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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답사하다 보면, 이정표는 있는데 문화재를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찬찬히 주변을 돌아보지만, 시간이 촉박할 때는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 때는 괜히 마음이 울적해진다. 문화재 하나를 그냥 포기하고 돌아섰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다.

 

지난 2일, 느지막하게 달려간 답사길이라 마음이 바빴다. 전남 구례군 문척면 오산에 있는 사성암 마애불을 보러 가는 길에 '입석'이 있다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우선 마애불을 먼저 보고 돌아오는 길에 들려보리라 마음먹었다. 길가에 서 있는 문화재 안내판에는 100m 전방에 월전리 입석이 있다고 적혀 있다.

 

표시된 곳으로 들어갔으나 주변이 온통 비닐하우스뿐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입석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마침 마을 주민 한 분이 나오기에 물어보았다.

 

친절하게도 가던 길을 돌아 그 앞까지 데려다 주면서 '저 안에 입석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안 어디에 입석이 있는 것인지 들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뒷문을 열면 그곳에 입석이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비닐하우스를 지나야만 했다.

 

비닐하우스를 통과해 만난 월전리 입석. 입석 주변에 축대를 쌓아놓았는데, 온통 잡풀로 덮여 있어 입석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축대 위로 올라서니 그제야 입석이 보였다. 온통 마른 억새 더미 속에 갇혀 있는 입석 주변에는 비닐하우스가 널려 있다. 마른 억새 잎에 손가락을 베이면서 잎을 누르고 사진을 찍었다. 

 

비닐하우스에 막히고 잡풀에 뒤덮인 '문화재' 

 

선돌이라고 하는 입석은 태양숭배 사상 같은 원시시대 신앙과 관련있는 유적으로 본다. 이러한 선돌은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의 수호신이나 경계표시 등으로 사용되어왔다. 전남 문화재자료 제114호인 월전리 선돌은 높이가 2.5m 정도인데 여기 외에도 몇 곳에 선돌이 있다. 아마도 고인돌 등이 주변에 있다는 것으로 보아, 월전리 입석은 신성한 지역을 표시하는 표시석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의 가치는 어떻게 따지는가? 그 가치는 무엇으로도 계산할 수가 없다. 지정된 종목이 보물이 되었거나 아니면 문화재자료이거나 같은 문화재이다. 그런데 문화재자료라고 해서 그런지 이런 푸대접을 받고 있다. 비닐하우스로 인해 통로마저 막혀버렸는데 문화재 주변은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앞에 세워놓은 안내판 사진을 보니 한 때는 비닐하우스 안에 있었나 보다. 이렇게 방치할 것 같으면 차라리 비닐하우스 안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잡풀이 자라지 않았을 테고 자랐다면 베어주기라도 했을 테니 말이다.

 

길가에 서 있는 안내판만 보고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월전리 입석. 조금만 신경 썼다면 주변 정리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방치된 문화재를 만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가까이엔 안내판도 없고 길도 없다. 아마도 일 년 내내 이렇게 방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숨통이라도 좀 틔웠으면 좋았을 것을. '문화재'라는 이름이 부끄럽다.


태그:#월전리 입석, #선돌, #구례, #문화재자료, #비닐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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