이 공공의료라서, 보건소에서는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처음 고흥군 나로도에 부임하고 나서 정신없이 몇 달이 지나갔을 무렵, 한 환자분이 상담을 요청했다.

"치료 받으러 온 게 아니고, 의료급여 때문에 그러는데요."
"아, 의료급여요?"

복지예산 삭감, 공중보건의는 참 난감합니다

의료급여는 저소득층의 의료 이용을 보장하기 위한 공적부조의 하나다. 1종과 2종으로 구분하는데, 기본적으로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되면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본인부담이 건강보험가입자보다 훨씬 낮아진다. 그 환자분은 1년간 받을 수 있는 '의료급여일 수'가 초과되어 '의료급여일 수' 연장 신청을 하러 온 것이었다. 신청을 하는데 의사의 진단서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 분 덕분에 의료급여에 대한 관심이 생겨 관련 뉴스를 봤더니, 의료수급권자에 대한 기준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2009년 1월부터 변경된 의료급여 신청 기준이 그 논란의 중심이었다. 1종 수급권자는 2종 수급권자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보건 관련 예산이 줄어 정부가 1종 수급권자 수를 줄이려 한 것이다. 정부는 그들을 재정부담이 덜한 2종 수급권자로 유도하려 했다. 

결국 1종 수급권자 수를 줄이기 위해 심사기준이 강화됐다. 1종 수급권자들이 그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로 능력 없음'이라는 표기가 꼭 들어간 3개월 이상 진단서를 무조건 제출해야 했다. 문제는 '식물인간' 환자 정도의 상태가 아닌 이상 '근로능력이 없다'는 진단을 내리는 것이 의사에게 굉장히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예전 같으면 1종을 받을 만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잠깐 외출이 가능하다는 이유 등으로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의료급여 환자를 강제로 줄여야 하는 부담이 의사에게로 떠넘겨진 것이다.

2009년 겨울의 일이 생각난다.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리고 국가적 재난사태라고까지 했다. 접종우선 대상자가 선정되었다. 의료방역요원이 10월, 학생은 11월, 영유아 및 임신부는 12월부터 접종이 시작됐다. 그리고 군인과 노인, 만성질환자는 다음 해 1, 2월에 접종이 시행됐다.

신종인플루엔자 환자가 급속하게 확산되는 가운데 2009년 8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보건소 앞마당에 설치된 컨테이너에서 간호사가 감기증상으로 찾아온 환자의 체온을 재고 있다.(자료사진)
 신종인플루엔자 환자가 급속하게 확산되는 가운데 2009년 8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보건소 앞마당에 설치된 컨테이너에서 간호사가 감기증상으로 찾아온 환자의 체온을 재고 있다.(자료사진)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실제 집행된 정책은 정부가 부르짖은 위기감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우선 접종대상자로 선정된 1716만 명 국민에게 백신 비용은 무료지만, 학교에서 접종을 받는 학생과 보건소에서 접종받는 65세 이상 노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1만5000원의 접종비용을 내야 했다. 게다가 우선 접종대상자에 들지 못한 나머지 국민은 백신 비용과 접종 비용을 합해 모두 3만 원 이상을 부담해야 했다.

당시 보건소 근처 고등학교 체육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는 학교에 보건교사가 없어 급한대로 보건담당교사로 선정됐다. 당시 초·중·고교생들이 백신을 맞을 때, 학생들과 교류가 잦다는 이유로 보건교사가 우선 접종대상에 포함됐지만, 보건 담당 교사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항의가 들어갔는지 나중에야 보건 담당 교사도 접종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학생들과 교류가 잦기로는 일반 교사도 그에 못지 않은데, 그들이 접종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줄어든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 몸 아픈 노인들은 '연기'까지

진료를 하다 보면, 나처럼 의료영역에 종사하는 분들도 치료를 받으러 오신다. 요양보호사 OOO씨도 그분들 중 한 명이다. 요양보호사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인해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신체 활동 또는 가사 지원 등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그분이 자신이 간병하는 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내나로도에 내가 관리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있어. 그 분이 편마비로 쓰러져서 재활을 하다가 다시 재발한 분이거든. 말도 제대로 못 해. 그래도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가끔씩 마당에 나와서 운동을 하는데, 등급 심사관이 그걸 봤나봐. 그래서 2등급에서 3등급으로 떨어졌다가 지금은 요양급여에서 탈락했네. 너무 안타까워 죽겠어."

2008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경우 혜택이 필요한 사람에 비해 재정은 매우 부족하다. 결국 이듬해부터 혜택 대상자를 줄이기 위해 심사기준이 극도로 까다로워진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충분히 요양등급을 받았던 분들이 숟가락을 들 수 있다는 이유로 등급이 떨어지거나, 약간이나마 거동을 한다는 이유로 요양급여 대상자에서 탈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몸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게 죄가 되는 현실이었다. 어떤 분들은 심사를 하러 온 사람들 앞에서 본의 아니게 연기를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등급이 떨어지니, 아예 못 움직이는 척 속여야 했던 것이다.

8일 오후 한나라당이 2011년 예산안을 강행처리하기 위해 야당이 점거농성중이던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물리력으로 뺏은 뒤 정의화 부의장이 예산안 및 관련 법안들을 처리하고 있다.
 8일 오후 한나라당이 2011년 예산안을 강행처리하기 위해 야당이 점거농성중이던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물리력으로 뺏은 뒤 정의화 부의장이 예산안 및 관련 법안들을 처리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정부의 의지부족은 예산 삭감으로 이어지고, 환자들에게 '연기'를 강요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공공보건의료의 수혜자는 저소득층과 같은 취약계층이기 때문에 그러한 예산의 감소는 이들의 고통으로 직결된다.

2011년도 예산안이 통과되면서, 보건복지위원회 예산 중 전액 삭감된 복지 예산만 무려 80개라고 한다. 아이를 많이 낳으라더니, 산모신생아 도우미 지원 증액예산 310억 원이 전액삭감되었다. 장애인 연금 증액예산 310억 원, 기초노령연금 611억 원이 법정기준조차 지키지 않고 깎였다. 국가필수예방접종 확대예산 339억 원, A형간염 신규예산 63억 원도 전액삭감 되었다. 작년 겨울 신종플루 예방접종을 지켜본 나로서는 많이 안타깝다.

'형님예산'이 국민 건강보다 중요한가

그 외에도 많은 분야에서 예산이 깎였지만,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는 나에게 있어서 유독 복지예산 삭감은 크게 다가왔다. 조금만 지나면 2011년이 다가온다. 이대로 가면 1년 반 동안 안타깝게 지켜보았던 보건의료의 현실은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연내 회기처리 하나에 혈안이 되어 민주적 절차를 어기고 날치기를 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여야가 합의한 증액안까지 무시하면서 강행처리한 이번 예산안 때문에 힘없고 가난한 국민들은 겨울 같은 1년을 보내야만 한다.

1종 의료수급권자였던 사람들은 연달아 2종으로 강등될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예방접종을 못 받아 불안할 것이며, 요양급여환자들은 심사원들 앞에서 여전히 연기를 해야 한다. '형님 지역구 예산'과 뉴욕에 지어진다는 국영 한식당이 국민의 건강보다 중요한 사안일까? 

공공보건의료를 책임지는 공중보건의의 양심상 글이나마 써서 답답한 마음을 달랜다.


태그:#공중보건의, #보건의료, #예산안 날치기, #복지, #예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