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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일, 충남도가 경북 안동의 양돈농장과 역학관계가 있는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2개 농가에서 사육하고 있는 돼지 2만 191마리를 살처분했다. 하지만 한 달 뒤인 지난 3일, 천북면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사진은 보령시 천북면의 한 돼지 농장에서 방역요원들이 돼지들을 살처분장소로 몰고 있는 모습.
 2010년 12월 3일, 충남도가 경북 안동의 양돈농장과 역학관계가 있는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2개 농가에서 사육하고 있는 돼지 2만 191마리를 살처분했다. 하지만 한 달 뒤인 지난 3일, 천북면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사진은 보령시 천북면의 한 돼지 농장에서 방역요원들이 돼지들을 살처분장소로 몰고 있는 모습.
ⓒ 보령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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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경기도, 강원도를 거쳐 충북 그리고 급기야 이곳 충남까지 덮쳤다. 곳곳에 방역초소가 설치되었고 농민들은 외부 출입도 삼간 채 필사적으로 방역에 돌입했지만 번져가는 구제역을 잡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2일 충남 도내에 유입된 것으로 확인된 구제역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천안시 수신면과 병천읍, 보령시 천북면 이어 6일에는 당진군 합덕읍까지 5개소에서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나왔다.

이로 인해 충남에서만 구제역 발생 반경 500미터 이내의 소와 돼지 6만여 마리가 살처분 되었으며, 발생지 인근 10킬로미터 이내의 15만여 두에 대한 이동제한 조치와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마이뉴스>가 구제역 발생지역인 충남 서북부 르포를 통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보았다. 현지의 축산농민들은 잡히지 않는 구제역 때문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며 사태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정부의 갈팡질팡 대처를 성토하고 있었다.

[당진군] 망연자실, "3년 전 브루셀라 때 진 빚도 못 갚았는데..."

6일 구제역이 발생해 살처분과 매몰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당진군 합덕읍의 한 마을 입구. 외부인의 출입접근과 취재를 차단한 채 공무원들이 오가는 차량에 대한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6일 구제역이 발생해 살처분과 매몰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당진군 합덕읍의 한 마을 입구. 외부인의 출입접근과 취재를 차단한 채 공무원들이 오가는 차량에 대한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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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는 무슨 취재여, 농민들 다 죽게 생겼는데…. 됐어 할 얘기 없으니께 돌아들 가시오. 괜히 돌아댕기면서 구제역이나 퍼트리지 말고…."

가장 최근에 확진 판정을 받은 곳에 인접한 당진군 합덕읍의 한 마을에서 만난 농민들은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특히 구제역 발생 마을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으며, 외지인들의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사실, 취재를 위해 구제역 발생지 자체에 접근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기자는 결국 마을 초입에서 발을 돌려 인근의 주유소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축산농민 몇 명을 만나기로 하였다.

형님댁 인근에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는 윤아무개(36·합덕읍 도곡리)씨는 "(형님이) 3년 전에 브루셀라병이 돌 때 키우던 소 모두 날리고, 축협에서 1억4천을 대출받아 키운 젖소들에게서 이제 겨우 수익 좀 내는가 했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행히도 형님 집은 반경 600미터 지역이라 살처분은 면했지만 만에 하나 최악의 경우가 생기면 2년은 기다려야 될 텐데 1억 원이나 주고 구입한 우유 납품권이며, 축협 대출금은 어찌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며 "집집마다 필사적으로 방역활동을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어서 읍내에서 소독약과 소독용 저수통을 구입해 가지고 들어오는 농민을 만날 수 있었다. 발생지로부터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는 박기찬(55·합덕읍 묵성리)씨는 "나는 대규모로 한우를 키우고 있는데 두세 마리씩 키우는 노인분들 같은 경우에는 방역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냥 죽어도 어쩔 수 없지' 하는 분들도 있다"며 자비로 약품을 구입하여 동네의 소규모 농가들까지 소독을 대신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돌아본 인근 마을 진입로 곳곳에는 각종 농기계와 사료 더미, 자동차 등으로 진입로 자체를 봉쇄하고 있었으며, 농민들 자체도 외부 출입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부모님 댁을 방문하러 왔다는 한 여성은 마을 초입에서 물건만 내려놓고 돌아가기도 하였다.

