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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기부금 모금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마다 분주하다.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반강제적 기부를 받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현상이 장기화하면서 반강제적 기부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누군가 지자체에 수 억 원을 기부한다면 쾌재를 부르는 것이 당연한데 수차례 거절하다 마지못해(?) 기부금을 접수한 곳이 있다.

 

충남 태안군이 지난해 12월 기부금을 접수하며 찝찝한 기색을 보였다. 기부자가 논란이 되었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이 기름유출사고로 피해를 입은 태안지역의 해양환경복원 등에 써달라며 태안군에 8억 원의 기부금을 지정 기탁한 것.

 

지난해 12월 14일 태안군 기부금 심의위원회(위원장 김세호)는 군청상황실에서 심의회를 열어 삼성의 지정기탁에 대한 접수여부를 논의하고 기부금을 수용키로 결정했다. 이에 태안군은 향후 군내 3개 수협(서산·남면·안면도) 등을 통해 수산종묘 및 종패 방류 사업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태안군 관계자는 "일부 사업은 행정기관에서 실시하고 이외 사업은 각 수협을 통해 접수된 어촌계 희망사업에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왜 태안에 기부했을까

 

하지만 기름유출사고 이후 그동안 삼성중공업이 지역 농산물 및 상품권 구입, 하계 휴양소 운영 등 자체적으로 피해지역에 대한 지원을 해왔다는 점에서 행정기관을 통한 지원방법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중공업은 수산분야의 전문성 결여를 이유로 들었다. 삼성중공업 태안사무소 이강훈 부장은 "그동안 태안지역의 경우 관광분야 등 비수산분야에 대해 꾸준히 지원해왔으나 수산분야의 경우 주민들의 요구에도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지원) 방법을 찾지 못했다"며 "태안군의 경우 바다목장 사업 등 그동안 다양한 수산분야 사업을 통해 전문성을 키워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세금혜택이다. 이 부장은 "기름유출사고 이후 삼성중공업에서는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태안지원 사업을 펼쳤다"면서 "기부금은 세금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굳이 세금혜택 효과를 부인하지 않았다.

 

지원 효과도 방법을 바꾼 이유다. 이 부장은 "수산분야에서 그동안 여러 사업을 요구해 왔으나 피해지역이 골고루 혜택을 볼 수 있는 사업이 없었다"며 "사업의 효과가 특정지역이나 단체 등에 국한되지 않기 위해서도 행정기관을 통한 지원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기부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행정기관 책임 떠넘기기 및 세금혜택 '웬 말'

 

그러나 삼성중공업의 기부금 지원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우선 삼성중공업이 기부금을 지정 기탁하면서 태안군이 인적·물적 등의 행정력을 투입하게 돼 마치 행정기관이 삼성의 업무를 대행하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 태안군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이) 기부금 의사를 밝혀오며서부터 고민한 문제로 행정기관이 업무를 대행해 준다는 질타를 받을 수 있어 몇 차례 거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한, 기부금을 통해 삼성중공업이 세금혜택은 물론 기업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어 기름유출사고 이후 삼성에 대한 반감이 큰 지역주민들로써는 심기가 불편하다. 주민들은 "기름유출사고의 가해자인 삼성이 기부를 통해 피해지역을 지원하는 행태는 사고 책임을 부인하는 행위"라며 "기부금으로 세금혜택과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삼성은 비도덕적인 기업"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일각에서는 피해주민들이 구성한 피해대책위원회(이하 피대위)를 장악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거론되고 있다. 이는 기부금이 군내 3개 수협에 지정 기탁됐기 때문. 기름유출사고 이후 구성된 피대위 중 몸집이 큰 규모를 자랑하는 피대위는 모두 3개 수협이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지정 기탁을 빌미로 이들 대규모 피대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 태안군 관계자는 "아무래도 삼성에 지원을 받아 사업을 하다 보면 이전과 같이 대규모 집회·시위 등을 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사업 효과 및 책임성 등에 있어서도 삼성중공업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평이다. 이는 그동안 삼성중공업이 태안지역에서 지원 사업을 펼치면서 사업의 적정성과 효과 등을 이유로 주민들과 잦은 충돌로 갈등을 겪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부금 지정기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태안군 관계자는 "사업을 하다 보면 지역주민들과 종종 마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지원효과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리기 일쑤"라며 "기부금 지원 사업을 두고 주민과 행정기관이 충돌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설명했다.

 

기부금 수용 둘러싸고 위원 간 '갑론을박'

 

삼성중공업의 기부금을 둘러싼 불협화음은 지난해 12월 14일 열린 심의회에서도 새어나왔다. 이날 심의위원회에 참석한 위원들은 회의 초반부터 기부금 접수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갑'의 입장인 위원들은 관련 법률상 접수가 가능하다면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반면 '을'의 입장인 위원들은 아직까지 삼성에 대한 주민들의 적대감이 높기 때문에 자칫 기부금 접수를 빌미로 불필요한 또 다른 논란이 재생산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로 인해 태안군이 자체심의를 통해 삼성중공업 기부금의 적정성을 검토했음에도 일부 위원들이 계속해 "관련 법률상 접수 불가"를 주장했다.

 

기부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제5조에 따르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및 그 소속기관·공무원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자·출연하여 설립된 법인·단체는 자발적으로 기탁하는 금품이라도 법령에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 외에는 접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규정을 두어 심의위원회를 개최할 경우 기부금 접수가 가능하다.

 

그러나 위원 간 날 선 공방 끝에 삼성중공업의 기부금 심의가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입장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접수 불가를 주장한 강희권(태안군 참여연대 소속) 위원은 "기름유출사고의 가해자인 삼성은 사고발생 3년이 넘도록 피해지역에 대한 책임 있는 후속조치를 하고 있지 않다"며 "일회성, 생색내기에 불과할 것으로 판단되는 삼성의 기부금은 지역정서를 감안할 때 받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한군(태안군 문화원 소속) 위원도 "최근 태안군 근흥면 일대 삼성가의 대규모 토지가 국립공원에서 해제되면서 특혜의혹이 불거지고 있다"며 "기부금 출연을 통해 삼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최부록(태안고등학교 총동문회 전 회장) 위원은 "오늘 심의회는 법률상 기부금을 접수할 수 있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를 논의하는 자리"라며 "법적으로 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면 받는 것이 당연한 처사"라고 말했다. 박홍식(태안군 행정과장) 위원도 "관련 법률에서 행정기관이 기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받아야 한다"며 "사전 논의를 통해 지역주민들과도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거들었다.

 

이처럼 두 시간 남짓한 심의회에도 불구하고 찬반론이 팽팽하자 위원장의 제안으로 투표방식을 통해 기부금 접수 여부를 결정해 최종 가결됐다. 하지만 투표과정에서 참석인원 2/3에 해당하는 인원이 원안 가결에 찬성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음에도 재투표 없이 기권표를 독려해 찬성표로 전환해 최종 가결시켰다. 결국, 억지춘향식 회의 진행이 석연치 않은 삼성 기부금 논란을 거든 결과를 낳았다.


태그:#삼성중공업, #태안 기부금, #태안군, #기름유출사고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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