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노영수씨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노영수씨
ⓒ 김수진

관련사진보기


"빨리 학교로 돌아가 '복학파티'하고 싶어요."

16일 서울 노량진동에서 만난 노영수(29)씨의 웃음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박경호 부장판사)는 중앙대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은 노씨 등 3명이 학교를 상대로 낸 퇴학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서도 "거의 100% 승리를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씨는 중앙대의 기업식 구조조정에 반발해 지난해 4월 8일 교내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8일은 이사회에서 구조조정 최종안 통과가 예정된 날이었다.

두산그룹은 2008년 중앙대를 인수한 뒤, 재작년 말 18개 단과대학-77개 학과에서 10개 단과대학-46개 학과로 구조조정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후 <중앙문화> 등 학내 언론의 예산이 전액 삭감됐고, 총학생회 주최 '새내기 새로 배움터'에 불허 방침이 내려졌다. 그는 고공농성이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었냐는 질문에 "대자보도 쓰고, 학내 시위도 해봤지만 학내여론이 이미 재단 측의 길들이기에 넘어간 상황이었다"며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재단에 부담을 주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그는 원래 학내에서 알려진 '활동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히 학교에 다니던 '보통 학생'이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반복하다 보니 오랜 기간 학교에 머물게 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 그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진중권 겸임 교수가 중앙대에서 해임되는 사건을 지켜보면서다. 그는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진중권 교수는 학과에서도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교수인데, 내쫓기듯 학교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큰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아래는 노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유기정학 역제안했지만 중앙대 측이 거부"

중앙대로부터 징계를 당한 학생들이 직접 만든 선전물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기자 회견 모습 중앙대로부터 징계를 당한 학생들이 직접 만든 선전물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노영수 씨 제공

관련사진보기


- 판결 이후 학교 측에서 연락이 왔나?
"아직까지는 없다. 아마 학교에서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최근 12월 말 조정을 앞두고 '유기정학 6개월'을 소급적용 시키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노씨를 비롯한 학생들은 작년 4월 14일 징계처분을 받았다). 학교의 법률비는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이게 교육적인 목적이 있는 소송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당히 양보된 안을 제시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기정학으로 결론을 낸다면 (우리는) 존중할 것이고 싸울 명분도 없다. 하지만 올해 봄 학기에 복학하는 것마저 저지한다면 총력 대응을 할 예정이다. 얼마 전 주점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방한용 텐트도 마련해 뒀다.(웃음)"

- 학과 통폐합이 무조건 나쁜 것인가? 작년 중앙대 수시 경쟁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들었다.
"경쟁률이라는 것은 지금 당장 수치상으로 나오는 것이고 단기적인 성과물에 불과하다. 오히려 학교는 쉽게 재건할 수 없는 도덕과 창의성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대학은 기업의 성과주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통폐합은 기본적으로 인문학 같은 기초학문을 전공단위로 바꿔 선택 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이 문제다. 자연스럽게 인기가 없는 과목들이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학문을 시장화 시키는 것은 교육 기관이 할 일이 아니다. 이는 대학이 공공성을 포기한 것이다."

- 왜 대학이 그런 공간이 되어야 하나. 사회의 요구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회가 신자유주의화되어 가면서 비정규직들이 넘쳐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대다수는 낙오할 수밖에 없고 저질의 일자리로 갈 수밖에 없다. 이것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 견제를 하는 것이 대학의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인문계열은 권력에 대해서 진실을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단기적인 잣대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사회가 진짜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의) 마지막 보루인 반성적 기능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홍익대 총학생회 씁쓸... 학교 돌아가는 게 최우선"

- 하지만 비정규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세대이자 또 대학의 주된 구성원인 20대들이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같은 20대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홍대 총학생회를 보면서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근본적으로 20대라는 세대가 모순을 인식하거나 반론을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등록금 때문에 알바로 내몰리거나, 주거에 대한 불안들이 있는데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이 20대가 사회문제에 쉽게 나설 수 없게끔 한다. 사회구조가 20대를 침묵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다수의 20대는 스펙을 쌓아서 이 구조를 벗어나려고 한다. 옳다고 생각해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따라 그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 고려대 김예슬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학사회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의 공감을 광범위하게 살 수 있는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우리의 행동들이 단지 구호로 그칠 수 있었는데, 그분이 먼저 행동에 나서서 우리에게 더 큰 의미가 부여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학 상업화 문제의 아이콘이 된 만큼 연대활동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다. 그 이후에야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목소리 낼 수 있다. 총장이 대학의 잘못된 일에 대해서 정의의 수호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지만, 현재 대학이 기업화되면서 일종의 회사처럼 됐다. 퇴학 조처가 바로 대학 기업화의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징계를 당한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 끝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커다란 바람인데 정권이 바뀌고 우리가 잃었던 것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는 언행이 일치하는 교수를 잃고 학생을 잃고 기풍을 잃었다. (교수님들이) 학생들과 같이 호흡하고 인문학자로서 사회비판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싶다. 현재는 시장의 세태가 천박하다. 권력을 향해서 진실을 외치는 학생들도 늘어나서 다시 힘이 넘치고 정과 사랑이 있는 학교가 되었으면 한다."

인터뷰 말미에 노씨는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는 "그 분들도 넉넉한 형편이 아닐텐데 소송과정에서 비용을 부담해 주셨다. 자문을 비롯해 폭넓게 지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학교와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힘들기 때문에 원만히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복학하면 후배들과 과방에서 복학파티를 벌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캠퍼스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김수진, 정민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노영수 씨, #중앙대 징계 처분, #두산그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