충남 당진군 합덕읍의 한 마을. 진입로마다 농민들이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기위해 농기계를 동원해 길을 막았다.
▲ 들어오지마시오 충남 당진군 합덕읍의 한 마을. 진입로마다 농민들이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기위해 농기계를 동원해 길을 막았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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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당진과 보령이 지척인데... 불안한 나날

"구제역 예방을 위하여 외지인과 차량의 우리마을 출입을 절대로 금지 합니다." 

한우로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는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의 마을 입구에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렸다. 이 같은 일은 거의 모든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구제역 발생 지역인 당진과 보령을 지척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군과 아산시 경계의 방역초소에서 방역요원이 차량을 통제하며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예산군과 아산시 경계의 방역초소에서 방역요원이 차량을 통제하며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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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현재까지 예산군에는 특별한 상황은 발생하고 있지 않으나 고덕면의 한 농가에서 6일 구제역 의심 증상으로 수의과학검역원에 정밀검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농민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삽교읍에서 30여 마리의 한우를 키우고 있다고 밝힌 김아무개(45)씨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무조건 가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 사태는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축산업 존폐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구제역이 발생하기 직전에 절반 정도를 내다 팔았기 때문에 그나마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설 명절을 앞두고 가격이 예년 같지 않을 것 같다며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어 그는 "7일부터 예산군 내 전체에 사료공급이 중단된다고 통보가 왔는데, 2∼3일이면 사료 재고가 바닥나는데 소들을 굶길 생각을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성군] 국내 최대 축산 단지, 송아지 거래 시장이 텅 비어

국내 최대 축산단지 홍성군은 7일 현재까지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광천읍에 위치한 송아지 거래시장은 지난해 12월 부터 폐쇄되었다.
 국내 최대 축산단지 홍성군은 7일 현재까지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광천읍에 위치한 송아지 거래시장은 지난해 12월 부터 폐쇄되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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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은 2000년에도 구제역이 발생했던 지역으로 충남도 내 돼지 사육두수의 22%를 차지하고 있는 전국 최대의 축산 단지이다. 만약 이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한다면 국내의 축산 기반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는 지역이다.

6일 오후 홍성읍 축산회관에 위치한 한우협회 사무실 전화기가 연방 울려대고 있었다. 백신접종을 시작한 농민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던 것이다. 농민들은 백신을 접종하는 절차에 대한 문제와 과연 백신을 접종했을 때 출하는 가능한지 등을 물어오고 있었다.

전화 인터뷰에 응한 홍성군 한우협회 심성구 지부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구제역이 발생한 천북면과 광천읍은 10킬로미터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정말 걱정이다. 여기가 전국 최대 축산단지인데 만약 여기가 이동제한에 묶이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군청과 협조해서 최대한 빨리 백신 접종을 끝낼 예정이다."

그는 또한 "현재 농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사항은 백신을 접종한 소를 언제쯤 도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며 "설 명절을 앞두고 농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제 뉴스에서 보니까 접종 후에 이력제 시스템에 등록만 되면 한다고 하는데, 혹시나 미뤄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라고 말했다.

축산회관 취재를 마치고 보령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송아지 거래시장을 방문해 보았다. 이곳은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지난해 12월부터 폐쇄되어 있었다. 평소 소주인과 중개인들로 북적였을 곳인데 이날 저녁에는 찬바람만 감돌고 있었다.

[보령시] "구제역 한두 번 당했나,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뭐 했나?"

보령시 천북면 경계의 방역초소. 차량 불빛에 반사된 소독약품의 분사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보령시 천북면 경계의 방역초소. 차량 불빛에 반사된 소독약품의 분사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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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늦게 보령시 천북면에 도착하였다. 이곳 또한 홍성군 못지않은 대규모 축산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며, 지난 3일 한 돼지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곳이다. 이곳은 지금까지 취재 과정 중에서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곳이기도 하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한두 번 일어난 것도 아닌데,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정부는 뭐했는지 참 답답합니다. 그냥 불가항력이었다고 하면 다가 아니거든요…. 이게 전쟁이지 사람 사는 게 아닙니다."

