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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칵테일, 건강 막걸리....

근래들어 막걸리가 젊은이들을 사로 잡는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흔히 보던 막걸리를 벗어나서 복분자, 매실, 흑미 등 건강에 좋은 것을 첨가한 퓨전 막걸리도 대세다. 그간 '막걸리'하면 서민의 술 아니던가! 게다가 7,80년대 대학문화의 상징이기도 했던 막걸리, 그런 평범한 이미지를 넘어서서 이제는 막걸리로 세상을 보고 트렌드와 추억을 읽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시대가 되었다.

대구 반월당에는 '통곡하고 저주하는 선비' 라는 뜻의 막걸리 집이 있다. 가게 이름에 이런 뜻이 숨겨진 이유는 이곳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과 무관하지 않다. 유신 시절, 대학생들이 거리 데모 현장에서 형사들을 따돌리기 위해 큰 빌딩 그늘에 쏙 들어간 이 가게로 많이들 숨어들었고, 운동권 학생 아지트란 말에 형사들도 이 가게에 자주 들러서 밥을 먹었다.

대구 반월당은 유신 시절에 학생들의 가두 행진 장소로 많이 이용되었다. 행사가 끝나면 염매시장 초입의 골목으로 들어가 막걸리를 마시며 시국을 한탄했다.
▲ 막걸리 골목 대구 반월당은 유신 시절에 학생들의 가두 행진 장소로 많이 이용되었다. 행사가 끝나면 염매시장 초입의 골목으로 들어가 막걸리를 마시며 시국을 한탄했다.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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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팔순이 다 된 주인할머니에게는 학생이나 형사나 모두 고생하는 민초들이기에 밥 하나 만큼은 따숩게 지어주며 정을 베풀었다 한다. 열정이 넘치던 대학생들이 격렬한 논쟁과 토론으로 밤을 지새우고, 나중엔 곁에서 듣던 손님들도 합세해서 울분을 토로하던 곳. 격정의 한 시절을 살던 자유로운 영혼들이 우글거린 곳이 이 가게였다. 고픈 배에 막걸리를 사발로 들이 붓고 파전을 우걱우걱 씹어삼키던 청춘들은 젊음 언저리의 불확실한 감정의 고리를 시대적 상황에 들이붓기도 하고,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젓고는 막걸리 잔에 떠있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방울의 눈물로 현실을 체념해 가며 어른이 되어갔다.

두부와 콩나물 몇 가닥이 들어간 김칫국에 집에서 흔히 먹는 반찬 몇 가지가 놓여진 백반 정식 상차림. 이 가게에서는 3500원을 받는다. 지난 추억을 찾으러 오는 순님들은 아주 맛나게 먹는 메뉴 중 하나.
▲ 백반 정식 상차림 두부와 콩나물 몇 가닥이 들어간 김칫국에 집에서 흔히 먹는 반찬 몇 가지가 놓여진 백반 정식 상차림. 이 가게에서는 3500원을 받는다. 지난 추억을 찾으러 오는 순님들은 아주 맛나게 먹는 메뉴 중 하나.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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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가게도 변화 모색을 하기에 이르렀다. 지린내가 들어치던 골목, 남녀 구분없이 한명이 들어가면 꽉 들어차던 재래식 화장실은 깨끗이 정비되었다. 간판이 반쯤은 떨어져나간 가게는 단정히 정리되어 맛집이란 이름까지 달았다. 그러자 부근 가게들도 덩달아 깨끗이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새파랗던 열혈 청년들은 이젠 오십이 넘어, 교수나 사업가 혹은 인권 운동가가 되어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다. 돈 없던 학생 시절, 실컷 퍼마시고 밤새 자리 차지하다가, 집에 갈 때쯤 슬그머니 '저... 오늘은 돈이 없어서요. 이걸로 좀.." 하고 학생증을 내밀면, 할머니는 싫은 내색도 못하고 받아주었다. 그 시절 학생 손님이 3, 40년이 지난 후에 오십 장년이 되어 찾아오면 할머니는 여전히 '00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하며 등을 두드리고 집에 돌아갈 때면 문 밖 까지 배웅을 나가며 지난 추억을 되새긴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가게, 음식도 솔직히 그렇게 맛나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그런 밥과 반찬일 뿐. 예전 추억이 그리워오는 사람들, 저렴하고 싼 가격에 한 끼 하려는 노인과 주부들이 밥 혹은 막걸리와 파전을 앞에 두고 인생을 이야기하는 곳. 그래서 그들만이 공유하는 지난 시절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다.

막걸리 안주로 제격인 일명' 해물찌짐'. 경상도에서는 '부침개'를 '찌짐'이라고 부른다. '
▲ 해물 부추전 막걸리 안주로 제격인 일명' 해물찌짐'. 경상도에서는 '부침개'를 '찌짐'이라고 부른다.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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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몇 십 년을 주기로 복고와 첨단을 오가듯, 지금 새로운 먹거리 속에서도 우리의 입맛은 그 옛날 막걸리 한사발과 김치 한 보시기, 그리고 덤으로 얹어주는 한 조각의 정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건 첨단으로 무장한 트렌드세터들이 막걸리 칵테일잔을 높이 치켜드는 것과는 다른 종류로 이 시대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태그:#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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