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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
▲ 책표지 김재기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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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숲을 여행하다>(향연)를 읽기 전에 휴먼 라이브러리 행사에서 '사람 책'으로 저자를 먼저 만났다. '사람 책'을 먼저 만난 뒤에 종이책으로 만난 <여행의 숲을 여행하다>는 더 가깝게 와 닿았다. 활자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인상과 느낌을 함께 생각하면서 읽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람 책으로 만났을 때 했던 질문들이 있다. 여행하면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것이었는데 그는 '사하라사막'이라고 대답했다. 거긴 '별이 많다는 수준이 아니라 사하라사막 밤하늘 전체가 별이다. 별이 쏟아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걸 보면서 알 수 있었다고 했던가. 그때 그 순간 마치 내가 앉은 장소가 사막으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고 쏟아지는 별바다를 쳐다보고 있는 듯 했다. 여행하면서 깨닫는 건 무엇인지 물음엔, "돌 머리를 깨는 것"이라고 했다. 편견을 깨고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로 깨닫는 발견들.

TV는커녕 변변히 읽을 책조차 마땅치 않던 어린시절부터 세계지도를 펴놓고 꿈을 꾸었던 소년, 철학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가르친지 30여 년, 한 마디로 여행과 철학의 삶이었던 이 여행자의 여행 이야기, 기대감을 갖고 책을 펼쳤다. <여행자의 숲을 여행하다>(김재기/향연)를 마치 '사람 책'으로 만났을 때의 모습, 그의 육성으로 듣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읽었다.

책은 다른 여행관련 저서들과는 사뭇 다르다. 또 다른 여행의 접근법이라고나 할까. 시중에 대개 나와 있는 여행관련 책들은 대개 세 종류가 있다. '실용적인 여행정보 안내서와 개인의 여행기록을 담은 여행기, 특정한 테마를 여행과 접목시킨 책' 등이다. 저자는 '난 이 책이 개인의 체험이라는 나무가 아니라 '여행'이라는 더 큰 숲 전체를 내려다보게 해주는 헬리콥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독자들이 내 책에서 더 나은 여행을 하는 방법, 삶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지렛대로 여행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의도가 읽혀진다.

여행의 숲을 여행하다 중...
▲ 호기심... 여행의 숲을 여행하다 중...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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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숲을 여행하다>는 인문학, 즉 철학과 여행의 결합이다. 철학이라는 말에 딱딱하고 어렵게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다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하는 이 작업을 철학자라 불리는 전문가들은 좀더 논리적, 체계적으로 할 뿐"(p9)이란다.

필로소피(philosphy) 즉, 철학이라는 말이 그리스어의 '사랑'(philos)·지혜(sophia)에서 왔듯이 철학이란 지혜사랑이며 여행 또한 '길사랑'이라는 것. 필로소피라는 말을 빗대어 그리스어로 '사랑(philos)과 길(Hodos) 즉 필로도스(philodos)라는 말로 만들어보았단다. 여행이란 길 위에서 삶의 지혜를 줍는 일이며, 길사랑은 곧 지혜사랑이 되어 우리 삶을 아름답게 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