보령시 천북면에 소재한 보령시 양돈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한 농민은 방금까지 방역초소에서 근무하다가 지금 겨우 들어왔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구제역에 속수무책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보령시에서만 구제역은 2000년, 2001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이러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보령시 양돈협회 박상목(천북면 하만리) 지부장은 방역초소 운영요원들을 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며 주민들 명단을 놓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늘어나는 방역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령시 양돈협회 박상목 지부장
 보령시 양돈협회 박상목 지부장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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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틈을 낸 박 지부장은 자신들의 처절한 현실을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이곳이 구제역 발생지로부터 3킬로미터 밖에 안 떨어져있어요. 그래서 당연히 이동제한 조치를 당했지요. 멀쩡한 돼지를 축사에 가둬놔야 하니 미치겠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돼지들은 구제역 발생 당일인 2일부터 출하가 정지되었다고 한다. 출하정지 사태는 연쇄적으로 큰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었다.

즉, 출하시기를 놓친 돼지들의 체중이 적정기준을 넘게 되고, 곧바로 급격한 사료 공급량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수입은 없는데 먹는 양이 늘어나니 사료 값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한 달만 가면 사료 값을 감당하지 못해 부도나는 농민들이 절반은 넘을 것"이라며 "지금 농가마다 5억 정도 대출금은 모두 떠안고 있는데 부도가 현실화되면 그 이후 사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니, 정부가 나서서 책임지고 수매라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김주현(천북면 군포리)씨는 우왕좌왕하는 행정당국의 조치내용과 농민들의 줄도산을 우려하였다.

그는 "안동에서 구제역이 한창 발생하고 있는데 보령시에서는 우리 지역을 수렵지구로 지정했어요"라며 "참다 못해서 우리가 지난해 12월 25일 날 수렵지구 해제를 요구했는데 30일이 되어서야 뒤늦게 해제를 했거든요"라고 밝혔다. 이어 "이미 전국에 몰려든 수렵꾼들이 총 들고 여기저기 다 휘젓고 다닌 다음이었어요"라면서 "이거 분통 터질 일 아닙니까?"라며 질타했다.

이어서 그는 정부의 돼지 백신 접종 정책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정부에서 모돈(어미돼지)에게 실시하려고 하는 백신 접종계획이 탁상공론이라는 것이다. 농가마다 수백 마리 단위인 한우나 젖소는 100% 백신 접종이 가능할지 몰라도 사육두수가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 마리까지 대규모인데, 10% 밖에 안 되는 어미돼지에게 접종한들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것.

또한 그는 무조건적인 살처분 정책으로 농민들의 줄도산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부분 수억 원 정도의 부채를 갖고 있는 농가들에게 강제적인 살 처분 정책이 시행되면 보상금을 타봤자 모두 '헛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금융기관에서 살처분된 농가들의 재산은 물론 보상금까지 압류해 버리기 때문에 보상금 한 푼 쥐어보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발생 반경에 들었다고 무조건 살처분을 강요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3일, 보령시 천북면의 축산농민들이 살처분 후 매몰되는 돼지를 근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근심어린 농민들 지난해 12월 3일, 보령시 천북면의 축산농민들이 살처분 후 매몰되는 돼지를 근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보령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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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미국산 소 들어오면 큰일 나..."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이번 당장의 구제역 사태에 대한 걱정도 컸지만, 이번 사태를 핑계로 미국산 쇠고기나 다른 나라 돼지고기들이 무차별 공격을 해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운 속내를 보였다.

"우리 소가 모두 죽은 뒤 미국산 소 들어오는 거 아니냐. 살처분하면 보상금 준다고 하는데, 청구하면 6개월 걸리고…, 돈 받아서 새끼 사와 어찌하다 보면 8개월 걸리고, 고기나 우유가 나오려면 다 해서 (그 시간이) 2년이다. 이러다 미국소 들어오면 큰일 난다."

이는 이날 당진과 보령 등지에서 만난 농민들이 보인 공통된 반응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로 살처분이 진행된다면 어느 시점에서는 육류 공급 물량 부족 문제가 대두될 것이고, 그 틈새를 이용해 수입 쇠고기나 돼지고기가 들어올 것이라는 우려인 것. 왜냐하면 구제역 이후에 축산업이 정상화되려면 축사 소독, 입식, 성장의 단계까지 최소 2년은 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구제역 사태에 대해서 정부에서도 국가비상사태로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현장의 분위기는 정부가 좌고우면할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당장 대담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구제역 사태와 관련해서 떠도는 음모론 따위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태그:#구제역, #충청남도 구제역, #보령시 구제역, #당진군 구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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