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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 가시는 손님, 오랜만에 모시네요"라는 택시기사의 인사말. 택시기사 박정수(가명)씨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로 연평도로 가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준 것 같다"는 말로 운전대를 잡았다.

수십 차례의 포성이 연평도를 뒤엎었던 지난 11월 23일, 2010년 11월을 기준(명확하게 말하자면 MB 정부 출범 이후)으로 남북관계의 시곗바늘은 과거로 향하고 있다. 대북 심리전 재개뿐만 아니라 남북 간의 관계는 마치 동맥경화를 일으킨 환자의 몸 상태 마냥 무엇인가 제대로 흐르지 않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도 연평도에 남아 있는 주민들의 '삶의 시곗바늘'은 현재진행형의 상태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상태.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언론 지면을 꽉꽉 메우고 있는 '남북 담론'이 아닌 연평도 주민들의 '삶의 담론'을 담아봤다.

[장면 #1] 여전히 '째깍째깍' 거리는 삶의 시곗바늘

연육교에서 바라본 연평도
 연육교에서 바라본 연평도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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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안목 선착장은 휴가 복귀를 하는 해병들과 연평도에 잠시 들른 주민들로 가득 찼다. 한 손에는 큰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인천에서 구해온 생필품 등 각종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선착장과 연평도를 이어주는 연육교 너머 바라본 연평도는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연육교를 건너 닿은 연평도. 연평도의 골목 어귀 어귀는 아직도 당시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난 4일 기자가 연평도에 닿은 날, 인천시 관계자들은 무리를 지어 연평도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고, KBS에서 나온 <체험 삶의 현장> 촬영팀도 분주하게 촬영을 시작하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출입금지'라고 적혀져 있는 노란 띠가 둘러싸고 있는 무너진 집들, 깨진 어항 속에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생선들은 당시의 상황을 소리 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는 구역, 무너진 벽, 썩은 생선 등 연평도에는 아직도 당시의 상흔들이 남아 있다.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는 구역, 무너진 벽, 썩은 생선 등 연평도에는 아직도 당시의 상흔들이 남아 있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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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연평도에 남아 연평여인숙을 운영하고 있는 진백순(81) 할머니는 "그때(포격 당시)에 다행히 낮 시간이어서 마을 사람들이 죄다 일하러 나가 있었거든. 그래서 인명피해가 많지 않았지"라며 "아마 밤에 그랬다면 죄다 죽었을 거야"라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어 할머니는 "그때 나는 집에 있었거든. 근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천정에서 세멘(시멘트) 가루들이 후두두 떨어지는 거야, '아이고. 죽겠구나' 싶더라고. 내가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데 전쟁 때 (연평도로) 피난을 왔어. 근데 그때보다 더 끔찍하더라고…. 지금도 불탄 집을 보면 소름이 돋아"라며 임시방편으로 테이프를 붙여 놓은 천정을 바라봤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거들러 온 변진식(67)씨는 기자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여기 우리 집 앞 창고에 포탄이 떨어졌어. 자, 봐. 포탄 파편이 집을 죄다 긁어 놔버렸어. 유리고 뭐고 죄다 깨지고 무너지고 난리도 아니었어."

변진식 씨의 집. 그의 집 앞에 포탄이 떨어졌다고 한다(오른쪽 아래 사진). 때문에 창고나 집 벽에는 파편 자국이 남았다.
 변진식 씨의 집. 그의 집 앞에 포탄이 떨어졌다고 한다(오른쪽 아래 사진). 때문에 창고나 집 벽에는 파편 자국이 남았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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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식씨의 얼굴을 보러 잠시 변씨의 집에 들른 최남복(74)씨는 다음과 같이 거들었다.

"그때 깨진 유리창 때문에 배수관이 죄다 얼어 버렸어 그랴. 집에 사람이 없으니 관리가 되나, 다 얼어 버리는 거지. 잠깐 들렀는데 (배수관이 얼어서) 보일러도 못 틀고 물도 못 쓰고 이 엄동설한에 사람이 살 수가 있나? 없어. 살 수가 없어."

