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라가 없는 거 같아요."

 

두 달째 바깥출입을 완전 중단한 채, 방학을 맞아 잠시 외가에 간 중학생 아들마저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치한 후에 남편과 둘이 콩만 갈아먹으며 돼지 구제역과 싸워오고 있는 병기 엄마(가명)의 힘없는 목소리다. 두 부부가 콩만 갈아먹는 이유는 그동안 전혀 시장을 보러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콩이었던 모양이다.

 

아들도 집에 들이지 않고... 구제역과의 '사투'

 

그만큼 두 부부는 필사적이었다. 특히나 돼지 구제역이 심해 90% 이상의 돼지가 살처분된 이곳 경기도 이천 여주지역에서 병기네는 불과 몇몇 손에 꼽을 만한 살아남은 돼지 농가 중 하나다. 

 

그런데 많이 지친 모양이다. 병기 엄마의 목소리에는 건드리면 "툭"하고 전화선마저 말려서 부서질 것 같은 건조함이 묻어 있다. 벌써 보지 못한 지가 두 달이 넘었다. 외가에 간 아들마저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치한 마당에 어설픈 위로 한마디 입술에 축여주고자 불쑥 방문한다는 건 서로에게 못할 짓이기 때문이다.

 

그때, 진통 끝에 불쑥 두 다리를 내밀며 어미 몸 밖으로 미끄러져 나오는 새끼돼지처럼, 그렇게 가슴 저 밑바닥에 있던 병기 엄마의 외로움 한 덩어리가 꺾어진 목구멍 한 구비를 돌아 미끄러져 나온다. 

 

"나라가 없는 거 같아요."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그리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문제라기보다 희망이며 차라리 아름다움이다.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말이다. 정작 문제는 마음이 다른 것이다. 생각이 다르면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화시킬 방향을 모색하면 되지만, 다른 그것이 생각이 아니라 마음이라면 아, 이건 답이 없다. 그 다른 마음 위에서 진행되는 일체의 모색은 아예 처음부터 거짓이요 위선이 되어 버린다.

 

예로 통일방안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북한에서 주장하는 통일 방안과 남한에서 주장하는 통일 방안이 서로 다르고, 남한 내에서도 계층별로 주장하는 통일 방안들이 서로 다른 것이 현실이다. 그건 문제가 안 된다. 생각이 다른 것은 오히려 통일에 대한 기대이며 열망이다. 그러나 확인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통일의 방안을 말하는 그 분들이 정말 통일을 원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통일할 마음이 없으면서 내세우는 현란한 방안들은 모두 자기기만이다.

 

한 나라를 타격하고 있는 구제역의 예방 방안과 대처 방안들도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계층과 기관들의 견해를 소중히 들어야 한다. 원인과 책임의 소재도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어느 한쪽에 책임을 밀어붙이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할 이유다.

 

위정자 나리들, 구제역 농민과 같은 마음 맞습니까

 

그러나 영양가 없는 얘기 같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저쪽으로 밀어낸 지 오래된 얘기를 이쯤에서 다시 끌어오는 것이 손발 오그라드는 일이지만, 그래도 정작 확인하고 싶은 그것은, 지금  나라 전체를 타격하며 지나가는 구제역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그 백성들과 '동일한 마음'이 나라의 어른들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왜냐면 산통 후 밀어내놓는 뜨거운 핏덩이처럼, 너무 힘겨워 꺾인 병기 엄마의 저 목구멍 한 구비 너머로 "나라가 없는 것 같다"는 한 덩어리의 한탄이 흘러나올 때, 그것은 나라가 구제역을 못 잡았다는 불평도 아니요, 구제역의 예방 방안이 틀렸다는 핀잔도 아니며 정부가 보상을 더 많이 해줘야 한다는 푸념이 아니라 구제역 밑에 깔려 신음하는 자신들이 '혼자 죽어가고 있다'는 처절한 외로움, 그것이기 때문이다.

 

시집 와서 13년간 돼지를 키우며 간신히 꾸려온 금쪽 같은 가정, 이제 그동안 가꿔온 돼지농장에서 막 금을 캐내려는 순간 그들을 엄습한 구제역이라는 지진에 맞서 마당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이웃은 물론 외가에 간 아들녀석조차 집에 들이지 않고 콩만 갈아먹으며 버텨온 두 달 동안, 단 한차례 위로나 담화문도 없던 나라님께서 어느 날 해적들과 싸워 이긴 그 승리의 담화문을 흥분된 어조로 내어놓을 때, 어쩌면 사생결단을 하고 있는 그들을 두고 "농부들이 안이하다"느니, "보상을 100% 해주어서 그렇다느니" 하는 소리를 나라 어른들로부터 들을 때, 그들은 '정말로, 우리 혼자 죽어가고 있구나'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정말 구했던 것은 구제역 백신과 보상이 아니라, 지진 더미 속에서 죽어가던 한 소녀를 소리쳐 부르며 "할아버지가 널 구해주마"라며 확성기로 흐느끼던 이웃 나라 중국 원자바오 총리의 눈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겐 명절마당, 텔레비전에 나와 돌아가신 어머님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던 대통령의 정감어린 모습도 나쁘지 않았지만, 정작 구제역 더미 속에서 "조금만 더 힘내 견디어보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마음'을 담아보내는 나라님의 응원이 필요했던 것이 분명하다.

 

중 원자바오 총리의 확성기 구조... 나랏님은 뭐하시나

 

병기 엄마는 그러나 그렇게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혼자라는 생각이 그들 부부를 더욱 오뚝이처럼 일어서게 할지도 모른다.

 

"이제 진짜 싸움이에요. 지금 구제역 맞으면 우린 완전 끝나요. 초기 발병해 신고한 사람들은 그나마 보상이라도 받았어요. 요즘은 신고해도 잘 받아 주지도 않아요. 보상도 제대로 안 되고요. 지금 쓰러지면 우린 완전 끝장이에요. 끝까지 이겨내야지요."

 

이건 위로 속에서 끌어올린 용기가 아니다. 나라가 없다는, 나는 혼자라는, 결국은 내가 나를 추스르지 않으면 버려지고 말거라는 두려움에서 솟구쳐나온 비참한 절규다.

 

명절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라가 없는 것 같다"는 병기 엄마의 한탄이 나는 지금 이 나라 백성들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정확한 민심이라고 확신한다. 여기 여주에서 그 정확한 민심을 보낸다. 제발 듣기 싫은 일부 불평분자의 소리로 여기지 말고 그대로 받아달라.

 

제발 그것이 오해라는, 부족하지만 당신들을 향한, 그리고 당신들과 같은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우리가 부족해서 실무에선 좀 실수가 있었지만 마음은 당신들과 같은 반석 위에 놓여 있다는 그 메시지를 진정성을 담아 이 명절에 보여 달라. 어떤 모양으로라도 말이다.

 

그래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면서도 마음이 같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한번 일어서도록, 그 다른 생각들을 열정과 비전으로 빚어갈 수 있도록 그 건강한 단초를 '명절'이라는 핑계로라도 만들어 달라.   


태그:#구제역, #명절, #담화문, #생각과 마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