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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세연정
 보길도 세연정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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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이면 어린이날 주위로 휴가를 낼 수 있어 여행을 떠나곤 했다. 금년에는 부처님 오신 날이 10일에 들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전라도 땅끝 주변의 문화유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월출산을 지나 해남의 달마산 미황사를 본 다음, 땅끝으로 가 보길도로 들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다음날 보길도를 보고 다시 땅끝으로 나와 진도로 찾아갈 예정이다.

아내와 나는 지난해 5월 남도여행을 한 번 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월출산 주변의 문화유산, 해남의 녹우당과 대흥사, 강진의 백련사와 다산초당 등을 찾았다. 그리고 완도로 들어가 장보고 유적과 청산도를 찾아보았다. 그때도 역시 문화유산 탐방이 주였고, 청산도의 자연유산이 부였다. 이번 답사도 역시 해남, 보길도, 진도의 문화유산을 주로 볼 것이다. 그런데 보길도는 문화유산 외에 자연경관이 멋지다고 해서 해변지역을 찾아보려고 한다.

원래는 7일 아침 일찍 출발해 월출산의 월남사지와 무위사를 보고 해남까지 가려고 했다. 그런데 7일 오전 마을조사 책자 발간과 관련해 현장을 방문할 일이 생겨,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45분에나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월남사지와 무위사 방문은 틀렸고, 해남까지 가는 정도로 첫날 일정을 조정했다. 중간에 벌곡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내리달리니 저녁 7시 30분쯤 영산포에 닿는다.

홍어애
 홍어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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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곳의 명물 홍어를 먹으러 '영산홍가'로 들어갔다. 이곳은 홍어요리 전문점으로 영산포에서 유명한 집이다. 홍어전문 가공업체인 '영산홍어(주)'를 운영하고 있어 다양하고 질 좋은 홍어를 항상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홍어정식을 시켰다. 홍어정식은 원산지에 따라 세 가지로 구별된다. 흑산도산이 제일 비싸고, 국산이 두 번째이며, 외국산이 세 번째이다. 영산포 홍어가 유명해진 것은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이곳 영산포에서 숙성되면서 부터다.

먼저 홍어껍데기로 만든 튀김과 홍어전이 나온다. 이들 맛을 보고 나자 이번에는 홍어애와 코가 나온다. 홍어애는 홍어의 간(肝)으로 생으로 먹는 게 좋다고 한다. 특히 요즘 건강에 좋다는 DHA, EPA 성분이 많다고 해서 특별하게 여겨진다.

소고기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집에 가면 간과 양 그리고 골처럼 아주 특별한 음식으로 취급된다. 홍어애를 소금과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에 찍어 맛을 본다. 처음에는 쌉싸레하더니 뒷맛이 조금은 달게 느껴진다. 먹을 만하다. 그렇지만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 두 점 정도 밖에는 못 먹겠다.

홍어 삼합, 찜, 무침
 홍어 삼합, 찜, 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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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다 홍어삼합과 찜 그리고 무침이 나온다. 찜과 무침에서는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적어 먹기가 좋다. 그래도 홍어하면 삼합이 가장 유명하고 가끔 먹어보아서인지 돼지고기와 묵은지에 싸 대여섯 점 정도 먹는다. 묵은지도 2년, 4년, 6년 된 세 가지가 있다. 도대체 어떻게 숙성하길래 6년 동안이나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저녁을 먹으면서 보니 이집은 분위기도 괜찮고 외지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많은 편이다. 옆에는 부산에서 찾아온 친구 일행 여럿이 우리처럼 홍어요리를 즐기고 있다. 그런 걸 보면 홍어요리가 이곳 전라도, 좁게는 영산포 특선요리임이 분명하다.

