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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안산 원곡동에서 열린 2011 국경없는마을 설 축제 시작에 앞서 인사하고 있는 박천응 목사.
 3일 안산 원곡동에서 열린 2011 국경없는마을 설 축제 시작에 앞서 인사하고 있는 박천응 목사.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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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설날을 맞아 경기도 안산 원곡동에서 열린 외국인 노동자 설 축제에 나온 박천응 목사(안산이주민센터 대표)의 표정은 두 가지였다.

행사장에 나온 사람들과 인사할 때는 밝은 미소를 짓다가도 최근 현안과 관련된 인터뷰를 할 때는 표정이 밝지 않았다. 지난 12월 31일 폐쇄된 '안산외국인근로자센터'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었다.

박 목사는 "정부가 민간단체 뒤통수나 치고 있다"며 "노동부가 법조차 제대로 안 지키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안산 외국인 노동자의 대부'로 불리며 오랜 시간 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을 도와 온 박천응 목사에게 지난 연말 갑작스러운 안산외국인근로자센터 폐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쾌함이었다.

박 목사는 "셋방을 살더라도 한 달 전에 통보해야 하는데, 열흘 남겨 놓고 나가라고 하는 것은 문제다. 노동부의 못된 작태이자 법조차 제대로 안 지키는 처사"였다고 지적했다.

"재위탁 받고 안 받고는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갈 곳도 마땅치 않아 센터가 보호하고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을 노동부가 한겨울에 쫓아내는 것은 할 짓이 아니라는 거지요."

센터는 안산시 유일의 공공쉼터로 올해 들어 이용한 외국인들만 8000명이 넘었다. 그렇게 쫓겨난 외국인 노동자들은 현재 안산이주민센터에서 보호 중이다.

"4년간 잘 운영했는데... 고맙단 말도 없이 쫓아냈다"

안산외국인근로자센터(이하 센터)는 2006년 설립돼 박 목사가 소속된 (재)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노회 유지재단이 위탁받아 4년 정도 운영해 온 기관이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지원 활동과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 상담, 다문화 사회 교육 및 공동체 운동을 펼쳐왔다. 센터가 연간 해결한 이주노동자 체불임금 규모만 10억여 원에 달할 정도.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지난 12월 22일 팩스 한 장으로 계약 해지와 센터 폐쇄를 통보했다. 사유는 '계약조건 불이행 및 제3자 위임에 의한 약정 위반'. 고용노동부 측은 2년 전 계약 연장 시 1억원짜리 방송장비를 방치하는 문제를 개선할 것을 요구했지만 지켜지지 않아 해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천응 목사는 핑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방송국을 하겠다고 방송장비를 사라고 해 놓고서 1년 지난 뒤엔 하지 말라고 하더라. 법령상 문제로 하지 못한다고 했다. 도리어 노동부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안 아니냐"고 말했다. 또 유지재단 산하에 운영이사회를 설치했는데 이를 재위탁이라고 문제삼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센터를 위탁 운영하던 (재)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노회 유지재단은 지난 1월 17일 성명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가 무리한 법리 해석과 일방적 행정절차, 합리적 해결 노력을 형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는 등 민간 위탁 사업의 당위성과 공정성을 훼손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2년 전 평가 점수가 15점이나 높게 나왔다고 최우수단체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명분 자체가 없는 것이지요. 차라리 정부 정책으로 직영화하겠다면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4년간 잘 운영해 온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쫓아낸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외국인력상담소? 명칭부터 기업 중심이다"

3일 안산에서 열린 2011 국경없는 마을 설 축제에 참석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세배를 하고 있다.
 3일 안산에서 열린 2011 국경없는 마을 설 축제에 참석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세배를 하고 있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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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목사는 이명박 정부 들어 외국인 노동자 정책이 크게 후퇴했다고 말했다. 센터 계약 해지도 그런 흐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기술연수제도가 도입되고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 경영인 단체가 이를 사실상 노예 제도로 만들고 인권 보장을 안했습니다. 많은 문제점들이 생겨나면서 사후 관리는 시민 사회에 맡기자는 취지로 2006년 처음 민관 협의체로 안산에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세워졌지요.

그랬던 것을 이제 와서는 노동부가 민관 협의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센터가 폐쇄되고)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였던 것이 '외국인력상담소'로 바뀌었습니다. 명칭 자체가 기업 중심입니다. 이주민들을 다시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이지요. 이주 노동자 정책이 뒷걸음질 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박 목사는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배경의 하나로 현 정권이 초기에 선보였던 낙하산 인사와 보은 인사 문제를 꼬집었다.

"작년 3월과 5월에 직원 전체에 대한 이력 조회가 있었어요. 지금껏 그런 일이 없었는데, 어디서 활동했고 이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를 조사한 것이지요. 센터장 자격 조건도 걸었는데, 그 조건이란 게 국책기관이나 공공기관 1급 이상으로 2년 이상 근무한 자나 공무원 4급으로 2년 이상 근무한 자입니다. 민간에 위탁하는 사유가 인력 채용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노하우를 활용해 재정 편성의 재량권을 주는 것인데 책임은 단체에 지우고 권한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지요. 시민사회단체는 들러리나 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렵게 구축한 민관 거버넌스를 정부가 붕괴했다고 성토했다.

"이제는 민관 거버넌스에 대한 미래를 갖고 싶지 않습니다. 정부가 새로운 것을 만들자고 해 놓고 결국 뒤통수를 치는데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겁니까? 국가 정책이 음흉하게 생각될 정도입니다. 토론하고 의논해 결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부도덕하기까지 합니다. 위탁 못 받아도 되는데 상징적인 곳을 없애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지요."

이어 업무 중복을 이유로 내놓고 있는 고용노동부 해명도 꼬집었다.

"안산시가 같은 일을 하고 있어 업무가 겹친다고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적인 주무부서가 어디냐는 것이지요. 지방자치단체가 노동문제를 전담하는 곳인가요? 노동부의 위탁으로 민간단체에서 하는 일이면 노동부가 업무 조정을 해 자치단체 쪽의 업무를 중단시켜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박 목사는 재위탁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닌 정부가 기본적인 신뢰를 깨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책을 바꾸는 것이 그리 간단하거나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정신 차리고 정책을 지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발 솔직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외국인 노동자, #안산이주민센터,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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