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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활짝 꽃자랑을 합니다. 봄꽃이 올라오는 때에 맞춰 학교 뒤편에 있는 산을 종종 산책하곤 합니다. 산책을 하고 싶을 땐 혼자 갑니다. 여럿이 가면 이야기에 마음이 팔려 주변을 둘러보는 데 소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산책은 목적이 없는 걷깁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며 해찰도 하며 걷는 게 산책입니다. 걷다가 되돌아와도 괜찮고 주저앉아 풀꽃이나 벌레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무방하죠.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목적을 두고 생활합니다. 그런 생활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잠시만 비껴 서서 보면 목표란 것은, 목적이란 것은 늘 경쟁을 끌어안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경쟁이란 뭘까요.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 다투고 싸우는 것이 경쟁입니다. 무조건 이기기 위해 달리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성과라는 그물을 쳐놓고 목표 지점을 정해 놓습니다. 그리고 목표 지점까지 빨리 도달하는 자에게 보상을 줍니다. 일종의 떡밥과 같은 것이죠. 그런데 결국 그 떡밥은 또 다른 형태의 그물이 되어 우리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달려듭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 때문이든, 타인에 의해서든 목표를 향해 달립니다. 남보다 더 빨리 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쏟아 붓습니다. 간혹 반칙도 일삼습니다. 다른 이보다 빨리 가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것은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실제로는 좀 느리게 갈 뿐인데 패배라고 단정하게 됩니다. 사회가, 언론이, 지식인들이 그렇게 몰아붙입니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빨리 가기 위해 달리기만 하죠. 그런 사회에서 아이들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대열에 너도 나도 매이다보면 숨이 막혀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카이스트에서 학생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도 결국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경쟁 때문이라 봅니다. 앞뒤 돌아볼 틈도 주지 않고 성적을 매기는 현실 속에서 1등만 해왔던 이들은 어쩌면 심리적 박탈감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1등을 해왔던 이들에게 경쟁은 남의 일처럼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위협적인 경쟁 상대가 거의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카이스트란 공간에 들어가면서, 또 여기에 무한 경쟁을 대학에서 도입하면서 이들은 처음으로 정글에서 밀려 나가거나 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준비가 안 된 이들에게 이는 커다란 압박이 되었을 거고요.

 

카이스트 학생들 뿐만이 아닙니다. 해마다 200명이 넘는 이 나라의 젊은 대학생들이 자살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희망과 온기가 없는 현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원하는 일류대학에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졸업 후의 진로는 더욱 어둠인 현실. 거기에다 살인적인 등록금.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이나 어려운 취업. 그 취업을 위해 한 눈 팔기도 힘든 대학생활. 수많은 대학생들이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도서관 앞에서 줄을 서 있던 한 신문기사의 사진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만 가려고 합니다. 라면 한 봉 끓여 먹어치우듯 성적도 금방 올라야 하고, 돈도 로또에 당첨되듯 후다닥 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왠지 불안합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경쟁의 내면엔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고. 사람들은 불안하지 않기 위해,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빨리빨리 성과를 내려고 한다고요.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조장하고 이용하고요.

 

2010년, 전 그 '후다닥'에 쫒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둔 고3 아이들을 맡으면서 늘 성급함에 쫒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아이들과 대화의 시작과 끝은 늘 성적이었습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너의 가장 큰 문제는 ○○때문이다. 이렇게 학습 계획 세우고 공부해 보자.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새 무언가에 쫒기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보다 내 자신의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화를 내는 빈도도 늘었습니다. 조금만 흐트러진 모습만 봐도 일부러 화를 내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늘 아이들을 꽁꽁 잡아 매어두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늘 후회를 하곤 했습니다. 아이들과 좀 더 폭넓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한 가지 이야기에만 얽매여 있는 모습에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지곤 했습니다. 늘 긴장하면서 아이들과 대립하는 생활이 모두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학년을 맡은 후, 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요즘 자주 '한 발자국만 느리게 가면 화를 내지 않는다'라는 말을 생각하고 실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화를 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빨리 성과를 기대하는 심리도 한 몫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성과라는 게 빨리빨리 재촉한다고, 윽박지른다고 얻어지는 건 아닙니다. 조용히, 부드럽게 이야기해도 감성을 자극하면 훨씬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오늘도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걸어봅니다. 느릿느릿, 느그적거리며 걸어봅니다. 아이들이 떠난 빈 교실도 둘러봅니다. 아이들이 없는 빈 교실은 경쟁을 신앙처럼 부추기는 우리들의 모습을 잠시 감춰줍니다. 대신 웃고 떠들며 왁자지껄하는 소리만이 벚꽃처럼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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