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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얄레 가는 차 있어요? 근데 트럭 말고요 버스로요. 트럭 말!고!, 버스!!!"

 

누구에게나 장단점은 있지만 나는 혼자 이동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소수의 인원이 부대끼는 상황보다는 한 목적지를 가는 다수의 사람이 있는 쪽을 택하기 위해, 강조해서 버스표를 끊어달라고 하는 중이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다시 에티오피아와의 국경 모얄레로 가려는 중이었다.

 

어떤 행정상의 절차든, 아프리카에선 정확한 것을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난 꼭 버스를 타야겠노라는 나의 의지는 전달하고 싶었다(차가 좀 늦게 온다거나 하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 이미 달관된 시점이었다).

 

다만 버스면 된다는 내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네 번을 강조했다. 옆에는 나를 도와주겠다며 동행한 현지인 친구도 있었고, 그녀 또한 "내 친구, 괜찮은 버스로 부탁한다"며 특유의 붙임성 있는 태도로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응, 그럼 그럼. 있지~ 있어. 언제 출발하는데?"

"내일이요!"

"음. 내일이라… 자, 여기 표 받고, 내일 4시까지 와요. 늦지 않게!"

 

표에다 자세히, 날짜와 가격을 완불했음을 표시한 뒤, 그는 나에게 영수증을 건넸다.

 

 

'에티오피아에 다녀온다'는 나에게, 정이 든 N롯지(lodge) 사람들은 "얼마나 있다가 다시 케냐로 올거냐"며 "조심히 다녀오라"고 염려해주었다. 떠나는 당일,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가방을 맡기고 시내를 어슬렁거렸다. 먼 여정이 될 것이었다.

 

예매를 하긴 했지만, 그 여정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말은 '하루'라고 하지만, 오늘 오후 출발하면 내일 저녁 늦게나 도착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수도인 아디스 아바바로 올라가거나 하면 이틀은 또 가야하고….

 

모얄레 행에 행여라도 늦을까 서둘러 도착했다. 한 30분 먼저 도착하니, 표를 예매했을 때 봤던 남자가 내게 자리를 권한다. 일하는 사람이나 기다리는 사람이나, 숨을 고르고, 각자 옆 가게에서 커피나 주스를 주문해 마시는 풍경들이 한가로웠다. 나도 동참해 주스 한 잔을 주문해서 마시고 나니, 얼추 그들이 늦지말고 오라던 3시 반이 되었다. 하지만 출발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4시가 되고, 5시가 되었다. 사람들은 많아지는데, 아무런 기색이 없다. 참다 못한 나는 일어나서 매표소로 가 물었다.

 

"3시 반이랬는데, 아직 버스 안왔나요?"

그는 손을 크게 휘저으며 조금만 기다리라는 듯 넉살좋게 웃는다. 기다렸다. 6시가 됐을 무렵, 무언가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 걸 직감했다. 하나 둘 사람들은 기다리다 어디론가 떠나는 것 같았고, 버스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저기요, 아직 버스 안 왔나요? 오라던 시간이 3시 반이에요. 근데 지금 벌써 6시가 다 되가거든요."

나에게 표를 내밀었던 청년의 얼굴엔 순간 곤혹스러운 표정이 지나갔고, 그는 옆에 있던 상사인듯한 남자를 쳐다봤다. 청년 옆에 있던 남자가 서둘러 나에게 말했다.

 

"사실, 버스가 아직도 오지 않고 있어요. 모얄레까지 갔던 버스가 돌아와야 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아가씨는 트럭을 타는 수밖에 없어."

남자의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난 속사포처럼 그 바닥을 그들에게 보이고 말았다.

 

"지금 장난해요? 어제 오후에 표 끊으면서 내가 버스라고 4번이나 말했어요! 버스 있냐고 물어봤을 때, 그렇다고 했죠? 만약에 이렇게 불확실 한 거면 왜 어제 얘기를 안했어요? 혹시 버스 한 대만 가지고 운행하는 거예요? 모얄레까지 갔다가 그 버스 오기를 기다린다구요? 그러면 더더욱 얘길 했어야죠! "

 

 

아무래도 혼자 다니니까 웬만한 어려운 상황은 피해가는 편이었다. 그래서 소수가 움직이는 트럭보다는 승객이 많은 버스를 선호했던 것이었고, 트럭 앞 쪽에 앉는다 하더라도, 승객이 모두 남자일 경우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기에 굳이 버스를 고집했던 거였다.

 

참고로 운송수단으로써의 트럭을 얘기하자면 짐칸에도 사람이 타고, 기사가 있는 앞 탄에도 사람이 탄다. 트럭기사가 운전하는 바로 뒤에 몸 하나를 간신히 뉘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데, 그 곳에 두명, 그리고 기사 옆 자리에 두명. 총 네 명의 승객이 타고, 짐 칸엔… 승객을 받는 기사 맘이다. 짐들과 함께 목적지를 위해 그 곳에 승차해야 하는 승객들은 바람이고, 혹은 비가 내리고 간에 고스란히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버스가 잘 안 다니는 그 행선지에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속사포같이 내보이는 내 바닥을 경험한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대꾸했다.

