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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53'에서 밝힌대로 KBS 노조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을 며칠 앞둔 시점인 2008년 2월 13일과 20일에 잇따라 노보를 발간하여 '정연주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의 글과 결의문을 발표했다.

그러자 수구언론들은 좋은 먹잇감을 만난 듯 '정연주 죽이기' 기사를 쏟아냈으며, 한나라당도 '구 정권 인사 퇴진'을 이야기하면서 본격적인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KBS 노조, 수구언론, 한나라당이 강고한 삼각편대처럼 그렇게 주고받으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듯 했다.

노조 발표 뒤 사회적 의제가 된 '정연주 퇴진'

KBS노조가 2008년 2월 20일 발행한 특보
 KBS노조가 2008년 2월 20일 발행한 특보
ⓒ 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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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KBS 노보가 '정연주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지난 기간 고생 많이 하셨다"며 '사퇴'를 요구하자, 수구언론의 반응은 뜨거웠다. 수구언론들은 KBS 노조가 마침내 정연주 퇴진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며 이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정연주 KBS 사장에 대한 퇴진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어,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한 정연주 사장의 거취가 주목된다. … 그동안 정 사장 거취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해 오던 KBS 노조가 공식적으로 정 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 KBS의 한 관계자는 14일 "사장과 관련한 KBS 내 논의 주제는 '정연주 사장의 진퇴 여부'에서 '정 사장 이후'에 대한 논의로 넘어갔다"며 "어떤 사람이 KBS 사장으로 적합한지에 대한 논의가 노조 등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월 15일 'KBS 노조까지 사퇴 요구. 코너 몰린 정 사장')

<중앙일보> <동아일보>도 빠지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낙제점 정연주 사장 사퇴하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는 'KBS 노조, 정연주 사장 퇴진 공개 요구'라는 제목으로 2월 14일에 각각 주요 기사로 다뤘다.

수구언론뿐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이 KBS 노보를 인용하여 KBS 노조가 '정연주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정연주 퇴진'이 본격적으로 '사회적 의제'가 된 셈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 한나라당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다시 언론이 받아 가면서 본격적으로 무르익기 시작했다.

'노무현 식객들의 농성' 주인공이 된 정연주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사진 오른쪽)이 다음 아고리언에게 '정연주 사장은 퇴진하라'는 만장을 걸어놓은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사진 오른쪽)이 다음 아고리언에게 '정연주 사장은 퇴진하라'는 만장을 걸어놓은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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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인 3월에 들어서자 '구정권 인사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3월 11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지난 10년간 국정을 파탄시킨 세력들이 야당과 정부 조직, 권력기관, 방송사,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의 요직에 남아 새 정부의 출범의 발목을 잡고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아직도 국정의 발목을 잡고, 개혁을 방해하고 있는 김대중·노무현 추종 세력들은 정권을 교체시킨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받들어 그 자리에서 하루 빨리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아주 기이하게도, 같은 날 <동아일보> 배인준 논설주간은 '노무현 식객들의 농성'이라는 칼럼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안상수 원내대표와 다른 점은 칼럼의 초점을 '정연주 KBS 사장'에 두었다는 점일 뿐, '정연주 류'의 '노무현 식객들'은 "코드 정권 바뀌면 떠날 줄 알아야 한다"는 등 주장의 근거나 생각은 안상수 원내 대표 발언과 거의 같았다.

그리고 뒤에 보게 되겠지만 이 칼럼과 안상수 원내대표의 KBS 관과 세상 보는 눈은 KBS 노보의 글들과 박승규 당시 노조위원장(현 KBS 보도본부 사회부장)의 기자회견 내용 등과 너무나 흡사했다. 배인준 논설주간의 칼럼은 당시 수구세력이 KBS와 정연주 사장을,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보았는지 잘 보여준다. 

"정연주씨는 2003년 봄, KBS 사장이 됐고 2006년 가을 연임했다. 5년 전,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이회창 정부가 등장했더라도 그게 가능했으리라고는 정씨 자신부터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정씨의 인격적 문제는 새삼 들출 생각이 없다. 그는 지난 5년간 KBS 방만 경영 및 조직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중앙에 있었다. 그러고도 연임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노무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언필칭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를 좌파권력의 나팔수로 전락시켰다. '정연주 KBS'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반미를 부추기는 프로그램, 노 정부를 일방적으로 감싸면서 비판신문을 흠집 내는 프로그램 등을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

그렇다면 정씨는 지난해 대선 결과를 보고 즉시 KBS 사장직에서 자퇴했어야 상식에 맞다. 국민은 노무현 좌파정권을 응징하며 큰 표 차로 이명박 우파정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표심은 노무현 코드의 한 부품이었던 정 사장에게도 기능 종료를 명령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정씨는 내년 11월 연임 임기까지 버틸 태세다. '탄핵방송' 등에서 노 정권 비호 '편파 방송'의 선봉장이던 사람이 정권 교체가 확인된 순간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친 것은 한 편의 코미디다.

…정씨를 비롯해 노 정권 아래서 기득권층이 된 사람 중에는 "내 밥그릇 못 내놓겠다"며 농성을 계속하는 부류가 적지 않다. 특히 언론주변 운동권 단체에서 공직이나 관변으로 진입했던 사람들, 그리고 문화계 이익집단의 중심에 포진한 좌파세력이 대표적이다. …

정권교체의 본질은 인적 교체다. 누가 정권을 잡든 가장 중요한 첫 6개월을 인적 교체 문제로 시름하다가 탈진한다면 국정 성공을 기약하기 어렵다. … '정연주식 버티기'가 국민 사이에 통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식객들은 한 정권이 끝나면 곧장 자리를 털고 사라질 줄 알아야 식객 자격이나마 있다." (2008년 3월 11일 <동아일보> 배인준 칼럼).

