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SH임대아파트의 주거비 인상 반대 결의대회를 하고있다.
▲ 서울시 SH임대아파트 주거비 인상 철회를 위한 결의대회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SH임대아파트의 주거비 인상 반대 결의대회를 하고있다.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용산 '남일당'의 망루 위에서 여섯 명의 목숨이 불타 사라지고, 두 번의 겨울이 지났다. 금세 봄이 다시 왔고, 덕수궁 돌담길에는 황사 먼지가 내려앉았다. 상도동 철거민들에게도, 수만 가구 임대아파트 주민들에게도 봄은 왔다. 봄은 이들에게 잔인한 소식을 안고 찾아왔다.

29일 오후 2시, 서울시청 앞에는 주름이 깊게 파인 노인들 200여 명이 자리를 깔고 앉았다. 지난 20년간 뉴타운, 재개발 광풍이 불 때마다 살던 곳에서 쫓겨나 임대아파트에 정착한 이들이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서울시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오세훈 시장이 강남시장이냐, 오 시장이 대선에 나간다면, 낙선운동이라도 불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는 SH재개발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임대아파트 세입자들에게 '임대보증금, 임대료 인상 및 전세전환 이율 변경 확정 안내'라는 공문을 보냈다. 서울시와 SH공사는 2011년 7월 이후 재계약하는 모든 세대에 대해 임대료 및 임대보증금을 각각 5%씩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2011년 5월 2일 이후 월세에서 전세전환을 요구하는 가구에 전세전환요율을 현행 0.95%에서 0.67%로 조정하여, 재개발임대아파트의 전세금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SH재개발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입주자들의 평균전세금이 약 1000만 원으로30.9%가량 인상될 예정이다.

마이너스 700만 원, 임대아파트 주민의 분노

변아무개(55)씨는 뉴타운 개발정책으로 인해 살던 곳에서 쫓겨나, 전농동 임대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10평 남짓한 아파트에서 당뇨에 걸린 남편과 자식 둘과 함께 산다. 변씨 가족은 남편이 당뇨로 생계를 책임지지 못해 빚을 지며 살고 있다. SH공사의 인상안이 통과하면 이들은 다시 거리로 쫓겨나게 된다.

변씨는 "여기에 전세금 인상분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한테 한 번 상의도 없이, 천만 원을 올리는 오세훈 시장에게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오 시장이 우리를 또 길거리로 쫓아내려 한다, 우리가 왜 SH공사의 빛을 대신 갚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서민들을 위해서 일하라고 뽑아놨더니 돈 없는 우리한테 SH공사 빚이나 갚으라고 한다"며 "있는 사람들은 가난이 얼마나 뼈아픈지 모른다, 앞으로 서울시장은 집 없는 사람으로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아파트 입주민인 김아무개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마이너스 통장. 마이너스 700만원이 찍혀있는 통장이다.
▲ 임대아파트 주민의 마이너스 통장 임대아파트 입주민인 김아무개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마이너스 통장. 마이너스 700만원이 찍혀있는 통장이다.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집회에 참석한 다른 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기자가 '종잣돈이라도 있느냐'고 묻자 옆에서 지켜보던 김아무개씨는 730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보여줬다. 김씨는 "뇌경색에 걸려서 일도 못 한다, 병원비로 빚만 계속 늘어나는데, 전세금을 올려달라니 죽으란 소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SH공사는 서울시의 택지개발 및 서울시민의 주거안정을 목적으로 1989년 설립한 서울특별시 산하 공기업이다.

서울시의 각종 개발공사를 도맡아서 시행한 SH공사의 부채는 현재 12조 7516억 원으로 서울시 공기업들 가운데 가장 많다.  

SH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은 방만한 기업운영을 통해 진 빚을 입주자들의 전세금을 올려 메우려고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입주민들은 지난 19일 임대아파트 임대료·보증금 인상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꾸리고, '불복종 선언'을 하고 나섰다.

서울시·SH공사, 임대아파트 주민 경제 현실 몰라

집회에 참가한 '주거비 인상 철회'를 요구하는 발언을 하고있다.
▲ 발언을 하고있는 입주민 집회에 참가한 '주거비 인상 철회'를 요구하는 발언을 하고있다.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SH공사의 '임대보증금 및 임대료 인상안'은 임대아파트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소득분위 하위계층 속하는 입주민들의 경제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날 공대위가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임대주택에 사는 60%의 세입자가 일용직 노동을 하는 불안정 고용상태에 놓여있으며, 90% 이상이 월 소득 150만 원 이하의 빈곤계층이다. 현재 50% 넘는 가구가 임대료와 관리비를 제때 납부하지 못한다"고 나와 있다.

계약이 만료되는 2012년 3월 이후에는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SH공사와 재계약을 하지 못해 쫓겨날 것으로 보인다. 

민병덕 참여연대 변호사는 이번 'SH공사의 임대아파트 인상안'은 임대아파트의 공공성을 현저하게 훼손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임 변호사는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이번 시행안은 절차와 과정이 생략됐다"며 "5만 가구를 갖고 있는 집주인이 임차인 동의 없이 계약서를 다시 쓴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 임 변호사는 "전세전환이율을 현행 9.5%에서 6.7%로 내렸기 때문에 입주민들은 보증금 인상분 5%와 전세전환이율에 따른 인상분까지 내야한다"며 "이중부담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행 임대차보호법상 보증금은 전세전환이율 / 월세이다. 전세전환이율이 낮아질수록, 보증금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행안대로 적용되면, 입주자들은 ▲ 현행 임대보증금 5% 인상 ▲ 월 임대료 인상분 5% ▲ 전세전환이율이 낮아짐에 따라 보증금이 인상되는 '3중고'를 겪어야 한다. 임 변호사는 가구당 1000만 원 가량 증액된 보증금을 입주민들이 내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이 주거비 인상을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열고있다.
▲ 서울시 SH임대아파트 주거비 인상 철회를 위한 결의대회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이 주거비 인상을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열고있다.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의 잔인한 '봄'

'전셋값 폭등'의 여파는 도시빈민인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에게 먼저 찾아왔다. 나무에 기댄 어느 할머니는 집회 내내 "억울합니다"라고 연신 말했다. 한 평생 가난 속에 살아온, 할머니의 가늘고 긴 외침이었다.

집회가 이어지는 내내 할머니들은 몸이 불편한지 연신 자세를 바꾸고, 다리를 주물렀다. 이들이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나 시청 앞 아스팔트 바닥이나 불편하긴 매한가지였다. 서울시 어디에도 이들을 위한 '땅'은 없었다.

봄과 함께 찾아온 '임대보증금 인상안'에 입주민들은 다시 쫓겨날 신세로 전락했다. 10평 남짓한 임대아파트를 떠나면, 이들은 다시 어디로 갈지 막막하다. 서울의 '봄'은 무주택자에게 유난히 잔인하다.


태그:#임대아파트 , #철거민, #오세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