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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문(자료사진).
 서울대 정문(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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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립대학교의 법인화를 중단해야 한다. 법인화 필요성이 정부 일각에서 제기된 적은 있으나, 이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된 적은 없다. 노무현 정부 때도 교육부가 관련 법률을 국회에 제출하려고 했었으나, 당정 협의 과정에서 국회의 반대에 부딪쳐 좌절됐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은 2009년 12월 14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회부된 후 단 한 차례의 논의 없이 2010년 12월 8일, 직권 상정으로 날치기 통과됐다. 

정부가 제시한 법인화 추진의 목적은 대학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고, 대학의 교육과 연구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법인화법은 정부가 이사회를 통해 서울대학교를 지배하겠다는 것 말고는, 목적 달성에 필요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 법은 대학의 자율성을 심대하게 침해한다.

이는 대학 운영의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고 총장을 선임하는 이사회의 구성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이사의 1/2 이상을 외부인사로 임명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관치의 부활이고 정부가 입맛에 맞는 인사를 총장에 임명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학사위원회와 재경위원회, 평의원회와 이사회의 중첩적 구조는 갈등을 야기하고, 의사 결정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재경위원회에는 외부 인사를 1/3 이상 포함시키도록 했는데 이것도 대학의 자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평의원회가 추천하는 이사까지도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취임하도록 하고, 2인의 감사 중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추천하는 사람을 상근으로 한 것도 대학의 자율과는 배치된다.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복수의 후보를 선출하게 하고 이 중에서 이사회가 총장을 선임하게 한 것도 이사회가 총장 선임권을 독점하겠다는 의도다. 아울러, 교직원을 사립학교 연금 가입자로 한 것은 내용적으로는 서울대학교를 사립화 한다는 것과 같다.

국가는 교육의 질 향상과 국제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재정지원을 하도록 하고, 지방자치단체도 대학이 추진하는 사업에 출연 또는 보조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는 추상적인 언급일 뿐 이것을 근거로 재정 안정이 보장된다고 볼 수 없다. 국립대학의 경쟁력 제고에 필수적인 재정 지원의 확대 방안이 없다. 대학의 책임과 관련해서도 학생과 사회에 대한 책임보다는 정부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서울대학교 법인화법은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대학의 자율성과 책임성 그리고 경쟁력 제고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서울대학교를 법인화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의심받는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기본권에 있어서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나, 태어난 환경과 사회·경제적 조건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교육의 기회 균등만이 이러한 불평등한 조건을 해소할 수 있다. 국가는 교육을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 등록금 걱정으로 자살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는 책임을 개인에게 돌릴 것인가? 미국과 비교해 한국 대학의 등록금이 비싸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이다. 미국에서는 대학생의 80%가 공립학교에 다니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대학생의 86%가 사립학교에 다닌다.

한국 대학의 국제 경쟁력이 낮다는 비판은 많이 있으나, 국립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한국 국립대학의 등록금은 OECD 국가 중에서 미국 다음으로 2위를 기록하지만,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GDP의 0.6 %에 그쳐, OECD 회원국 평균 1.0%에 훨씬 못 미친다.

국회는 이번 기회에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과 유사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여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대학 교육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무상화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현재의 국립대학 시스템을 유지해도 경쟁력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동시에, 국회는 날치기 통과된 서울대학교 법인화법을 조속히 폐기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지병문 전남대학교 교수는 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당)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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