"난들, 어쩌겠어? 모얄레를 가야한다며? 갈거면, 트럭을 타는 수밖에 없어. 오지 않는 버스를 어떡해? 어쩔거요, 응? 트럭을 탈 거면 지금이라도 말 하든가~"

 

 

아프리카 대륙을 다니는 내내 내 마음은 평화 그 자체였다. 소소한 감정의 기복은 있었고, 향수병도 있었고 에티오피아에서 유기견처럼 버려(?)지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내 마음은 평정을 잃지 않았었다. 그러나 남자의 말이 끝난 이후 진심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버스는 오지 않고, 나는 모얄레를 가기로 결정했고 그는, 그런 공급이 부족한 수요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을….

 

결국 나는 트럭을 타야한다는 그 말에 침묵으로 동의를 했고, 또 기다렸다. 6시 반이 되었다. 금방 타고 출발할 듯한 트럭 행에 대해 말이 없었다. 보아하니, 뭔가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는 눈치였다. 결국 나는 자리를 또 일어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어찌된 거예요?"

그는 말없이 자리를 피하고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청년을 붙잡고 물어보니, 상황인즉슨, 얘기를 주고받던 트럭 운전사가 '나를 보내기 위해 제시한 금액'이 제 값에 못 미친다며, 이미 다른 승객을 태우고 떠났다는 얘기였다. 바로 나는 사무실로 향했다.

 

"이것 봐요, 지금 뭐하는 거예요? 당신, 어떻게 이런식으로 비즈니스를 해요? 이러니까 아프리카에 와서 애정을 갖는 사람들조차 '여긴 아프리카니까!'라는 얘기를 하는 거라고요. 내 돈 내놔요. 모얄레를 못가더라도 당신 차는 안 타!"

 

내가 내 자신을 통제 할 겨를도 없이 꾹꾹 참았던 불만이 고스란히 터져 나왔다. 더구나 그 남자는 나에게 환불하지 않겠다고 해서, 다툼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싶으면, 내일 가. 내일은 버스 탈 수 있어~"

"나, 이미 체크아웃 다 하고, 돈도 없어. 그럼 당신이 내 하루 숙박비 대."

"그렇게는 못하지~"

"당신이 거짓말해서 표 팔아놓고, 오늘 내가 버스 기다리며 버린 시간은 어쩔건데? 어떻게 비즈니스를 이렇게 하지? 진짜 그렇게 장사하는 거 아냐~ 내가 사람들한테 여기 이젠 오지 말라고 할거야!"(실제로 나는 N롯지의 한국어 정보북에 웬만하면 두 업체 중 다른 경쟁업체를 이용하라고 써놓았다.)

 

사람들은 나를 말리느라 다른 회사 사무실로 날 데려갔고 주스를 마시며 나와 몇 번 농담을 주고 받았던 트럭기사가 우릴 중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가 남자를 달래 돈도 환불 받게 해 주었다.

 

"맘 풀어 아가씨. 여기가 원래 그래. "

나는 여전히 괜찮지 못해 씩씩댔다.

"됐어요. 그냥 모얄레고 뭐고 때려 칠래요. 저 사람 때문에 케냐에 대한 이미지 완전 구겼어요."

"모얄레 간다면서?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나도 트럭 손보고 한 숨자고 모얄레로 출발해야 하는데, 괜찮다면 내 차 타고 가."

"나, 진짜 너무 화가 나서 안되겠어요. 경찰에 신고할래요. 이건 진짜 사기라고요. 내가 버스라고 네 번이나 신신당부 했어요. 있다고 해서 돈 주고 예매한거고."

트럭기사는 코웃음 치더니 한 마디를 던졌다.

"경찰에 신고해봤자 소용없어. 그들도 다 알아. 이런 식으로 영업하는 거."

그 말에 나는 의지가 꺾였고,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별로 없다고 생각하며 절망했다. 그리고 느꼈다. 이젠 딜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래서 얼만데요? 트럭 앞자리."

 

 

주구장창 내리는 비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트럭 바퀴가 길에 빠졌고, 한 대의 트럭이 빠질 때마다 앞 뒤에 있던 트럭들도 같이 멈춰 그 빠진 바퀴를 함께 빼내야 했다. 길을 거의 다시 만들어가다시피 한 그 여정은 총, 3일이 걸렸고 트럭기사는 가격을 깎아주어 내 마음이 진정되는 데 한 몫 했다. 


태그:#케냐, #아프리카, #나이로비, #종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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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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