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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8년인 1871년에 군수 정기화가 건립한 홍산 동헌
▲ 홍산동헌 고종 8년인 1871년에 군수 정기화가 건립한 홍산 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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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홍산면 남촌리 187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홍산 동헌. 동헌이란 옛 고을 수령이 집무를 보던 공간을 말한다. 홍산 동헌으로 들어가는 아문과 동헌, 그리고 아문의 좌측에 자리한 형방청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객사. 이것들을 모두 합쳐서 사적 제481호로 지정이 되었다.

홍산은 현이었다. 홍산 동헌은 홍산현의 관아 건물로 정사를 살피던 곳이다.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은 후에 관청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전국에 걸쳐 관청건물을 새로 짓고 정비를 하였다. 그 일환의 하나로 고종 8년인 1871년에 군수 정기화가 홍산 동헌을 건립하였다. 이 동헌은 8. 15 광복 후에는 홍산 지서로 사용을 하다가, 1984년 부여군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를 하였다.

홍산 아문은 새로지었다. 옛 아문은 영월루로 변하여 자리를 떠났다
▲ 아문 홍산 아문은 새로지었다. 옛 아문은 영월루로 변하여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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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추는 장초석이다
▲ 주추 아문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추는 장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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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에 온돌방을 설치한 동헌

홍산 동헌으로 들어가는 아문은 새로 지은 것이다. 중층 누각으로 지은 아문은 장대석으로 축대를 놓고, 역시 장대석으로 계단을 마련했다. 아문은 대개 세 칸으로 마련하는데,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당당하게 지어놓았다. 장초석 주추를 놓고 그 위에 원형기둥을 세운 아문은, 새로 지은 건물답게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문을 들어서 동헌을 바라보니, 앞마당에 눈이 가득 쌓였다. 누군가 다녀간 듯, 한 줄로 발자국이 나 있다. 동헌은 모두 7칸으로 지어졌다. 칸으로 나누면 7칸이 되지만, 정확히 따진다면 6칸 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동헌을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치우쳐 세 칸 대청을 마련하고, 좌측에 한 칸의 방을 드리고, 우측에는 세 칸의 방을 드렸다. 이와 같이 좌우 대칭이 맞지 않게 방을 마련한 것도 특이하다.

동헌에는 제금당이라는 현판과 그 옆에 동헌이란 현판이 보인다
▲ 제금당 동헌에는 제금당이라는 현판과 그 옆에 동헌이란 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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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의 주추는 원으로 조형을 하고, 그 위에 원형 기둥을 올렸다
▲ 주추 동헌의 주추는 원으로 조형을 하고, 그 위에 원형 기둥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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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의 대청 정면 중앙에는 '제금당(製錦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그리고 그 우측에는 동헌이란 편액이 작게 걸려있다. 제금당이란 현판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직역을 하면 '비단을 짓는 집'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비단을 짓듯, 그렇게 모든 백성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정사를 살피겠다는 뜻은 아닌지 생각한다.

도대체 동헌에 무슨 일이?

동헌은 대청 뒤편에는 판자문을 내고, 우물마루를 깔았다. 장대석의 기단 위에 동헌을 지었는데, 원형으로 다듬은 주추를 사용하였다. 동헌을 바라보면 좌측에는 한 칸의 방을 뒤편으로 드리고, 우측에는 두 칸 반의 방을 뒤편으로 놓았다. 우측의 방은 전, 후로 작은 방이 나뉘어져 있다.

동헌의 대청 뒤는 판자문을 달았다. 뒤편에서 바라 본 아문
▲ 판자문 동헌의 대청 뒤는 판자문을 달았다. 뒤편에서 바라 본 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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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는 양편에 크기가 다른 방을 놓았다
▲ 방 동헌에는 양편에 크기가 다른 방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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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후에 안을 보려고 마루 위로 올라갔다. 앞쪽으로 난 방문을 열어보고, 뒤편 방을 열었다. 순간 눈을 부비고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틀림없이 이곳은 국가에서 지정을 한 사적이요, 동헌은 충남도에서 지정을 한 유형문화재 제141호이다.

방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달력을 뜯어 자리를 만들고, 한 편에는 소주병이 보인다. 술을 따라 먹는데 사용한 종이컵이며, 음식을 담아 온 듯한 비닐봉지와 담배갑. 거기다가 술안주로 사용한 라면봉지며 나무젓가락. 흡사 잔치라도 한 바탕 벌인 모습이다. 도대체 누가 이곳에 와서 이렇게 난장판을 만든 것일까?      

술병과 담배 곽, 나무젓가락과 컵 등이 난장판을 이루고 있다
▲ 술병 술병과 담배 곽, 나무젓가락과 컵 등이 난장판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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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난장판을 만든 장본인은 쉽게 누구인가 알 것 같다. 방의 벽에 쓰인 낙서 때문이다. 아마도 학생들인 것만 같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이렇게 문화재를 엉망으로 만들다니. 도대체 우리교육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많은 문화재를 답사하고 다녔지만, 이런 모습은 생전 처음이다.

동헌 방의 벽에 쓰인 낙서. 낙서로 보아 학생들의 짓이다.
▲ 낙서 동헌 방의 벽에 쓰인 낙서. 낙서로 보아 학생들의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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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이렇게 이곳에 들어와 낙서를 한 것일까?
▲ 낙서 언제 이렇게 이곳에 들어와 낙서를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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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제발 이런 모습을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출세를 하라고 가르치기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 매번 말로만 선진교육 운운할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이런 모든 것이 모두 잘못된 우리의 교육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만 같아, 뒤돌아서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태그:#홍산 동헌, #부여, #사적, #유형문화재, #난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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