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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의 8강전을 앞둔 축구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 아시안 게임 8강의 악몽을 되풀이하며 주저앉을 것인지, 지난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처럼 통쾌한 승리를 거둘 것인지, 생각만 해도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질 거란 예상은 접어두자. 기왕이면 이란도 꺾고 그 기세 몰아서 우승까지 차지할 것이란 예상을 하자. 손해 볼 일 없고, 기분 상할 일 없으니까. 그럼 아시안 게임 몇 년만의 우승이지? 인터넷 뒤져보니 51년으로 나온다.

 

박지성이 최우수 선수로 뽑히고, 구자철이 득점왕을 차지한다면 금상첨화, 온 세상이 축제 분위기가 되겠지. 그 뒤 며칠 동안 각 방송사마다 아홉시 뉴스는 온통 축구 얘기로 도배하겠지. 구제역 시름도,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고도 그 분위기에 묻혀 잠시 잊히겠지.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식민 지배 속에서 끊임없이 일본인에 비해 역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식민지 교육에 의해 세뇌되었던 조선인들에게 손기정의 우승은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열등감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백발노인부터 코흘리개 아이들까지 '손기정'을 입에 달고 다녔다. 손기정 신드롬은 식민지 조선인들의 한풀이였다.

 

당시 자본가들은 손기정 신드롬을 광고에 적극 활용했다. 아사히 맥주, 긱코만 간장, 오-케 레코드, 제약업체 히후미, 외용약 묘후, 평화당 주식회사 등에서 손기정의 우승과 자신들의 회사 이미지를 결합시켜 대대적인 과장광고를 했다. 당시에는 신문이 언론의 중심 역할을 했기 때문에 주로 광고는 신문 광고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렇게 근대 스포츠는 언론, 기업과 연결되면서 교묘하게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그들은 스포츠를 통해 부각된 민족의식을 상품화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확산시켰다. 일본 기업은 '일본 국민 손기정'을 부각시켰고, 조선 기업은 '조선인 손기정'을 부각시키는 차이는 있었지만.

 

1936년 여름의 신드롬은 충분히 발전한 상업적 미디어, 일상화된 유행 현상과 그것을 열심히 추종하는 개인들의 존재, 그리고 민족주의적 대중심리가 넘쳐났기에 가능했다. 초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인 우월감과 열등감이 범벅되어 나타나는 대중적 신드롬에는 슬프고도 우스꽝스런 대중의 열망이 있다. 또한 가장 이성적이며 음험한 국가이성과 냉철한 자본의 논리가 배후에서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책 속에서)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는 스포츠가 어떻게 민족주의와 결합하는지, 그리고 미디어와 자본과 국가는 그렇게 형성된 스포츠 민족주의를 어떻게 변형시켜 자신들의 상품 판매를 위한 가치와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로 전환시키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스포츠를 둘러싼 미디어, 자본, 국가의 논리는 지금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스포츠 스타를 앞세워 광고하고 스포츠 스타의 이미지를 자신들의 이미지 위에 덧씌우려 한다. 그런 거 골치 아프게 알아서 무엇 하냐고 무시하고 넘어가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저자는 경고한다.

 

"21세기 우리도 '슈퍼 파워'들의 틈에서 개처럼 굴종하고 박쥐처럼 빌붙으며 살아가야만 할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천정환/푸른역사/2010.6/16,000원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 - 스포츠민족주의와 식민지 근대, 개정판

천정환 지음, 푸른역사(2010)


태그:#스포츠, #손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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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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