최남복 할머니는 현재 김포 LH아파트에 임시거주하고 있는데, 집 걱정이 돼서 잠시 들렀단다. 이렇게 추운데 보일러도 못 트는 집에서 잘 수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에이, 여기서 어떻게 자. 잠이야 남의 집에서 자는 거지"라며 말을 줄였다.

하지만 이렇게 상처가 가득한 연평도의 '삶의 현장'에도 복구의 움직임은 당연히 존재한다. 구제역 파동으로 그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러 언론매체들은 연평도의 복구 움직임에 대해 나름의 보도를 해온 것이 이를 증명하기도 한다. 복구 작업의 내실성에 대한 분석기사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말이다.

전국재해구호협회에서 지은 임시거주지. 현재 물탱크 공사가 진행중(왼쪽사진). 내부에 개수대 등 필요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설명이다(오른쪽 아래사진)
 전국재해구호협회에서 지은 임시거주지. 현재 물탱크 공사가 진행중(왼쪽사진). 내부에 개수대 등 필요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설명이다(오른쪽 아래사진)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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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초등학교, 전국재해구호협회(KDR)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현재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서른아홉 채의 임시거주지가 들어섰다.

익명을 요구한 현장공사 관계자는 "임시거주지에는 개수대와 화장실, 기름 보일러를 사용할 수 있게끔 장치를 다 해놨고, 현재는 물탱크 공사가 진행 중"이라며 임시거주지를 소개했다.

이렇게 주민들의 삶의 시곗바늘을 현재진행형으로 돌리려는 작은 손짓, 작은 발걸음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째깍째깍'거리고 있다.

[장면 #2] 연평주민들의 삶, '평화롭게'까지는 아직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주소지가 '옹진군 연평면'으로 되어 있는 현지 주민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크게 연평도와 김포 LH아파트, 인천 인스파월드 찜질방, 친지들의 가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현재 포격사건 이후 주민들에게 각종 구호물품과 지원금 등이 지급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연평도에서 머물고 있는 주민 노창식(71)씨는아침부터 분주히 촬영에 임하고 있던 KBS <체험 삶의 현장> 촬영팀 주변을 맴돌면서 앞으로 겨울나기를 걱정했다.

"담요나 생활복, 치약이나 칫솔, 쌀, 물 이런 거 다 받았지. 구호물품이야 들어와서 면사무소에서 받아 버렸어. 근데 가장 큰 문제는 당장이 아니라 앞으로야. 이제 날씨 풀리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보일러나 수도 같은 걸 쓸 수가 없다니까."

이에 기자가 '그럼, 씻으실 때는 어떻게 씻으세요?'라고 질문하자, 그는 "그냥 그나마 사용할 수 있는 물을 구해 와서 주전자에 끓여 씻는 게지"라고 답했다. KBS 촬영팀(이들은 얼은 배수관 해빙작업을 하고 있었다)에게 "우리 집도 수도관 다 얼어가지고…. 그거 좀 녹여줘"라며 작업을 부탁하던 노씨는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갔다.

해빙기와 각종 공구함을 손수레에 싣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수도배관 전문 업체 골든웍 대표 노순명(50)씨는 "얼어 버린 수도관 때문에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어르신들 추운데 고생하셔서 이렇게 봉사활동을 나오게 됐죠"라고 말하면서 해빙기의 예열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원봉사를 나왔다는 노순명 씨(수도배관 전문업체 골든웍 대표). 얼어버린 수도관 해빙작업 중이다
 자원봉사를 나왔다는 노순명 씨(수도배관 전문업체 골든웍 대표). 얼어버린 수도관 해빙작업 중이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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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한파'라는 단어가 언론을 도배하는 이번 겨울, 얼어버린 수도관도 문제지만 당장의 구호물품 수령도 주민들에게는 큰 화두 중에 하나다. 익명을 요구한 마을 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구호물품이야 면에서 주니까 잘 쓰고 있지. 근데 그게 참…. 김포 (LH) 아파트에 있는 사람들도 집 보러 연평에 들어와서 구호물품을 또 받아가는겨. 김포에서도  준다는데 말이지. 아, 이거 나랏돈인데 이중으로 쓰이는 것도 문제인 것 같지만서도, 주민들끼리 구호물품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것도 보기 안 좋고 해서 참 답답하지."

