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기도 여주군은 지금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하나는 4대강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구제역이다.

 

여주를 관통하고 있는 남한강에는 '4대강 살리기'라는 명분 아래 여주보와 이포보, 강천보 등이 세워지고 있다. 단일지역으로는 최대 공사라고 한다. 또 최근 불어닥친 구제역 사태로 인해 16만여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됐다.

 

16만여 마리의 가축은 160여 곳의 매몰지에 묻혔다. 매몰지 한곳 당 1000마리가 묻혀 있는 셈이다. 여주의 인구가 10만7000여 명인 점을 헤아리면 인구보다 많은 가축이 순식간에 땅속으로 사라진 셈이다.

 

"남한강까지 오염시키는 매몰지를 여기에 두어야 하나?"

 

수도권의 식수원인 남한강은 부실한 매몰지 조성으로 오염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3일 기자가 찾은 여주군 흥천면 상백리 79번지의 매몰지는 그런 가능성이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이곳에는 대규모 축사가 세워져 있었다. 기자와 동행한 한 주민은 "강가에 대규모 축사가 세워진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규모 축사 앞에는 남한강의 지류인 복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이날 복하천에서는 여유롭게 강가를 배회하는 몇 마리의 백로가 목격됐다.

 

문제는 복하천 바로 옆에 매몰지가 조성됐다는 점이다. 축사의 규모에 비례해 이곳에 매몰된 돼지수가 7414마리에 이른다. 여주에서 보기 힘든 '대형 매몰지'인 셈이다.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여주에서 단일 매몰지로는 제일 큰 곳"이라고 귀띔했다.

 

그런데 매몰지를 지탱하고 있는 강가의 제방이 침식되고 있었다. 게다가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해놓은 콘크리트구조물의 일부마저 붕괴돼 있었다. 이항진 위원장은 "하천 제방면이 침식 등으로 훼손되고 있다"며 "그로 인해 구제역 매몰지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몰지가 훼손되면 침출수가 하천으로 흘러나올 것이 뻔하다. 여기서 남한강까지 거리는 2km에 불과하다. 당연히 수도권 식수원인 남한강을 오염시킬 수 있다."

 

이항진 위원장은 "남한강까지 오염시키는 매몰지를 여기에 둘 필요는 없다"며 "우선적으로 이 매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수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도 "콘크리트구조물이 날아갈 정도로 제방이 위험하다"며 "이런 식으로 제방이 깎여나가면 매몰지가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하천은 매몰지 지하와 다 연결돼 있다. 겉으로는 분리돼 있지만 하천수와 지하수는 다 연결돼 있다는 얘기다. 침출수가 복하천으로 유입될 수 있다. 그래서 하천 옆에는 매몰지를 조성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김 부소장의 매몰지 진단은 더 이어졌다. 그는 "하천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침출수가 상수원으로 이동하는 속도가 빠르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하수에서는 침출수 이동 속도가 느리지만 하천수에서는 빠를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하천 유속이 두 배 이상 빨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남한강에서 4대강 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침출수는 더 빠른 속도로 남한강 본류에 유입될 수 있다. 결국 수도권 상수원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김 부소장은 "복하천 주변에 적지 않은 매몰지가 조성돼 있다"며 "하천에서 3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매몰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환경부의 지침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이날 이항진 위원장으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전해들었다. 구제역에 걸린 돼지 7400여 마리를 살처분한 이곳 축사에 모돈 등 800여 마리가 생존해 있다는 것이다. 구제역 발생지로부터 5km 이내는 예방적 살처분을 해야 한다는 지침을 어긴 셈이다.

 

김 부소장은 "처음에는 무조건 살처분했다가 불만이 제기되니까 이후에는 축사가 다르면 살처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쪽으로 지침이 완화됐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구제역 바이러스 숙주가 죽었기 때문에 방역복 안 입고 작업"

 

 

이어 여주군 능서면 용은리 585-1번지에 위치한 매몰지로 이동했다. 능서면에는 세종대왕과 소헌황후의 합장릉인 '영릉(英陵)', 효종대왕과 인선황후의 쌍릉인 '영릉(寧陵)'이 있다. 능서면(陵西面)'이란 명칭도 세종대왕을 모신 영릉 서쪽에 있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 1월 10일 돼지 3925마리가 살처분돼 이곳에 묻혔다. 이항진 위원장은 "이곳의 지반이 푹 꺼져 있었는데 그 위로 침출수가 흘러나와 핏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며 "이것이 문제가 되자 군에서 흙으로 덮어버렸다"고 전했다. 세 차례에 걸쳐 복토작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매몰지에는 두 개의 침출수 저류조(저장탱크)가 설치돼 있었다. 그런데 기자가 직접 확인해본 결과, 두 개의 저류조에서 어떤 침출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류조 안에서 약간의 악취만 났다. 침출수는 매몰한 후 1주일부터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점에서 이곳에서는 저류조와 연결된 관정을 잘못 설치했거나 이미 침출수가 땅속으로 스며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곳 매몰지에 오기 전에 잠깐 들른 이천시 부발읍 죽당리 산59번지 매몰지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지난 1월 20일 100마리의 가축을 묻었지만, 저류조에는 한 방울의 침출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침출수를 퍼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가 매몰지를 확인하고 있을 때 트럭 한 대가 매몰지에 도착했다. 3명의 인부들은 트럭 위에서 활성탄이 담긴 자루들과 액체성분이 들어 있는 통들을 내렸다.

