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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밭 고랑에 자란 풀을 괭이질로 긁어낸 뒤 고추 밑줄기를 훑어줬다.
 고추밭 고랑에 자란 풀을 괭이질로 긁어낸 뒤 고추 밑줄기를 훑어줬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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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풀약을 주지..뭐하러 고생스럽게 괭이질이냐?"

평소보다 일찍 밭에 나와 고추밭 고랑창에서 쏙쏙 올라오기 시작한 풀을 괭이질로 긁어내는 것을 본 동네 아저씨가 한 말이다. 그냥 고랑에 제초제를 뿌리면 될 것을 퇴약볕에서 괜실히 괭이질을 한다고 안타까워한 것이다.

농사꾼 아들이라고 해봤자 제초제를 어떻게 뿌려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풀약까지 뿌려가며 땅을 괴롭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냥 고개 인사를 건네고 괭이를 더 바삐 움직였다. 고추모를 심어놓은 두둑을 씌운 검은 비닐이 다치지 않게, 살살 달래가면서 어린 풀들이 뿌리를 더 깊게 내리지 못하게 고랑을 긁어냈다.

그동안 촌부에게 시집와서 30년 넘게 고추농사를 지은 엄마도, 뒤따라 밭에 나와서는 "뭘 그렇게 힘들게 하냐? 대충해라' 하시면서 당신은 콩밭의 김을 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자는 늦은 오후의 따가운 해가 서쪽하늘로 시원하게 넘어갈 때까지 김매기를 했다.

괭이로 김매기를 한 흔적이 고랑에 남아있다.
 괭이로 김매기를 한 흔적이 고랑에 남아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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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을 씌웠어도 풀은 계속 자라나 풀약 대신 괭이질을 해댔다.
 비닐을 씌웠어도 풀은 계속 자라나 풀약 대신 괭이질을 해댔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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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초보 농사꾼이 쉬지 않고 바삐 움직여도, 반나절도 아니고 몇시간 만에 모두 끝낼 수는 없었고, 다음날 오후 아랫논을 보러가기 전에 다시 고추밭 괭이질을 했다.

이틀에 걸쳐 나름 깔끔히 고추밭 김매기를 끝낸 뒤에는, 엄마와 둘이서 고추 밑도 훑어주었는데 그렇게 해야 고추가 위로 자라고 열매를 알차게 맺는다고 한다.

고추나무 하나하나 쭉쭉 훑어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고추가 뿌리를 내리고 자란 뒤에 하는게 좋은데, 왜냐하면 잘못하다가는 연악한 고추 줄기가 그만 꺽여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추농사 베테랑인 엄마도 그런 실수를 2번이나 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고추가 너무 크면 밑줄기를 훑어주기도 힘이 들고, 고춧잎도 많이 나와 처리하기도 번거로워 딱 적당한 때 훑어주는게 좋다는게 엄마의 노하우다.

고추밭 김매기 보다 힘든게 고추 밑줄기 훑어주는 일이었다.
 고추밭 김매기 보다 힘든게 고추 밑줄기 훑어주는 일이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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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도 펴지 못하고 쪼그려 오리걸음으로 고추 밑줄기를 따줬다.
 허리도 펴지 못하고 쪼그려 오리걸음으로 고추 밑줄기를 따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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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훑어낸 고추 잎과 줄기는 그대로 고랑에 버리면 안되는데 이유는 고추 탄저병 때문이다. 줄기마름병 또는 동고병이라고도 부르는데, 식물 탄저병은 고추나 벼, 콩, 오이, 국화과 등의 작물과 감나무, 매화나무, 복숭아나무, 감귤나무, 사과나무 등 과수에서 각기 다른 탄저병균이 기생해 쉽게 발생할 수 있어, 훑어낸 고춧잎과 줄기는 빈 비료포대에 담아 따로 버려야 한다.

고추 탄저병 예방차원에서 말이다. 여하튼 고랑창에서 쪼그려 오리걸음을 한참해야 하는 고추 밑줄기 훑어주기도 2-3일에 걸쳐 끝낸 뒤에는, 장마전선이 올라올 꺼라는 일기예보와 정말 비가 오려는지 흐리멍텅한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서둘러 고추대에 끈을 연결했다.

고추가 자라면서 여름 장마나 태풍에 쓰러지는데, 이를 막기 위해 고추모를 심은 뒤 쇠파이프를 잘라 만든 고추대를 쇠망치를 이용해 드문드문 박아 놓았다. 그 고추대를 지지삼아 농업용 노끈(바인더끈)을 이용해 고추를 감싸도록 끝에서 끝까지 둘러가며 연결한 뒤에는, 고추 사이사이도 짧은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줬다. 바람에도 흔들리지 말라고.

그렇게 며칠간 엄마랑 둘이서 고추밭에서 괭이질에 오리걸음에 줄매달기를 하다보니, 30년 넘게 이런 일을 해온 엄마랑 이 땅의 농부들이 절로 존경스러워졌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퇴약볕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땅의 사람들 말이다.

그 땀과 정성 때문인지 그새 작은 고추가 하나둘 열렸다.

고추 줄기를 딱 잡고 살살 밑으로 줄기와 잎을 훑어주면 된다.
 고추 줄기를 딱 잡고 살살 밑으로 줄기와 잎을 훑어주면 된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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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준 고춧잎과 줄기는 따로 담아 버려야 탄저병을 예방할 수 있다.
 따준 고춧잎과 줄기는 따로 담아 버려야 탄저병을 예방할 수 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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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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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추밭, #고추, #농부, #엄마, #김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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