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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전경
 국회의사당 전경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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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이 출산휴가(산전·후 휴가)와 육아휴직을 확대하는 등 저출산 대책법안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의원 보좌진들은 이러한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는 평균 출생아수)이 1.15명(2009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라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남성에게 30일 유급 육아휴직 의무 부여를 골자로 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및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같은 당 박순자 의원은 임산부의 보호휴가 기간을 현행 90일에서 120일로 연장하고 보호휴가 기간 전부를 유급으로 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도 육아휴직을 위한 자녀의 연령을 현행 '만 6세 이하'에서 '만 8세 이하'로 상향 조정하고 육아휴직 기간을 '3년 이내'로 연장하는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저출산 걱정하는 국회, 정말 걱정하는 것 맞나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연일 저출산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로 법안 작업을 하는 의원 보좌진들은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여성)은 올해 9살, 5살이 되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출산휴가는 각 2개월씩이었고, 육아휴직은 없었다. 의원실의 바쁜 업무를 소화하다 보니 오랫동안 출산휴가를 쓰기 어려웠다고 한다. 특히 보좌진의 채용 및 해고가 의원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는 구조에서 심리적 부담도 컸다. 이 보좌관은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밤을 새면서 일했다. 국정감사 마지막 날 질의자료를 모두 준비해 놓고 다음날 오후에 아이를 낳았을 정도"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의 비서관(여성)도 출산 전후로 1년여 기간의 휴가를 받았지만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휴가를 쓰려면 상황에 맞게 의원에게 양해를 구해야만 한다"며 "국회의원들 사이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적게 쓰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 임신 자체가 미안한 기분"이라며 "마초적 분위기의 정당에서 일하면 (나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출산 대책 만드는 사람, 지키는 사람 따로 있나

국회의원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으로 이는 특정한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별도의 자격 기준에 따라 임용되는 공무원이다. 국가공무원법(72조 2항)에도 별정직 공무원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보좌진들의 채용과 해고를 마음대로 하는 구조에서는 보좌진들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마음 놓고 쓸 수 없다는 점이다. 바쁜 국회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휴가 기간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배우자가 출산했을 경우 남성도 3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지만 실제로 남성 보좌진이 배우자 출산휴가를 신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더욱이 보좌진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하지 않는 의원의 태도 변화를 가져올 만한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 18대 들어 국회 여성보좌진협의회가 유명무실화되며 이런 논의를 제대로 할 기회도 없었다고 한다.

국회 사무처 인사과의 한 관계자는 "의원실 보좌진이 국회 소속이긴 하지만 사무처에 실질적 인사권은 없다"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본인이 신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대책 만들지만 적용하지 못하는 현실 안타깝다"

복수의 정부 부처 관계자들도 이런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국회 보좌진도 별정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고 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보좌진의 인사를 좌우하는 의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고용노동부는 일반사업장만을 담당한다"며 "이런 문제는 의원들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일반사업장에 대해서는 근무감독관들이 지도점검을 하지만 국회의원들에 대한 감독이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여성노동자가 스스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포기하는 사회적·문화적 풍토를 저출산의 더욱 근본적인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학계 일부에서는 여성노동자의 신청에 따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부여하기보다는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등 강행규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회 전반적인 의식 개선 없이는 저출산 문제 해결 못해"

윤정화 한국법제연구원 박사는 이와 관련해 "여성친화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의원 밑에서 일하더라도 보좌진들이 실질적으로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고용보험에 180일 이상 가입된 여성 근로자라면 출산 및 육아휴직 급여 제도의 혜택을 받는 게 마땅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먼 얘기다. 윤 박사는 "의원 보좌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계약직 여성들이 출산휴가를 쓰고 회사로 복귀하면 재계약이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윤 박사는 또 "사회 전반적인 의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의원들이 보좌진 인사권을 전적으로 쥐고 있는 상황을 변화시키고 출산과 육아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혜리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육아휴직, #출산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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