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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전에 함께 머물다 오후엔 오마이뉴스 사무실로 갔습니다.
▲ 22일 아침 단식 14일 째 날 오전에 함께 머물다 오후엔 오마이뉴스 사무실로 갔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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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산동네 무허가 판자촌에 있었습니다. 저는 문맹인 부모 밑에서 자랐고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전기가 없어 밤엔 촛불을 켜거나 유리병과 실, 석유를 이용해 '유리 호롱불'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밤에 숙제를 하다 촛불을 넘어뜨려 책을 태운 기억도 납니다. 전 그렇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공부를 못한 것은 기본이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중학교 졸업 할 때까지도 국어책 하나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상'과 거리가 먼 건 어쩌면 당연 할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면서 늘 편집부 기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그냥 하루 살아온 이야기 써 올릴 뿐입니다. 제가 올린 글의 맞춤법이 맞는지, 띄어쓰기가 올바른지, 그 상황에 그 단어가 맞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편집부에 있는 분들이 제 글을 채택해주기도 하니, 저는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오마이뉴스입니다. 변창기 기자님이 이번 2월 22일 상에 선정되어 알려 드립니다. 시상식에 꼭 참석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 달 전인지 두 달 전인지 알 수 없으나 저는 그 소식을 접하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볼 때마다 쟁쟁한 분들이 올린 기사를 보곤 합니다.

'어쩜 저래 글을 잘 쓰실까? 내용도 풍부하고 표현도 멋지고...'

여러 사람의 기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쟁쟁한 분들이나 상을 받는 줄 알았는데, 나처럼 실력없는 사람에게도 주다니... 참 희한한 일이라 생각 했습니다. 몸 둘 바를 모른 정도로 어색하고 '내가 받아도 되는 상일까?'하는 고민도 생겼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정말 실력있는 다른 분이 못받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도 했습니다.

50여년 동안 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음에도, <오마이뉴스>에서 뜻깊은 상을 준다고 했을 때 내심 얼마나 기쁘던지요. 그래서 모든 행사에 참석해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1월에 진행된 수상자워크숍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울산에서 자꾸만 바쁜 일이 생겼었거든요. 그러나 시상식엔 꼭 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시상식 하루 전날, 단식농성이 진행되는 조계사를 찾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 조계사 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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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서 서울까진 버스로 5시간 정도 걸립니다. 저는 시상식 하루 전인 21일, 서울로 올라 갔습니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단식 13일 째를 보내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이상수 지회장님과 하룻밤 지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조계사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다른 사찰과는 다른 풍경이 많이 보였습니다.

저녁에 도착해서 하룻밤 자겠다고 했습니다. 지회장님은 작은 텐트 안에서 잠을 청했고 지회장님을 경호하는 다른 조합원 한분과 저는 의자를 여러개 붙인 뒤 그 위에 침낭을 펴고 잠을 잤습니다. 함께 한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잘 자는데, 저는 추워서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오전 2시경 일어나 근처 가까운 찜질방으로 가서 잠을 잤습니다.

오전에 다시 조계사로 와서 머물다 오후에 <오마이뉴스> 시상식이 있어 다녀 오겠다며 이동 했습니다. 서울 지리를 잘 몰라 물어 물어 찾아 가니 오후 3시가 넘었습니다. 울산에서 왔다니까 알아 본 <오마이뉴스> 상근 기자 분들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를 잠시 빌려 급히 사진과 글을 올리니 시상식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참석했습니다.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 진행된 시상식엔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오신 것 같았습니다.

시상후 잠시
▲ 오연호 대표기자와 기념사진 시상후 잠시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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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 분도 많고, 젊은 분도 있고, 어린 분도 있었습니다. 오연호 대표기자님의 인사 말씀 후 시상식이 진행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오마이뉴스에서만 보던 훌륭한 분들을 만나니 참 좋았습니다.

KBS 전 사장을 지낸 정연주 선생님도 <오마이뉴스> 기자로 활동하고 계시고, 시상식에 상을 받으러 오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기에 <오마이뉴스>가 더욱 빛이 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상식 후 한 명씩 소감을 발표할 기회를 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오연호 대표님은 저를 '대한민국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기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울산에서 활동하는 박석철 기자님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날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사연을 가진 기자님들 모두, 맡은 바 열심히 삶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라는 이 특별한 공간 속에서 말입니다.

시상식이 끝나고 수상자들, 그리고 상근직원들과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연호 대표님이 식당에서도 저에게 한마디 하라고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는 울산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문제가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비정규직 900만 시대에 우리 비정규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힘내요. 잘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먼저 일어나 밖으로 나가시던 한 선생님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분은 예전엔 KBS 사장을 지낸 경력이 있고 지금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시는 정연주 선생님이셨습니다. 훌륭한 여생을 보내고 계시는 그런 분께 격려를 받으니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마이뉴스, 세계에서 주목받는 언론 될 거예요

참석자와 함께
▲ 오마이뉴스 생일 떡 자르기 참석자와 함께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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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하면 차비 준다고 하던데 차비 안 줘요? 차비 안 주면 차비 없어서 울산 못가요."

울산에서 서울로 올 때 딸에게 차비를 빌렸습니다. <오마이뉴스> 시상식에 다녀와 주겠다고 하고 빌렸습니다. 저는 요즘 백수라 돈이 없거든요. 딸은 용돈 모아 두고 잘 안 쓰는 편입니다. 제가 서울 간다니까 기꺼이 쌈짓돈을 꺼내 주더군요. 딸이 차비 빌려주지 않았다면 시상식에도 참석 못할 뻔 했습니다. 창피하지만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님 한 분께 그렇게 말했습니다. 상근 기자님은 잠시 기다려 보라며 어디론가 갔다 오더니 봉투를 주었습니다.

"본래는 나중에 온라인 계좌로 붙혀주는데요. 급하니까 마련해 주는 거예요. 이 정도면 될지 모르겠네요."

울산으로 내려 갈 차비를 받고서 잠시 후 저도 일어 섰습니다. 행사장을 빠져 나오는 제 양 손은 묵직했습니다. 한 손엔 시상식에서 받은 '2월22일상' 상패가, 한 손엔 <오마이뉴스> 생일 떡 조각이 들려 있었습니다. 울산에 있는 자식에게 갔다 주려고 떡 봉지를 3개나 챙겼습니다. 무거운 짐보따리를 들고 울산 내려왔지만 마음에만은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이번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상은, 저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상이 될 거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엔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작년에 드디어 흑자를 냈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나 봅니다."

오연호 대표님의 이야기 중 마음에 남는 내용입니다. 정연주 기자님은 <오마이뉴스>가 흑자 많이 내서 시민기자들에게도 원고료도 듬뿍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도 기억에 남네요. 오연호 대표님은 <오마이뉴스>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신 거 같습니다. 오연호 대표님의 그런 열정이면 대한민국 특산품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인터넷 언론이 충분히 되고도 남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그:#오마이뉴스, #언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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