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다르고 점심 다르다. 그리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요즘 날씨가 그렇다는 말이다. 코트를 여미고 집을 나서지만 점심시간이면 다사로운 기운이 대지에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3차원 컴퓨터그래픽으로 거리마다 꽃들이 피어오를 듯하다. 개나리도 목련도 입 가득 색물을 머금고 품어내기 직전이다.
소담한 전시장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벽은 온통 꽃 천지였던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한껏 피어 흐드러진 꽃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본다. 꽃잎 하나하나가 기묘한 향이라도 내뿜는 듯하다. 그림의 꽃들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과 형상으로 꼿꼿이 서 있기도 하고 드러누워 있기도 하다. 한참 보다보니 웃음이 난다. 이런 모양의 꽃은 어디서도 본 적은 없었지만 늘 머릿속에 떠오르던 바로 그 꽃들이다. 이 무슨 역설이란 말인가.
이 그림들은 한지 위에 먹과 아크릴을 사용했다. 흑백 TV화면 같이 단조로운 먹물인데도 그 농담(濃淡)이 천변만화해서 한순간 화려한 꽃 색을 상상하게 한다. 묘(妙)하다. 동양이니 서양이니 하니 구분은 이미 의미 없어 보인다. 꽃잎 주름인가 하고 들여다 보면 문자다. 꽃잎 위에 새긴 한문 문장은 이 그림의 의미가 되기도 하고 표현양식이 되기도 한다. 재미있다.
큰사진보기
|
▲ 花氣滿世 꽃기운이 세상에 가득하다. 박방영의 그림에는 시와 색이, 동양과 서양이, 현실과 상상이 뒤섞여 있다. |
ⓒ 이태향 | 관련사진보기 |
봄.
기운생동(氣韻生動)하는 계절이다. 피어오르는 꽃들의 격정 속에 서서 나도 살아있음을 짜릿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