국내 여행 어언 30년, 해외여행도 20년이 넘었다는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고 그의 삶을 지배해 온 철학과 여행, 이 두 가지를 통해 여행과 철학적 사유를 연결해 책에 펼쳐 놓고 있다. 책에서 저자가 다녔던 여행지를 더러 소개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여행의 의미와 가치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여행의 혼 즉 본질이 무엇인지, 왜 여행하는지, 또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 여행의 그 다채로운 빛깔들을 소개하며 그 진정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여행을 꿈꾸는 것에서부터 여행 준비, 실제 여행 과정, 여행을 통해 얻는 것들, 여행의 기록과 추억 등으로 여행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책은 총1부에서 5부로 구성되었다. 1장 꿈꾸는 자 여행에 매혹되다. 2장, 나는 준비한다, 고로 나는 떠난다, 3장 여행 프로젝트, 4장 여행, 일곱 빛깔 무지개, 5장 기록, 기억, 그리고 추억' 으로 나뉘어 지고 각장마다 작은 글들로 다시 나누어진다. 내용 가운데 금싸라기 같은 '여행'에 대한 글들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진정한 여행자란 다른 무엇보다도 꿈꾸는 사람"(p18)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꿈을 이룸과 동시에 꿈에서 깨어난다." "여행자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유적지도, 박물관도, 식당도, 상점도 아니고 결국은 길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길사랑(philodos)으로 정의(p164)한다." "우린 여행을 하려고 돈을 쓰는 거지, 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 시험해 보려고 여행하는 건 아니다."(172p) "이 세상의 모든 장소는 여행지이기 전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p207)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지를 돌아다니면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얻게 된 갖가지 지식의 단편들은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는 체험과 어우러져 삶의 씨줄과 날줄이 되며 책상머리에서 주운 지식과는 달리 육화된 앎, 살아 숨 쉬는 앎이 되는 것이다."(p231) "진정한 발견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데 있다." "좋은 여행을 위해서는 먼저 여행자 자신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268p) "여행은 실제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준다기보다는 평소 까맣게 잊고 지냈던 자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재고하게 만들어준다."(269p)

등등 여행의 의미와 가치와 윤리에 이르기까지 여행에 대한 저자의 메시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발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기록에 대한 것은 전체 내용을 갈무리 해주는 느낌이었다. 여행을 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직접적인 경험을 물리적인 그 무엇으로 바꿔서 좀 더 선명하게 보존하는 것'이다. 생생한 체험을 선명하게 보존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일기는 여행지에서 겪었던 일들을 가장 신선하게 보존할 수 있는 최상의 냉동고인 것이다. 뭔가를 기록하는 동안 여행지에서의 체험은 진실로 나의 것이 된다. 감각과 운동을 동반한 신체의 기억이 뇌의 단순기억과 결합될 때, 그 기억의 효과는 반영구적이다. 두뇌를 회전시켜 여행의 모든 것을 정리함과 동시에 펜을 잡은 손가락이 종이 위를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내 심신과 함께하는 기억은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 봉인된다. 그리고 훗날 나의 손과 누이 그렇게 기록으로 남겨진 여행의 물질적 흔적과 재회하면, 봉인되었던 무의식은 생생한 기억으로 해동되어 나의 의식 속에 재현된다."(p302~303)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이, 여행 숲에 담겨있다. 그저 여행이 좋아서 여행을 해왔다면 이제 좀 더 좋은 여행자가 되기 위해, 좀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여행을 위해 <여행의 숲을 여행하다>를 만나 여행의 혼, 여행의 깊은 사유로 새로운 발견과 삶의 통찰을 얻고 좀더 성숙한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저자의 말대로 여행은 흔히 세 번 다녀온다. 떠나기 전에 준비하면서 한 번, 실제로 여행 가서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온 뒤에 여행을 추억하면서 다시 한 번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먼저 준비하면서 가슴 설레고 여행지를 돌아보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와서 일기나 여행기를 쓰면서 또 한 번.

삶은 곧 여행이다. 우리는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고 눈을 뜨고 깨달음을 얻는다. 여행을 통해 소통하고 배운다. 좀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여행을 위한 지침서로, 또한 여행을 통한 삶의 통찰을 얻기를 원하는 이 땅의 여행자들과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책: 여행의 숲을 여행하다
가격:17,500원
지은이: 김재기
저자소개: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 졸업. 한때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였고 지금으 경성대학교 철학과와 문화학과 대학워의 교수로 재직 중. 쓴 책으로는 <삶과 철학>, <문화와 철학>, <철학의 명저 20>(공저) 소설 <알라 할림> 전3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철학 섹슈얼리티에 말을 건네다> 등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는 <청년 헤겔>,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선> 등이 있다.



여행의 숲을 여행하다 - 인문학의 눈으로 바라본 여행의 모든 것

김재기 지음, 향연(2010)


태그:#여행의 숲을 여행하다, #김재기,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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