 

한 인부는 "냄새나지 않고 사체가 빨리 썩으라고 미생물과 약품을 섞은 것"이라며 "이것을 매몰지에 설치된 배출구 안에 넣는다"고 설명했다. 통에 들어 있는 '액체성분'은 최근 정부가 매몰지 악취 제거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유용미생물이었다. 

 

기자가 '침출수 저장탱크에 침출수가 하나도 없더라'고 말하자, 이 인부는 "언론에서 하도 조지니까 급하게 설치했다"며 "이는 국가적 낭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부들은 매물지에 설치된 배출구의 뚜껑을 열고 약품을 들이부었고, 활성탄이 담긴 자류를 1개씩 넣었다. 바람을 타고 악취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방역복을 입지 않은 채 매몰지 바로 위에서 작업을 했다는 점이다. 매몰지 관리가 얼마나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이와 관련, 한 인부는 기자에게 이렇게 항변했다.

 

"방역복이 있긴 있다. 그런제 이제는 구제역의 숙주(살아 있는 돼지)가 다 죽어서 없지 않나? 숙주가 없어진 지 14일 이후에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죽는다고 하더라. 두 달이 지나고 있다. 그래서 방역복을 안 입고 작업하고 있다."

 

이들은 이틀 동안에 걸쳐 매몰지 35곳을 돌아다니며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수 부소장은 "침출수가 새나온 매몰지 위에서 방역복도 입지 않고 작업을 하면 침출수 안에 있는 바이러스들을 다른 곳에 옮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매몰지 앞에 세워진 현황판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매몰지의 관리 책임자로 '경기도 일자리정책과'와 '여주군 건설과'로 적시돼 있었던 것. 보통 환경과 관련된 부서에서 매몰지 관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곳은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국민의 건강권을 훼손해도 좋을 만큼 사익이 중요하냐?"

 

경기도는 전날(2일) "도내 전체 구제역 매몰지 2200여 곳의 위치와 매몰·점검 현황, 관리 단계별 사진, 관리책임자 등 매몰지 정보를 이르면 이달 말 홈페이지를 통해 모두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기도는 '리'까지만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매몰지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번'은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 '읍·면' 단위까지만 공개할 수 있다는 중앙정부의 방침보다 진일보한 것이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많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당초 김문수 지사는 지번까지 공개하자는 생각이었지만 정부에서 제재를 가해 '리'까지 공개하자고 했는데 이것도 매몰 농장의 사생활보호와 재산권 침해에 문제가 있어 안 된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와 함께 매몰지를 둘러본 이항진 집행위원장은 "정부나 지자체는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매몰지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하는데 과연 사익이 공익보다 우선될 수 있느냐?"며 "국민의 건강권을 훼손해도 좋을 만큼 사익이 중요하냐?"고 따져물었다.  

 

특히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매몰지 관리 공무원 실명제'와 관련, 이 위원장은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져야 할 책임을 공무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며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도 참여해 공동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가운데 민주당이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AI) 매몰지 정보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한 뒤 조만간 당내 협의를 통해 매몰지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전국 매몰지 4671곳 가운데 우선 경기도(2042곳)와 강원도(445건)의 매몰지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논란이 되고 있는 '지번'까지 공개할지는 최종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매몰지 주변에서 뽑아낸 지하수에서 역한 냄새 나

이날 기자는 지난 2월 22일 방문했던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모전리 260번지 매몰지를 다시 찾아갔다. 이곳은 지하수 관정뿐만 아니라 하우스에서 기르고 있는 상추에서도 역한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제기됐던 곳이다.

 

1차 방문 때에는 볼 수 없었던 관정이 매몰지 주변에 7개나 설치돼 있었다. 이 관정을 통해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뽑아내고 있었다. 관정에서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하우스 쪽으로 흐르는 지하수를 뽑아내기 위해 관정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뽑아낸 지하수에서는 심하지는 않았지만 역한 냄새가 났다. 매몰지의 침출수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매몰지에서 일하고 있는 한 인부는 "침출수를 뽑아내고 있는 셈"이라고 했고, 다른 인부는 "침출수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정수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이곳은 침출수가 얼마나 많이 나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매몰지"라며 "침출수가 지하로 스며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하우스 재배를 하고 있는 한 주민은 "이제 하우스 비닐에도 기름기가 끼기 시작했다"며 "돼지가 많이 죽어 상추도 안 팔리는데 이런 일마저 생겨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태그:#구제역, #경기도 여주군, #이항진, #김정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