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마디로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다. 북한이 6월 1일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을 "까밝힌" 내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천안호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하여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으니 제발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가지자", "제발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세상에 내놓자," "돈봉투까지 꺼리낌없이 내놓고 그 누구를 유혹하려고 꾀하다가 망신을 당하였다" 등등.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6월 하순 판문점에서, 8월에는 평양에서, 그리고 2차 핵안보 정상회의가 예정된 내년 3월에는 서울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비밀접촉'은 이명박 정부도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정상회담 논의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일단 'MB 프로세스'라는 이름을 붙여볼 만한 시도였다.

그러나 북한이 대단히 이례적으로 '비밀접촉' 내용을, 그것도 회담 참가자들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이명박 정부와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해, 'MB 프로세스'는 시작도 되기 전에 큰 망신을 당하고 끝날 공산이 커졌다.

즉흥적이고 일방적이며 이중적이고 정치적이기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북한이 비밀접촉의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공개하면서 이명박 정부를 맹비난한 것은 분명 상식 밖의 일이다. 북한의 주장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일과 관련해 MB 정부의 즉흥적이고, 일방적이며, 이중적이고, 정치적인 대북 접근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MB 정부의 정상회담 추진 방식부터가 너무나도 '즉흥적'이다. 집권 이후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해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는 MB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그것도 1년 내에 세 차례나 성사시키고자 했다면, 대단히 치밀하고도 전략적으로 접근했어도 될까 말까 한 일이었다.

그러나 MB 정부는 이를 위한 어떠한 사전 정지 작업, 특히 남북한 사이에 금이 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북한의 식량 지원 요구를 폄훼하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움직임에 제동을 걸려고 했던 것이나, 예비군 사격훈련장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의 사진이 사격 표적지로 사용된 것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로 MB 정부의 방식은 '일방적'이다. MB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을 꾀하려고 했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통해 제안한 조건 없는 남북정상회담에 신중하게 대처했어야 했다. 그러나 MB 정부는 북한의 제안이 진정성이 없다고 일축했고, 카터의 방북도 폄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선 '핵을 포기하면 핵 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을 초대하겠다'는 일방적인 제의를 내놓았다. 북한의 제의는 일축해놓고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카드를 가지고 접촉을 시도한 셈이다. '외교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조차도 망각한 접근법이 아닐 수 없다.

셋째로 '이중적'이다. MB 정부는 공개적으로는 북한의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사과 및 비핵화 조치를 남북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처럼 제시하는 등 '비타협적인' 자세를 고수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비밀접촉에서는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여러 가지 꼼수를 부렸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과 북한 사이에서, 그리고 공개와 비공개 사이에서 '이중 행보'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유례없는 망신을 자초한 가장 중대한 요인으로 MB 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레임덕이 가속화되는 MB 정부로서는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통해 국면 전환을 노렸을 것이다. 특히 'MB 프로세스'의 마무리라 할 수 있는 내년 3월 핵 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을 초청하는 카드는 4월 2일 총선을 의식해 나온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MB 정부가 이러한 정치적 의도가 깔린 접근에 북한이 호응해줄 것이라고 믿었다면 그건 너무나도 순진한 발상이다. 오히려 북한은 비밀접촉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MB 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맹비난했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남북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말해놓고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무리수를 둔 것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왕따 당하는 'MB 외교'

지난 1월 20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미중 정상 기자회견을 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1월 20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미중 정상 기자회견을 열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더욱 우려되는 것은 후폭풍이다. 이미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던 남북관계는 이번 파문으로 적어도 MB 정부 임기 내에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인다. 남북 양측이 베이징 비밀접촉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이를 정치 비난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남북관계가 마지노선을 넘은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이념 성향을 떠나 국민들의 MB 정부에 대한 불신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보수층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일 것이다.

MB 정부가 북미 대화와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은 반대하면서 비밀접촉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탄탄대로를 걸어 온 한미 관계마저 흔들 것이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최근 MB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온 터였기 때문이다.

6자회담의 다른 참가국들도 비슷할 것이다.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동분서주해온 중국은 MB 정부의 업적 조급증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불만을 갖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중국 내에서는 6자회담을 통해 풀어야 할 북핵 문제를 MB 정부가 남북대화로 풀겠다는 비현실적인 과욕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던 터였다. 또한 MB 정부가 일본 정부의 북한 접촉 시도를 차단하면서 비밀리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것도 한일관계의 악재가 될 수 있다.

애초부터 MB의 대북정책에 기대를 갖기도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실낱같은 기대마저 접어야 할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MB 정부에 전혀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시 행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6년간 '실패한 외교'를 답습했던 부시 행정부는 '네오콘'을 물리친 이후인 2007년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네오콘이 대북정책을 주도했던 2002년에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던 부시 행정부가 2008년에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백악관에서 쫓겨난 네오콘이 청와대로 취직했다'는 비유가 나올 정도로 MB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라인은 미국 네오콘의 대북정책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따라서 MB 정부의 뒤늦은, 그러나 새로운 출발은 통일외교안보라인의 전면 쇄신이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남북정상회담, #대북정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