조금 있다 밥과 일곱 가지 반찬 그리고 홍어애국이 나온다. 애국은 된장에 홍어애와 묵은지를 넣고 위에 부추를 얹은 다음 끓인다. 끓은 다음 밥과 함께 맛을 보니 새우맛도 느껴지고 게맛도 느껴진다. 나는 아내에게 '홍어가 게나 새우를 잡아먹고 사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을 건넨다. 아내도 맛을 보더니 괜찮다고 한다. 반찬도 정갈해서 우리는 애국과 함께 밥을 다 먹는다. 영산포에 와서 제대로 된 홍어요리를 먹어본 셈이다.    

달마산 미황사 찾아가는 길

달마산 주변 지도
 달마산 주변 지도
ⓒ eif2002@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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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읍내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니 식사하기가 마땅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중심가에 있는 빵집에 들러 소시지가 들어간 빵과 페이스트리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시골이라 그런지 공간도 넓고 의자도 여럿 있다. 요즘은 빵집에서 바로바로 빵을 만들기 때문에 빵이 신선하고 맛도 좋다. 후식으로 생과일 주스와 커피를 마시고 우리는 미황사로 향했다.

미황사는 13번 국도를 타고 완도방향으로 가다 현산면에서 지방도를 따라 서정리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표지판이 부실해 사거리에서 한두 번 주춤거리려야 했다. 아직도 내비게이션이 없이 지도로 목적지를 찾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 여행을 생각하면 내비게이션을 장만할 때도 되었지만, 계속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안내 멘트가 싫어서 지금까지 구입을 늦추는 측면도 있다.

달마산
 달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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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송리를 지나니 왼쪽으로 달마산 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사실 미황사는 달마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 멋이 배가 되는 측면이 있다. 멀리서 보아도 달마산은 작은 금강산이라 할 수 있다. 깎아지른 바위들이 총석정 같기도 하고 내금강의 기암괴석 같기도 하다. 서정리 삼거리에서 미황사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하니 미황사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저수지를 끼고 달마산을 바라보며 산길을 올라가니 미황사 주차장이 나온다. 날씨가 좋은 편이다.

우리는 미황사를 보고 달마산을 오를 요량으로 물과 간식을 준비했다.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자하루가 나타난다. 이곳을 통과해야 절집으로 들어설 수 있다. 자하루 누각을 지나 계단에 오른 다음 누각을 되돌아보니 만세루라는 현판이 보인다. 한 건물을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각 2층을 들여다보니 부처님 오신 날에 달 연등이 하나 가득하다.   

사월초파일 준비로 바쁜 사람들

사월초파일을 준비하는 미황사
 사월초파일을 준비하는 미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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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이틀 후면 4월 초파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웅보전 앞마당에 연등을 달기 위한 막대기둥과 줄을 설치해 놓았다. 나는 종무소로 가서 연등을 하나 접수한다. 종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니 초파일 준비로 바쁜 것 같다. 스님들은 기도와 염불에 몰두하고, 행정직원들은 행사준비로 바쁘고, 보살들은 음식준비로 각자 소임을 다하고 있다. 불교 최대의 명절이니 그렇게 하지 않고는 행사가 제대로 치러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황사 모란
 미황사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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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무소에서 나는 대웅보전 앞마당을 지나 미황사의 중심전각 대웅보전으로 올라갔다. 계단 좌우의 꽃밭에 보니 영산홍과 모란, 수선화와 매발톱, 꽃잔디 등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그중 모란꽃이 절정이다. 향기도 좋고 꽃도 실하고 정말 5월의 꽃답다. 이 아름다운 꽃을 통해 김영랑 시인은 '봄을 여읜 설움'과 '찬란한 슬픔의 봄'을 노래하고 있다. 나는 오히려 '찬란한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말이다.
   
