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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한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의 책을 쓰다 보니 대학에서 인문 사회 분야를 전공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

필자는 학부와 대학원 모두 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았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대학교 다니던 시절 인문 사회 분야의 교양수업을 들을 때면, 리포트 분량이 A4용지 1장을 넘기기 힘들어서 쩔쩔매던 사람이다. 그렇게 글쓰기라고는 죽는 것 다음으로 싫어하던 필자가 황당하게도 사회과학 분야의 책과 글을 써서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가끔은 글을 쓰다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으니 말 다했지 않나.

누군가 필자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왜 글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아마 거침없이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할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졸업을 앞둔 수많은 학생들이 하나같이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취업이다. 어떤 사람이 취업이라는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 사람이 쓴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는 손으로 썼든 발로 썼든 목적을 달성한 글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화려한 문구와 시적인 표현을 써서 감동적인 자기소개서를 썼더라도 취업에 실패하면 그 글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글이다.

교양수업이나 전공수업에서 리포트를 쓰는 이유는 자신이 수업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담당 교수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소설을 쓰는 것이다. 연애편지를 쓰는 이유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이다.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표지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표지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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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쓴 첫 책은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다. 솔직히 처음에 사람들을 모아서 베네수엘라의 혁명 연구모임을 만들 때만 하더라도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했다. 그저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변화들을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을 뿐이다. 그런데 연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베네수엘라의 변화들에 놀라고 감동하면서 이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우리가 연구한 베네수엘라 혁명 과정의 적지 않은 내용을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적절한 형식을 고민해보니 다름 아닌 '책'이었다.

그렇게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책을 내고 나서 책이 가지는 위력에 새삼 놀라게 되었다. 만약 필자가 수공업적으로 주변 사람들이나 몇몇 사람들을 만나서 베네수엘라의 사례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행위에 그쳤다면 단시일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변화를 알릴 수 없었을 것이다.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가 사회과학 베스트셀러가 되고 책을 매개로 필자가 다양한 사람들과 강연 등을 통해 관계를 맺고 되면서 필자 개인으로서도 책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이 가지는 위력을 알게 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책이라는 도구를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낸 책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구조를 과학적으로 밝혀낸 기념비적 역작이다. 필자도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고 받은 충격 때문에 세상을 다르고 보고 다르게 살게 되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자본론>은 매우 어려운 책이다. 그럼에도 많은 노동자와 청년 학생들이 좀 더 쉽게 <자본론>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든 책이었다. 마침 세계경제 위기와 맞물리면서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이 책은 예상을 뛰어 넘는 반응을 보이며 단시일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책 제목으로 검색을 하면 전혀 운동권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읽고 자본주의 사회의 매트릭스 구조를 알게 됐다는 리뷰를 남긴 것을 자주 발견한다. 필자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표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표지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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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라는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라고 항의(?)를 하기도 한다. 사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라는 제목은 출판사가 지은 것이 아니라 필자가 직접 지은 제목이다. 이참에 제목에 얽힌 얘기를 약간 하자면, 제목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만화책 <폭두고딩 다나카>이다. 썰렁한 개그가 은근히 매력적인 이 만화의 한 장면인데, 주인공 다나카는 어느 날 타치바나 중앙 공민관에서 <원숭이도 이해할 수 있는 물리학>이라는 책을 펼쳐들고 있다.

'5g의 새를 20g의 상자에 넣어 밀봉합니다. 그걸 저울에 올리면 25g을 가리킵니다. 그럼 이 새가 날고 있을 때는 저울 눈금이 몇 g을 가리킬까요?'

정답은 25g이다. 정답을 확인한 다나카는 큰 충격에 빠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날고 있기 때문에 저울에 새의 무게가 전달이 안돼서 20g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 다나카와 같은 류의 충격에 빠진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니 그냥 넘어가겠다(왜 25g인지 궁금해서 참지 못하겠는 분은 필자의 메일 reltih@nate.com 으로 연락을).

당시 마르크스 <자본론>을 쉽게 풀어쓴 책을 준비하고 있던 필자는 <원숭이도 이해할 수 있는 물리학>이라는 책의 제목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거야!'

물리학이라고 하면 마치 신선들이 주고받는 선문답만큼이나 어렵다는 선입견이 강한데 앞에 '원숭이도 이해할 수 있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정말 쉽게 풀어 쓴 책이라는 사실을 어필하고 있었다. 물론 만화책 속에 등장하는 책이기 때문에 실제 그런 책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필자가 준비하고 있던 마르크스 <자본론> 입문서도 그 어렵다는 자본론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이 목표였다. 책의 독자층도 마르크스 <자본론>에 관심이 있지만 너무 어려워서 좌절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 타깃 독자층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제목을 고민하던 차에 만화책 <폭두고딩 다나카>를 통해 신탁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제목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다. 솔직히 필자라고 해서 제목이 좀 멋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없었을까? 사실 강연을 다닐 때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저자라고 불리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책 제목을 이렇게 정한 것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마르크스 <자본론>을 이렇게 쉽게 풀어 쓸 수 있다고 자랑하려고 만든 책이 아니다. 솔직히 필자가 마르크스 <자본론>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훌륭한 교수님들이 필자보다 훨씬 학문의 내공이나 깊이가 뛰어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필자는 그저 더 많은 사람들과 마르크스 <자본론>의 내용을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을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책을 쓰면서 이 내용을 요렇게 저렇게 전달을 하면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은 마르크스 <자본론>을 이해하는데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 과감하게 삭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그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리고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했다.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인민대중이며, 세상을 바꾸는 힘도 인민대중 속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도구를 통해 누구와 마음과 생각을 나눠야 할까? 당연히 인민대중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이 대학이나 연구소에 적을 두면서 훌륭한 연구를 진행하고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 내용은 그저 학계의 패밀리들에게만 공유될 뿐이다. 그 패밀리들에게 인정받아야 자신의 학문적 지위와 영향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민대중들을 염두에 두는 글쓰기에서는 점점 멀어진다. 그러면서 글은 어느덧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로 가득해진다. 물론 학계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학계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만 하려는 것이 문제라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점점 대학이나 연구소라는 공간들도 자본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연구비 등의 자본 통제에 의해 연구 과제의 방향이 영향을 받고 있다. 당연히 자본의 구미에 맞는 연구과제가 세상을 바꾸는 방향에 걸맞은 과제일 리는 만무하다.

필자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상황은, 진보정당이나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들도 당면 사업에 매몰되어 사상사업을 완전히 손 놓고 있다시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상사업과 정치사업을 앞세우지 않으면 당원이나 회원들은 단순히 사업의 동원 대상이 되어 버릴 뿐이다. 한번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자. 자신이 진보운동의 길을 가고 있는 이유를 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마 그 경로에는 자신의 세계관과 사상의식에 영향을 끼친 많은 책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책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과 다른 길을 걷고 있을 테고 말이다. 우리와 함께 진보의 길을 나아갈 동지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을 위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진보진영이나 학계에는 각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가진 훌륭한 선후배들이 많이 계신다. 이 분들이 '책'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자신이 가진 역량과 지식을 '인민대중'과 공유한다면, 분명 세상은 그분들이 역량과 지식을 공유하는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 만약 그런 과정에 부족하나마 필자가 가진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적극 협조할 의지가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필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같은 목적을 가진 누구든 환영한다. 필자의 메일 reltih@nate.com 으로 언제든지 연락을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민족2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굴레를 벗고 자주의 새 역사를 여는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지음, 시대의창(2006)


태그:#글쓰기, #책, #목적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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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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