앞서 언급했지만, 구호물품 중에는 생필품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소비재의 경우에는 지속적인 지급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령 쌀이나 김치 등 식사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이나 기름처럼 난방을 위해 사용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진백순 할머니는 "밥이야 집에 있는 거 이것저것 긁어다가 먹는 게지. 늙은이가 뭐 배불리 먹을 필요 있간?"이라며 "그래도 육지에서 잠시 들르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가져다줘서 그걸로 해먹는 거지. 뭘. 연평 안에 연 슈퍼가 없어서 뭐 살 수 있는 게 없어"라고 말했다.

사실 연평 안에 영업을 하고 있는 슈퍼마켓은 해병대 복지단에서 운영하는 연평면 GS25 편의점 단 하나다(원칙적으로는 주민들에게 물건 판매를 할 수 없지만 현재는 군·민을 대상으로 영업 중이다).

GS25의 김남우(32)씨는 "소주나 담배 같은 주류·기호식품도 많이 팔리지만, 김치, 무슨 갈비탕 이런 조리 식품들도 많이 팔려요"라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식량이 떨어지면 조리품을 사 먹거나, 뭍에서 운반되는 지인들의 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바닷바람이 점점 목을 움츠러들게 하는 날씨 속에서 '기름'에 대한 수요와 공급도 소비재 문제에 속한다.

"면에서 한 드럼(약 200리터) 받았지. 근데 여드레 못가서 다 써버렸어. 보일러 돌려야지. 연평이 얼마나 추운데…. 그래서 이번에 기름을 샀는데 요새 기름 값이 만만치 안잖아. 한 드럼에 25만 원 주고 샀지 뭘. 그래도 어떡하나. 날씨는 춥지, 보일러는 돌려야지…. 어휴."

진백순 할머니는 그나마 돌릴 수 있는 보일러의 유지 역시 걱정이었다. 면사무소 직원에 따르면, 구호물품 명목으로 지급된 기름 한 드럼을 다 쓰고 나면 기름은 추가 지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주민들은 기름을 살 수밖에 없는 것. 서민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연평주민들의 한숨도 덩달아 무겁다.

한파에 따른 실질적인 지원 대책 절실... 정신과 관련 전문 인력도 필요해
포격으로 인해 파손된 기존 보건지소 건물(위, 오른쪽 아래 사진). 현재 노인정으로 옮겨 운영 중이다(왼쪽 아래 사진)
 포격으로 인해 파손된 기존 보건지소 건물(위, 오른쪽 아래 사진). 현재 노인정으로 옮겨 운영 중이다(왼쪽 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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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주민들의 건강에 관련된 의료지원 분야는 어떤 상황일까. 현재 연평도 보건지소는 포격 당시의 피해로 인해 기존의 보건지소 건물이 아닌 노인정 건물에서 진료를 진행하고 있었다.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는 이상협(33)씨는 "의료 지원 사업 중, 물품 부족에 관련한 어려움은 특별히 없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포격 사건 이후) 임시보건지소를 찾아오는 주민들 중, 포격 후유증을 호소하는 분들도 여럿 있죠"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는 "밤에 숙면을 취하시지 못하시는 어르신들이나, 심장 떨림, 소화불량 등 여러 증세를 볼 수 있었어요. 전부 다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겠죠"라며 "조그마한 소리에도 놀라시는 어르신들도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정신과 관련 진료를 보는 인력도 보충된다면 좋겠지만, 현재 없는 상태에요. 한 보름 전에 정신과 전문의가 진료를 보긴 했는데요. 그 이후에 연평도에 온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라며 현재 정신과 진료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치과 진료의 경우 진료에 필요한 기구들을 옮기지 못해 치과 진료는 한정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기자가 묵었던 연평여인숙에 찾아온 변진식씨는 "(연평도 복구 작업에 관련해) 정말 중요한 건 말이야. 아무래도 연평 주민들의 생계문제 해결인 거여. 지금 이렇게 된 상황에서 다시 굴도 따고, 꽃게도 잡고, 공공근로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다시 만들어 져야 하는 겨"라고 말했다.

