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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신공항 유치 문제가 지역 민심을 흔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3차례나 입지 발표를 연기한 가운데 경남 밀양을 지지하는 경남·대구·경북·울산과 부산 가덕도를 지지하는 부산의 감정 싸움이 날로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남권 신공항은 정말 필요할까? 지역민들은 신공항 유치에 사활을 건 지역 정치인들과 언론의 유치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오마이뉴스> 가 9~12일 부산·대구·밀양을 돌며 지역민심을 살펴봤다. [편집자말]
"가덕도의 행정구역은 강서구 천가동(天加洞)에 속하며 여기서 '천가'란 '하늘로 더한다' 즉, '하늘 길(항로)이 가덕도 위로 열린다'는 뜻으로 이곳에 허브공항이 들어올 것을 선조들이 미리 예견하고 '천가'라 이름 지었다."

부산 강서구 대항동 새바지부락 초입 언덕에 세워진 신공항 후보지 안내판.
 부산 강서구 대항동 새바지부락 초입 언덕에 세워진 신공항 후보지 안내판.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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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강서구 대항동 새바지부락 초입. 부산광역시가 동남권 신공항을 유치하겠다고 하는 가덕도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는 이 같은 소개말이 적힌 안내판이 있다. 비행기도 보지 못한 선조들이 가덕도에 큰 공항이 들어설 것이라 예견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천가동은 행정동이다. 이곳 주민들은 천가동이란 명칭보다는 주로 천성동·대항동·성북동·눌차동 같은 법정동 명칭을 많이 쓴다. 천가동에는 가덕도 내 전 부락이 포함되는 반면에 법정동 명칭은 예로부터 내려오던 동네 이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천가동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100여 년 전이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천성면과 가덕면이 1908년에 통폐합되면서 앞 글자 한 자씩 따서 천가면이 됐다. '하늘 길이 열릴 것을 예견'한 일과는 전혀 상관 없이 행정 편의로 지어진 이름이 천가면이고, 1989년 가덕도가 부산에 편입되면서 천가동이 됐다.

편의상 지어진 천가동이라는 이름이 '하늘 길이 가덕도 위로 열린다'는 '선조의 혜안'으로 둔갑한 것은 어떤 연유일까. 천성동에서 만난 한 노인은 "공항 짓는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농담 삼아 '하늘(天)길이 더해진다(加)고 해서 천가 아니냐'고 하는 말이 돌긴 했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이 조금이라도 공항 유치에 유리한 얘기가 있다 싶으면 '정설'로 둔갑시켜 버리는 무리한 홍보전이 진행되고 있는 단면이다.

현수막 융단폭격 "관심이 없으니 구청에서 온데 만데 붙이지"

부산엔 지난 설 연휴를 전후해 시내 곳곳에 신공항 가덕도 유치를 주장하는 현수막이 융단폭격 식으로 내걸려 대선이나 총선을 방불케 했다. 평소 같으면 불법광고물로 강제철거되고 과태료가 부과됐을 현수막들이지만, '신공항은 부산으로 와야 한다'는 내용만 담고 있다면 도시미관을 해쳐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

각 현수막마다 현수막을 내건 단체의 이름이 하단에 적혀있지만, 부산시민들은 '구청에서 알아서 이름 달고 내건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역을 불문하고 현수막에 적힌 구호와 디자인이 비슷비슷하거니와 알 수 없는 단체의 이름으로 걸려있는 현수막도 많았다.

 부산 시내에 걸려있는 신공항 유치 현수막.
ⓒ 안홍기

 부산 시내에 걸려있는 신공항 유치 현수막.
ⓒ 안홍기

 부산의 한 주택재개발지에 신공항 찬성 현수막이 걸려있다.
ⓒ 안홍기

심지어는 한창 터닦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주택재개발 조합에서 내건 현수막도 있었다. 재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뿔뿔이 흩어져 이곳에 거주하지 않고 있는 주민들이 신공항 유치를 위해 힘을 모아 현수막을 내걸었다는, 내걸려 있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현수막이다.

현수막뿐 아니었다. 버스 밖은 물론 안에도 신공항 홍보물이 부착되는 등 부산 말로 '천~지빼까리'(굉장히 많음)인 상태다. 

택시기사 전아무개씨는 "현수막 걸어놓은 것도 너무 지저분하고, 부산이 아닌 다른 곳에 공항을 지으면 부산이 망할 것처럼 하는 것은 좀 오버스러워 보인다"고 비판했고, 자갈치시장의 한 횟집 사장도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 구청에서 현수막 만들어서 온데 만데 갖다 붙이고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부산 시내를 다니는 한 버스 밖에 신공항 유치 홍보물이 부착돼 있다.
ⓒ 안홍기

 부산 시내를 운행하는 한 버스 안에 '가덕도 신공항 동남권 발전의 유일한 선택!'이라고 적힌 홍보물이 부착돼 있다. 거의 모든 버스 내에 이같은 홍보물이 부착돼 있다.
ⓒ 안홍기

산하기관 총동원한 대구... "밀양이 최적지임은 신도 아신다"?

부산에 비해 현수막 목격 빈도는 조금 떨어지는 듯했지만 대구도 '현수막 홍수'이긴 마찬가지다.

의사회·치과기공사회·변호사회·건축사회·상인회 등 온갖 직능단체와 ○○○클럽 같은 각종 친목회의 현수막도 많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대구시 산하 기관들이 총동원돼 소방서, 공원, 공영주차장, 지하철 역사 안에도 각 기관 이름으로 된 신공항 유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적혀 있는 '밀양'을 '가덕도'로 바꾸기만 하면 부산에 걸려 있는 것과 같아지는 '개성 없는' 현수막도 많았지만, 구호의 다양성 면에선 대구가 부산보다 한 수 위였다. 

한 상인회는 "신공항 최적지가 밀양임은 神(신)도 잘 알고 계신다!"면서 신을 신공항 유치전에 끌어들였고, 한 보수단체는 "불쌍한 대구, 밀양신공항으로 살려주이소"라 읍소하기도 했다.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사 내에 대구도시철도공사가 내건 신공항 유치 현수막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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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법원 앞에 걸린 신공항 유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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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칠성시장에 걸려있는 신공항 유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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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시내에 걸려있는 신공항 유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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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공항, #대구, #부산, #가덕도,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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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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