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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11일 낮 12시 37분]

전남 함평의 귀농 5년차 농부 박진선씨는 올해 세 살배기 아들의 돌반지를 팔기로 했다.  당장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를 다시 세워올려야 했고, 농사철을 코앞에 두고 들어가야 할 돈이 이만저만이 아닌 터였다. 한 돈짜리 금반지 하나를 팔아 손에 쥔 돈은 19만 원. 금값이 많이 올라 시세가 좋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박씨는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돈으로는 그가 주력으로 재배하는 파프리카 씨앗을 한 줌도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값보다 씨값이 더 나가는 시대다. 현재 금의 실거래가는 1g당 5만 원선. 반면 신품종이라는 파프리카 종자의 경우 1g당 11만7000원, 토마토 종자도 12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새로운 품종이 나타날 때마다 치솟는 종자 가격에 농사짓는 이로서는 시작부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지만, 종자회사로서는 바닥나지 않는 금광을 채굴하듯이 고부가가치 미래사업의 승자가 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종자연맹(International Seed Federation)에 따르면 2010년 세계 농작물 종자시장의 규모는 약 420억 달러. 매년 4.3% 정도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바이오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유전자조작 작물 재배가 증가되고, 자기 밭에서 씨를 받거나 재래종을 이용하던 나라에서도 교배종을 구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상업용 종자시장의 성장은 더욱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적게는 2배, 많게는 수십 배까지 비싼 종자라 하더라도 병충해가 덜하고 상품성 좋은 작물을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다면 기꺼이 종자회사로부터 씨앗을 사서 심겠다는 농부가 전 세계에 수억 명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자사업의 가능성은 미국, 스위스, 프랑스, 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서 먼저 발견하고 산업화에 앞서나갔다. 이에 대한 결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종자 시장은 매출 상위 10대 기업이 70%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면서 독과점체제로 완전히 재편됐다. 이들 종자회사들은 품종보호권이라는 특허를 내세워 한 종자에 대해 최소 20년 이상의 배타적 권리를 행사한다.

회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종자도 있었지만 자국을 포함해 멕시코, 중국,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채집한 재래종자를 그대로, 또는 변형해 품종보호권을 먼저 등록하면 그 회사의 소유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자가 채종을 하거나 다양한 종자회사의 종자를 골라서 심을 수 있었던 농부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이들 회사의 씨앗을 뿌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하게 된 것이다.


초대형 초국적기업이 세계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첨단 생명공학을 앞세운 유전자조작 종자의 개발과 보급 확산, 발빠른 법률시스템의 활용도 있었지만, 국경을 넘나들며 무서운 기세로 다른 종자회사들을 집어삼키는 인수합병 전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글로벌 종자회사들은 이와 같은 무차별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인수한 기업의 유전자원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고, 동시에 그 나라의 종자시장도 장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10년 가까이 소요되는 종자 연구·개발과정을 생략해 비용을 혁신적으로 절감할 수 있으며, 독과점을 통해 기존 상품의 수명을 극대화하고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지위까지 얻게 됐다.

다국적기업의 먹이가 된 국내 종자회사들 

김치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은 무, 배추, 고추 등에서 상당한 육종기술을 갖추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사업을 확장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은 얼마가지 않아 국가적 차원의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금세 사그라지고 만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당시 매출액 1~3위의 국내 종자기업들은 세미니스, 노바티스와 같은 글로벌기업들에 팔려나갔다. IMF는 이들 글로벌 종자기업의 한국 진출로 종자의 품질향상은 물론 선진 경영기법이 도입되어 종자산업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며 한국 정부로 하여금 이 같은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도록 했다.

외환위기를 맞아 IMF의 관리가 시작되면서 국내 유수의 종자 회사들이 해외로 팔려나갔다.
 외환위기를 맞아 IMF의 관리가 시작되면서 국내 유수의 종자 회사들이 해외로 팔려나갔다.

그러나 해외 종자기업이 한국에 진출한 지 13년이 흐른 지금 업계의 평가는 냉정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시장에서 무 종자는 한국산이 한때 70%를 차지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었지만, 토종 유전자원이 해외로 유출되면서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현재는 1980년대에 비해 가격이 5배 하락하는 결과를 맞게 됐다.

일부 채소 종자기술은 한국이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다국적기업의 진출로 현재는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기술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또한 이들 글로벌기업들은 지속적으로 구조조정과 사업집중화를 실시하면서 아시아 거점을 중국, 인도로 재편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한국 내에서는 연구개발 예산과 인력이 점차 축소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우수한 품종을 국내에서 개발하겠다던 글로벌 종자 회사들은 한국 내 연구 인력을 축소 중에 있다.
 우수한 품종을 국내에서 개발하겠다던 글로벌 종자 회사들은 한국 내 연구 인력을 축소 중에 있다.

종자회사의 국적이 어떻든 실수요자인 농부로서는 매년 지불해야 할 종자비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특히 한국은 2002년 뒤늦게 국제신품종보호연맹(UPOV)에 가입하면서 식물품종 육성자의 권리를 가맹국 간에 보장한다는 원칙에 따라 2012년부터 거래되는 모든 농작물 종자에 대해서 특허권자에게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외국품종의 점유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로열티 대응에 대해서는 방어적인 입장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은 한국의 실정을 일찌감치 간파하여 한국에서 자국의 딸기 종자를 일찌감치 등록하고 매년 등록비를 지출해 왔는데, 한국이 국제신품종보호연맹에 가입하자 뒤이어 이들 딸기 종자에 대해 로열티 60억 원을 요구해왔다.

정당한 단계를 거쳐 연구·개발된 품종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해주는 제도는 지켜져야 하겠지만, 엄격한 품종보호만을 앞세운 종자관리는 농민에게 충격이다.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길러오던 작물에 대해 난데없이 외국회사들이 특허를 앞세워 로열티를 청구하는 일은 향후 더욱 늘어나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신품종연맹(UPOV) 가입 이후 일반 농부가 지불해야할 로열티 액수가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국제신품종연맹(UPOV) 가입 이후 일반 농부가 지불해야할 로열티 액수가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로열티가 순식간에 늘어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국제신품종보호연맹에 가입하면서 로열티 지급 대상의 작물이 늘어나게 된 점도 있지만, 신품종의 경우 소비자의 반응이 좋으면 특허권자가 로열티를 인상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영향으로 한국의 농부들은 팽이버섯 포자를 이용하는 조건으로 올해만 4억 원 가량을 지급해야하고, 참다래도 매년 20억 원 가량을 뉴질랜드에 지불하고 있으며, 장미나 국화와 같은 화훼류도 네덜란드 등지의 종자회사에 수십 억원을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자가 온전히 농부들의 것이던 시대가 이제 완전히 막을 내린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계간 <살림이야기(www.salimstory.net)> 2011년 봄호에 실린 '종자전쟁이 치열하다' 기사를 재구성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종자, #살림이야기, #한살림, #몬산토, #로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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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민이자, 지구인으로서 잘 사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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