연평 면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비호(39)씨는 "우선 긴급한 복구 작업부터 진행하고 있는데, 예전처럼 연평 주민들이 평화롭게 다시 살 수 있게 복구되려면 적어도 1년 이상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삶의 시곗바늘은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지만 '평화롭게'라는 수식어는 꽤 긴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장면 #3] '서로 싸우지 않는 길'을 바라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오정옥(64)씨의 집. 뭍에 있는 아들들로부터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 방문한 아들들이 파손된 유리창 대신 비닐로 바람을 막아놨단다.

"여보세요? 아. 그래. 나야 잘 있지. 엄마 걱정일랑 하덜 마라. 회사에서 일하느라 고생인데 여긴 왜 또 전화했어…."

오정옥씨는 아들과의 통화가 끝나고서야 이내 속상한 마음을 드러내며, 자신의 바람을 전했다.

"예전서부터 어르신(시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았어. 그 날(연평도 포격사건)도 유모차에 태워서 겨우 방공호로 갔지. 지금 인하대병원에 입원 중이신데 수술을 앞두고 계셔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냥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

"좋은 사람 많고, (다른 어촌들과는 달리) 젊은 사람들 많고, 고향인데 어디 가겠어. 그저 여기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야"라는 오정옥씨의 눈빛은 방금 끊은 아들과의 통화가 아쉬웠는지 전화기로 향하고 있었다.

노란띠로 쳐 놓은 보존구역들. 이곳들이 안보체험코스로 조성될 계획이라고 한다
 노란띠로 쳐 놓은 보존구역들. 이곳들이 안보체험코스로 조성될 계획이라고 한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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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언론에서는 '인천시가 연평도 안에 안보체험코스를 조성한다'는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 물론 여러 방면으로 이뤄지는 복구 작업 중 하나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시 이곳 연평도에서 삶을 재정비하고 있는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시곗바늘'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연평면사무소 장비호씨는 "아직 논의 중이므로 할 말이 없다"고 일축했지만, 현지 주민들의 여론은 사뭇 다르다. 연평여인숙을 찾은 한 마을 주민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다시 여기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대책이 중요한 거 아니요?"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그래도 중요한 건 서로 포질하지 말고 평화롭게 사는 게지. 텔레비전 보니까 북한 압박하고 한다는데, 그래도 양쪽 주민들이 편하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거 아닌가? 그래야 사람들이 고향에 다시 돌아와서 굴도 따고, 꽃게도 잡고 평화롭게 사는 것 아닌가?"

이는 진백순 할머니의 말씀인데, 진 할머니는 삶의 궤적을 '현재 진행형'으로 돌리는 지름길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앞서 변진식씨가 말했던 것과 같이 '생계문제 조속한 해결', 그리고 '남과 북의 평화 정착' 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평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백순 할머니(왼쪽)와 포격 지역을 보며 한숨 쉬는 오정옥 씨(오른쪽)
 “평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백순 할머니(왼쪽)와 포격 지역을 보며 한숨 쉬는 오정옥 씨(오른쪽)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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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머물렀던 3박 4일 동안 만났던 연평도 주민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추운데 젊은 사람들이 고생한다"며 되레 복구 인력의 건강을 걱정하는 잔류 주민들, 자신을 '왕 할머니'라 부르는 증손주가 보고 싶다는 진백순 할머니, 다음 달 설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걱정"이라는 노창식씨, 자식들의 목소리가 그저 아쉬운 오정옥씨 등….

연평도에 남아 있는 주민들의 바람처럼, 그리고 추운 날씨와는 훈훈한 마음 씀씀이들이 '걱정 없는, 평화로운' 상태에 이르는 날은 언제일까.

남북 관계의 멈춰버린, 혹은 거꾸로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다시 순방향으로 돌리고, 연평도 잔류 주민들의 현재 진행형인 삶의 시곗바늘을 좀 더 평화롭게 돌아가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일까. 연평도에 가보니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연평도 취재는 지난 1월 4일부터 7일까지, 3박 4일 동안 진행했습니다.



태그:#연평도, #현장르포, #삶의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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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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