'좌파 문화계 인사' 척결에 나선 유인촌과 <조선>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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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식객들의 농성' 칼럼이 나간 바로 다음날인 3월 12일, 이번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는 "산하기관장들 중 (새 정권과 딴판인 자기들만의) 분명한 철학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성향이 다른 새 정권에서도 계속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며,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문화 관련 기관장들은 이제 그만 물러나라고 했다.

유인촌 장관이 이렇게 운을 떼자 이번에는 <조선일보>가 다음날 '밥자리에 매달리는 좌파 문화 기관장들의 얼굴'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좌파 척결'을 외쳤다.

"… 문화체육관광부에는 11개 소속 기관과 34개 산하 기관이 있다. 노무현 정권은 이 자리를 정권과 좌파적 이념을 공유한 사람들로 메웠다. 그래서 이들이 선임될 때마다 이념적 편향성과 자격 논란이 일었다. …

전(前) 정권이 임명한 문화 관련 기관장들은 길게는 3년 가까이 임기가 남아 있다. 노무현 정권이 임기가 끝나 가는데도 제 사람 심기를 계속했었다는 뜻이다. 이들 좌파 성향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

문화예술인은 소신과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 정권과 이념이 맞아서 기관장을 맡았다면,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선선히 자리에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최소한 임명권자에게 재신임을 묻는 것이 도리다. 좌파 이념을 무슨 복음(福音)이나 되는 양 퍼뜨리던 좌파 문화예술인이란 사람들이 이념이 달라도 좋으니 밥자리만 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은 보기에도 딱하다." - <조선일보> 3월 13일 사설

한나라당, 유인촌 장관, 수구언론 등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노무현 식객', '좌파인사 척결'을 주장하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좌파 척결'의 고삐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3월 13일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안상수 원내대표는 다시 "노무현 정권에서 그 정권의 이념과 철학에 맞춰 임명된 사람들은 정권교체가 됐으므로 (새 정부가) 자신의 이념과 맞는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도록 사의를 표하고 재신임을 묻는 게 옳은 일"이라며 '퇴진'을 거듭 촉구했다.

그리고 그 '퇴진' 인사 가운데 핵심 인물은 '정연주 KBS 사장'이었다. 3월 13일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심재철 당시 원내 수석대표는 "정연주 사장 사퇴가 0순위"라고 분명하게 밝혔던 것이다. 그는 3월 13일에 이어 17일에 있었던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는 '정연주 사장 사퇴 0순위'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심재철 의원 "정연주 퇴진이 0순위"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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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사장이 사퇴 0순위라는 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 그제 안상수 원내대표께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추종세력들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서 하루 빨리 사퇴하라고 말씀하셨다. 노 정권 하에서 호가호위했던 정치적 식객들을 향해 말씀하신 올바른 말이다. 정권교체는 그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류의 사고나 행동에 대한 심판이었다. 선거는 곧 국민의 심판이다. 노무현 좌파정권을 거세게 응징했다는 것은 압도적인 표차로 나타났던 국민의 뜻, 곧 민심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버티겠다는 사람들의 강짜가 정권교체를 명령한 국민의 뜻보다 우선할 수는 절대 없다.

대표적으로 KBS 정연주 사장이 "임기가 내년 말까지이므로 그때까지 나는 버티겠다. 내 임기를 보장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2003년도에 임명돼서 2004년도에 탄핵방송을 코드에 맞춰서 훌륭하게 정권홍위병으로 잘 치러냈고, 그 덕에 다시 또 2006년도에 연임되었다. 정연주 사장으로 인해서 KBS가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깝다.…

정연주 사장은 지난 2003년도에 취임할 때는 올바른 시대정신을 들먹였다. 그 올바른 시대정신에 따라서 그 동안에 숱한 코드방송, 숱한 편파방송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랬던 사람이 이제 정권이 교체되니까 그동안에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단 한 번도 얘기하지 않던 사람이 올해 신년사에서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얘기한다. 참 웃지 않을 수가 없다. 한편의 코미디일 수밖에 없다. 정연주 사장은 정권 교체기에 자신의 보신을 위해 KBS를 이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KBS를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이고, 정권의 확성기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 같다.

현재 노조 등 내부에서조차 거세게 반발하면서 사퇴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국민의 자산인 전파를 좌파이념의 선전도구로 전락시켰던 사퇴 0순위의 정연주씨는 임기제를 구실로 방송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마땅히 자신의 거취를 정리해야 옳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게세게 요구하는 '사퇴 0순위'인 정연주. 농성중인 '노무현 식객'의 상징처럼 된 정연주. 그렇게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이 드세게 몰아세우던 그 시점인 2008년 3월 19일. KBS 노조는 다시 내게 불화살을 쏘았다. "정연주가 죽어야 KBS가 산다"는 글을 KBS 특보에 실었던 것이다. 수구언론과 한나라당이 두 손 벌이고 대환영할 만한 글의 제목이었다.

(위에 인용한 심재철 의원의 '정연주 사장 사퇴 0순위'의 발언 가운데 끝부분에 나오는 "이제 정권이 교체되니까 그동안에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단 한 번도 얘기하지 않던 사람이 올해 신년사에서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얘기한다. 참 웃지 않을 수가 없다. 한편의 코미디일 수밖에 없다. 정연주 사장은 정권 교체기에 자신의 보신을 위해 KBS를 이용하는 것 같다"는 부분은 나의 신년사를 엉뚱하게 반대로 해석하여 그렇게 주장한 코미디의 한 부분이다. '정연주의 증언' 9, 10 참조하기 바람)


태그:#정연주, #KBS, #수구언론, #KBS 노조, #삼각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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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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