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벽돌담에 담쟁이덩굴이 붙어있다. 올 봄에 새싹을 낼 수 있을까?
▲ 담쟁이덩굴 벽돌담에 담쟁이덩굴이 붙어있다. 올 봄에 새싹을 낼 수 있을까?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비썩 마른 담쟁이덩굴의 줄기 속에는 수액이 흐르지만 보기에는 그냥 비썩 말라버린 줄기에 불과합니다. 장작같은 혹은 검불같은 저 줄기에서 새순이 올라올 무렵이면 '완연한 봄'일 것입니다.

어쩌면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은 봄을 기다리던 마음을 다 잃어버리고, 왜 이렇게 덥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벽에 붙어있는 것들, 벽의 의미가 다가온다.
▲ 도시가스관 벽에 붙어있는 것들, 벽의 의미가 다가온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벽에는 담쟁이덩굴만 붙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것들이 붙어있을 수 있겠지요. 그것들 중에서 도시가스 배관은 방을 따스하게 해주기도 하고, 먹을거리를 조리도 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가 되니 고마운 존재입니다.

벽, 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안과 밖을 경계지어주고 보호해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저 벽이 추운 겨울 바람을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살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 한 면만 바라보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꼭 붙어있어야만 산다.
▲ 담쟁이덩굴 꼭 붙어있어야만 산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다시 담쟁이, 그들이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이유는 줄기에 달린 빨판 같은 것 때문입니다. 영락없이 오징어나 문어의 다리에 있는 빨판을 닮았지요. 그들은 벽에 그들을 고정시키고, 공기 중에 있는 수분도 줄기에 공급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냥 무작정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뻗을 곳을 미리 살피고 먼저 바람이 불어도 자신을 지탱해 줄만한 지지대를 확인한 후에 올라가야 하나의 줄기가 됩니다. 절대로, 무작정 줄기를 내지 않습니다. 기댈 만한 곳이 있어야 발을 뻗는 것이지요.

밑빠진 독에 들어온 아침햇살과 풍경, 물 대신 더 귀한 것을 채우지 않았는가?
▲ 밑빠진 독 밑빠진 독에 들어온 아침햇살과 풍경, 물 대신 더 귀한 것을 채우지 않았는가?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밑빠진 항아리, 쓸모없다 버린 것입니다.
본래의 쓰임새와는 다르지만, 아침햇살과 낙엽과 밑빠진 독 사이로 담긴 풍경을 보니 그 여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는 것들, 세상에서 버림 받은 것들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이들이 낮고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웃들에게로 다가가는 것이지요. 겉으로는 화사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이 더럽고 냄새나는 항아리보다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항아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침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영역표시를 하는 견공
▲ 견공의 영역표시 아침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영역표시를 하는 견공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태어난 지 5개월여 되었을까?
사귀고 싶었는데 경계심이 많은 놈이라 거의 매일 보면서도 짖어대는 놈입니다. 짖어대니까 나도 별로 좋아할 일이 없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왠일인지 짖지도 않고 슬금슬금 내 앞을 지나갑니다.

무슨 일인가 눈여겨 보았더니, 매일 아침마다 하는 작업입니다.
일종의 영역표시를 하는 것이지요. 슬슬 눈치를 보면서도 여기가 제 땅이라고 뒷다리 들고 오줌을 갈기는 견공, 올 봄에는 좀 친해질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을 제일 좋아한다고 하니 주전부리라도 조금 줘야겠지요?

안과 밖을 막았으면서도 안과 밖을 소통하는 고리가 된다.
▲ 유리창 안과 밖을 막았으면서도 안과 밖을 소통하는 고리가 된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아침햇살에 나목이 얼어붙은 땅 위에 누워있다.
▲ 그림자 아침햇살에 나목이 얼어붙은 땅 위에 누워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축대와 나목의 그림자, 요상하게 생긴 저 나무는 감나무다.
▲ 축대 축대와 나목의 그림자, 요상하게 생긴 저 나무는 감나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시멘트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 언젠가는 자유의 몸이 될 날도 있을까?
▲ 자갈과 시멘트 시멘트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 언젠가는 자유의 몸이 될 날도 있을까?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꽃샘추위가 또 올까 싶은 아침이긴 한데, 그만 서둘러 나오다가 사무실 열쇠를 놓고 나와서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뜰을 서성입니다.

눈에 들어오는 소소한 풍경들, 그것을 소소한 풍경으로 넘겨버리기에는 수없이 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는 풍경들을 봅니다.

저것들이 어디에 있다가 이곳에 놓여지게 되었고, 어쩌다가 오늘 내 눈에 뜨이고, 카메라에 담기게 된 것일까요? 그 모든 것을 '인연'이라는 단어에 담기에는 부족한 듯한 아침입니다. 아주 오래된 것들을 아주 오래전에 나왔다는 카메라의 렌즈로 담아보았습니다. 그 둘이 만나니 향수와 추억이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견공의 영역표시와 밑빠진 항아리가 담고 있는 아침햇살, 정말 오랜만에 만난 정겨운 풍경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행복한 아침입니다.

덧붙이는 글 | 위의 사진은 1960년대 초반 홍콩에서 만들어진 다이아나 카메라의 플라스틱렌즈로 담은 사진들이다. 최근 SLR/DSLR 카메라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는 다이아나 렌즈가 판매되고 있다. 다이아나 슈퍼와이드앵글렌즈로 담은 것으로, 부드러운 색감을 표현할 수 있다.



태그:#다이아나카메라, #향수, #항아리, #추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