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파스텔톤으로 도색된 어느 카페. 홍대 앞 스위트롤은 매주 화요일 홈리스의 자립을 향한 심장 박동으로 두근두근 거린다. '수다회'라는 이름으로 매주 진행되는 이 행사는 매회마다 각기 다른 내용으로 구성되지만, 기본적으로 '빅판의 자립'이라는 큰 주제로 진행된다.

지난 12일 열린 수다회의 주제는 빅이슈판매도우미(아래 빅돔) 교육.

 

이 자리에는 자발적 의지로 찾아온 7인이 모여 있었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다는 김은미씨는 "우리나라에도 <빅이슈>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빅이슈판매원(아래 빅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이 자리에 왔다"고 참석 사유를 밝혔다.

 

사회적 기업 빅이슈코리아 홍보팀 박효진 선생은 "빅돔 활동의 목적은 단순히 <빅이슈>의 판매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빅돔이 빅판의 친구가 돼가는 과정"이라며 "빅돔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 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내재돼 있는 홈리스에 대한 편견부터 없애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비 빅돔 비랑이의 편견 걷어차기

(*아래 기사는 교육 내용을 가상 담화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비랑이 : 안녕하세요. 저는 자비와 사랑을 인생의 신조로 삼고 살아가는 비랑이라고 해요. 이렇게 수다회에서 만나 뵙게 돼 반갑습니다.

박효진 : 네. 반갑습니다. 평일 저녁 시간을 내서 이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시느라 힘들었죠?

비랑이 : 아니에요. 근데 선생님. <빅이슈>는 노숙자들이 파는 잡지로 알고 있는데요. 제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 맞죠?

박효진 : 노숙자들이 파는 잡지요? 비랑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닙니다. <빅이슈>는 노숙인, 내지는 홈리스 출신의 빅판들이 파는 희망의 잡지라고 할 수 있어요.

비랑이 : 노숙인, 내지는 홈리스라구요? 그게 노숙자 아닌가요?

박효진 : 비랑씨는 노숙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비랑이 : 더러운 발, 코를 찌르는 악취. 뭐 이런 것들이요.

박효진 : 예. 그것이 바로 사회적 편견입니다. <빅이슈>는 그런 부정적 느낌을 주는 단어의 사용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엄밀히 말하면 UN에서 정의 내리는 홈리스로 불러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본적 가치들, 행복추구권, 수면권 등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죠.

 

비랑이 : 아, 그렇군요. 노숙자보다는 노숙인이나 홈리스가 좀 더 적당한 표현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래도 우리는 흔히 홈리스들이 '거지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일할 의지 없이 타인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태도, 뭐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박효진 : 과연 홈리스들이 비랑씨가 말씀하시는 소위 '거지근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 전에 홈리스들의 특성을 살펴봐야 해요. 우선 수면부족과 영양실조 등으로 인해 홈리스들의 몸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약해요. 자칫 잘못해 넘어져도 뼈가 부러질 수 있는 상태란 말이죠. 게다가 홈리스들은 정신적으로 사람과 사회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있어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들의 시선마저 날카롭다고 생각해 보세요. 스스로 방어기제가 생기지 않겠어요? 이와 같은 과정이 심화되면 우울증에서 대인기피로, 그리고는 자폐증의 증세까지 나타날 수 있죠. 이런 상태라면 노동은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비랑이 : 그러면 일하지 않고 정부의 보호를 받으면 되잖아요.

박효진 : 정부의 보호 장치요? 그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도 해요. 우리나라에 노숙인 고용촉진법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것들은 기대할 수도 없죠. 비랑씨, 주소지가 있어야 우리나라 국민이라는 것 아세요? 주소지가 일정치 않으면 의료ㆍ금융ㆍ정부혜택 등을 누릴 수 없어요. 단적인 예로는 사기를 당해도 경찰에 신고를 못합니다. 그러니 취업이 힘들 수밖에 없고, 착취를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는 것이죠. 이러다보니 사람들이 외면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심신에 문제가 있다고 보이니 회사에서 '정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임금이 체불돼도 경찰에 신고도 못하는데, 홈리스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비랑이 : 아, 그렇군요. 거기 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근데 저번에 <빅이슈> 살 때 보니까, '홈리스들의 자립을 돕는'이라는 말을 쓰던데요. 여기서 말하는 자립이란 무엇인가요?

 

박효진 : 자립이요? 홈리스의 자립은 사회적응 그리고 직업훈련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 중에서 단연 전제돼야할 것은 사회적응의 단계겠지요. 이 사회적 적응의 단계를 지원하는 것이 바로 <빅이슈>입니다. 빅판은 <빅이슈>를 판매함으로서 시민들과 소통 하게 됩니다. 또한 빅판들은 구걸이 아닌 '노동'을 함으로서 당당하게 자신만의 수입을 창출해 나가면서 저축도 해 나갑니다. 그러면 그들은 빅이슈코리아가 소개해 준 고시원에 살다가, 일정 액수 이상 저축하게 되면 임대주택에 입주를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빅판들은 실질적인 자립의 과정을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나간다는 것이죠.

 

비랑이 : 빅판에게 있어 <빅이슈> 판매는 자립, 그 자체겠네요?

박효진 : 아니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빅이슈코리아는 <빅이슈> 판매라는 노동을 통해서 자립의 첫걸음만 함께 하는 것이지, 그 이후의 것들은 빅판들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홈리스 한 분이 빅이슈코리아 사무실에 왔다고 칩시다. 저희는 그저 <빅이슈> 10권을 드려 종잣돈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뿐입니다. 아까 고시원 이야기를 했었죠? 빅이슈코리아는 첫 달 고시원 비만 지급합니다. 둘째 달부터는 빅판 스스로 고시원비를 마련해야 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홈리스 출신 빅판의 스스로 자립하려는 의지, 바로 그것입니다. 결국 빅판들은 이 과정을 통해 사회와의 소통을 연습하고 희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비랑이 :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럼 빅판들과 함께 하는 빅돔에게 주어진 역할도 뭔가 특별할 것 같은데요?

 

박효진 : 그렇습니다. 빅돔을 단순한 호기심이나 홈리스들에 대한 동정 때문에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다른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낫겠죠. 빅돔은 빅판과 소통하고 빅판의 이웃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빅판에게 용기를 주고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주는 그런 존재, 그것이 바로 빅돔입니다. 비랑 씨는 빅판의 벗, 빅돔이 될 준비가 됐나요?

 

비랑이 : 네!! 물론이죠! 빅판 신청은 다음 카페(http://cafe.daum.net/2bi)에서 하면 되는 거죠?

 

박효진 : 네! 그렇습니다. 희망장소와 시간대를 정해서 신청해주시면 제가 연락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비랑 씨, 이제 홈리스들에 대한 편견이 좀 깨졌지요? 오늘 수다회,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다회가 끝난 후, 한결 희망찬 발걸음과 함께 집으로 향하는 강민구(20)씨를 만났다. 그는 "오늘 교육 덕분에 홈리스들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며 "친구와 함께 다시 와서 빅돔 교육을 한 번 더 받고 빅돔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홈리스들의 자립에 있어 빅판이 빛이라면, 그들의 자립에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발 맞춰 나가는 빅돔은 소금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은 특정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이웃들이 서로 소통하고 함께할 때 이뤄지는 것이라 믿고 있다"는 한 참가자의 목소리는 결코 번지수가 틀린 견해는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웹진 <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bonzine.tistory.com)


태그:#빅이슈, #빅이슈판매원, #빅이슈판매도우미, #홈리스, #편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