대웅전에 올라 안을 들여다보니 예불을 드리면서 절을 하는 두 분 스님과 신도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스님들의 모습이 너무 진지하고 경건해서 전각 안으로 들어가기가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대웅보전 밖을 한 바퀴 돌면서 외관을 살펴본다. 우선 건물에 단청이 없어 고졸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주춧돌을 살펴보니 연꽃과 게 그리고 거북 조각을 찾았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나는 미황사 사적비와 절에서 발행한 자료 그리고 문화관광해설사를 통해 그 연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미황사 창건 이야기

우전국 탱화의 영향을 받은 천불벽화
 우전국 탱화의 영향을 받은 천불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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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 민암 장유(張孺)가 쓴 미황사 사적비문에 보면, 기이한 미황사 창건이야기가 나온다. 이곳에 제시되는 연대에는 약간 혼란이 있고 내용도 상당히 환상적이어서 후대에 만든 스토리텔링이 틀림없지만, 남아있는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이어서 이것을 인용할 수 밖에 없다.

이야기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미황사가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오래된 절이다. 둘째, 인도와 중국 중간쯤 있는 우전국으로부터 전래된 불경과 탱화를 안치한 곳이다. 셋째, 소의 소리와 금인의 색에서 한자씩 따 미황사라는 절 이름이 생겼다.

미황사 대웅보전
 미황사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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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개원 13년(乙丑, 725) 신라 경덕왕 8년(749) 8월12일, 홀연 돌로 만든 배(石船) 한 척이 산 아래 사자포구에 와서 정박하였다. 하늘에서 들리는 음악인 듯 범패 소리가 배 안에서 계속 들려오기에 어부들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려고 하자 배가 문득 멀어져 버렸다.
의조화상이 이 소문을 듣고 그곳을 찾아가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기도를 하니 돌배가 해안으로 다가왔다. 의조화상 일행이 배로 다가가니 황금옷을 입은 사람(金人) 하나가 자물쇠 달린 금함(金函)을 열어 보인다. 그 안에는 금으로 쓴 화엄경과 법화경, 비로자나불과 16나한 등을 그린 탱화, 금가락지(金環)와 검은 돌(黑石)이 들어 있었다.

여러 사람이 경전을 가지고 해안으로 내려와서 바야흐로 봉안할 곳을 의논하고 있는데 검은 돌이 부서지면서 청흑색의 암소(牸牛) 한 마리가 나오더니 갑자기 훌쩍 커졌다. 그날 밤 황금옷을 입은 사람이 화상의 꿈에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우전국(于闐國: 호탄)의 왕인데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경전과 탱화 안치할 곳을 구하던 중 달마산 꼭대기에 일만 분의 부처님 상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곳을 찾아 왔노라. 그대가 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보면 소가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을 터이니 그곳이 곧 경전을 안치할 만한 장소라."

다음 날 화상이 소에 경전을 싣고 가자니 소가 처음 한 곳 땅에서 누웠다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산골짝에 이르러 다시 누워 '아름답다'고 소리치고는 숨을 거두었다. 처음 누웠던 땅에 절을 세우니 지금의 통교사이고, 나중 누웠던 골짜기에 또 하나의 절을 세우고 경전과 탱화를 안치하고는 미황사(美黃寺)라 불렀다. 미는 소의 소리(牛之聲)에서 취한 글자요, 황은 금인의 색(人之色)에서 취한 것이니 기이하고 이상한 일이다.

대웅보전 주춧돌의 거북이와 게 조각
 대웅보전 주춧돌의 거북이와 게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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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황사 대웅보전에는 창건설화를 증명하는 두 가지 증거가 있다. 하나는 대웅보전의 주춧돌에 새겨진 거북이와 게 조각이고, 다른 하나는 대웅보전 안의 천불벽화다. 거북이와 게는 바다에 사는 생물로, 이들이 돌배를 타고 함께 왔음을 증거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대웅보전 안에 그려진 천불벽화는 인도의 아잔타 석굴과 중국 둔황의 막고굴 벽화와 같은 양식을 보여준다. 이것 역시 미황사가 인도, 중국불교와 직접 연결됨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덧붙이는 글 | 5월 7일부터 10일까지 해남, 보길도, 진도를 여행했다. 이 지역의 문화유산, 자연과 사람을 중심으로 12회 정도 여행기를 쓸 예정이다.



태그:#남도여행, #미황사, #달마산, #대웅보전, #영산포 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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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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