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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눈꽃마을 생태체험장 펜션
 대관령 눈꽃마을 생태체험장 펜션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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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눈꽃마을 생태체험장의 펜션은 조용했다. 이날 밤, 이 펜션에 묵은 사람은 나와 동생 이렇게 달랑 두 사람뿐이었다. 이 넓디넓은 공간에 여자 둘만 있다니, 무서울 것도 같은데 어째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편안하기만 하다.

확실히 산골마을의 밤은 어둠이 깊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라더니 실감이 난다. 테라스에 나와 서성이는데 멀리서 갑자기 번쩍 하는 불빛이 보인다. 이게 무슨 빛이지? 기다렸다는 듯이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뒤이어 들린다. 번개와 천둥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비가 온다고 했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비가 밤새도록 내리려나, 했더니 비는 오래 내리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비가 내렸느냐는 듯이 하늘이 말갛게 개어 있었다. 걷기 좋은 날이 분명하다. 이틀을 계속해서 걸었지만 피로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공기 좋은 곳에서는 피로가 많이 느껴지지 않고 술도 덜 취하고 빨리 깬다더니 맞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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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3일)은 대관령 바우길 3구간 눈꽃마을 오솔길을 걸을 예정이었다. 길 안내는 눈꽃마을 정호일 사무장이 해주기로 했다. 이 길, 바우길 안내지도에는 표기가 되어있으나, 아직 길이 확정되지 않았다. 예정거리는 8.8km이나,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걷는 코스는 가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길이 확실히 정해진 다음에 걷는 게 순서겠지만 이왕에 눈꽃마을에 왔으니, 살짝 맛이라도 봐야 하지 않나.

대관령 눈꽃마을 전두하 이장님
 대관령 눈꽃마을 전두하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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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아침, 눈꽃마을 체험장에서 전두하 대관령눈꽃마을(차항2리) 이장님을 만났다. 이장님은 대관령눈꽃마을의 전체 길이를 마라톤 완주구간인 42.195km에 맞춰 길을 이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직은 구상단계라 길이 언제 완전하게 이어질지는 아직 미정이나, 다른 길과 차별화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싶어 하는 길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관령 바우길 3구간 눈꽃마을 오솔길은 대관령눈꽃마을에서 조성한 마을 산책로 일부 구간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관령 눈꽃마을은 여름과 겨울, 방학기간에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찾아와 다양한 생태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마을에서 생태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일부가 마을 숲 산책로 탐방이기 때문이다(자세한 내용은 대관령 눈꽃마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날은 길 안내를 맡은 정호일 사무장과 나, 동생 이렇게 셋만 걸었다. 걸어야 하는 거리가 짧으므로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나섰는데, 마지막에 가파른 숲길을 만나 애를 먹었다.

대관령 눈꽃마을에서는 코뚜레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대관령 눈꽃마을에서는 코뚜레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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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간벌이 한창이었다. 여기저기에 잘린 통나무들이 쌓여 있었다. 덕분에 풀과 나무가 우거졌던 오솔길이 넓은 임도로 변해 있어 걷기 좋았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이 숲에도 야생화들이 무리지어 피었다. 전나무에 잣나무, 잎갈나무, 물푸레나무, 박달나무 등이 숲을 채우고 있었다. 나무에서 뿜어나오는 향기가 온 숲에 퍼져 있었고.

알 밴 가재.
 알 밴 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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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매달려 있는 '북어', 왜 매달려 있지?

숲으로 들어가니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정 사무장은 시냇물 같은 계곡으로 가더니 돌들을 뒤집으면서 바닥을 살폈다. 이곳에 가재가 산단다. 정 사무장은 몇 번 허탕을 친 뒤, 가재 한 마리를 잡아 보여준다. 알을 잔뜩 밴 가재였다. 사람에게 잡힌 가재는 버둥거리면서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물론 우리는 그 녀석을 잡아올 생각은 없었다. 그냥 모습만 살펴보고 도로 놓아주었다.

대관령 눈꽃마을 정호일 사무장
 대관령 눈꽃마을 정호일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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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사무장이 간벌을 한 나무 사이에 있는 뭔가를 가리킨다. 나무가 허리띠를 두룬 것처럼 보인다. 허리띠 아래에 길쭉한 것이 매달려 있다. 북어다.

산에서 간벌을 하기 전에 제를 지낸단다. 일을 탈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일종의 제사라고 했다. 그 때 매단 북어라는 것이다. 미신이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정성을 들이거나 조심하는 마음은 필요하리라.

대관령 바우길에서 가장 많이 만난 나무는 아무래도 잎갈나무였던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조림사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심었던 나무가 잎갈나무란다. 이 나무 덕에 우리나라 숲과 산은 푸르게 푸르게 변했지만, 이 나무가 경제성이 있는 수종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이 베어내고 있다는 게 어제(12일) 대관령 바우길 2구간을 걸으면서 최종서씨가 해준 설명이었다.

요즘은 나무를 가공하는 기술이 뛰어나 잎갈나무도 활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 정호일 사무장이 설명을 곁들여주었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족두리꽃을 보았고, 감자란 역시 많이 보았다. 깊은 산으로 들어갈수록 길은 점점 좁아지면서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길이 분명했다. 약초를 캐러 다니던 사람들이나 간간이 들렀던 길이리라. 이런 길은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서면 길을 잃기 십상이리라. 특히 나처럼 길눈이 어둔 사람은 길 찾는다고 온 숲을 헤매고도 남을 것 같다.

풀숲에 숨은 족두리꽃
 풀숲에 숨은 족두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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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넝굴을 보았고, 운지버섯도 보았다. 그리고 뻐꾸기가 끈질기게 울어댔다. 뻐꾸기 울음 사이를 비집고 새 울음소리가 길게 들려온다. 저 새 이름이 뭐지요? 동생이 정 사무장에게 물었다.

"홀딱벗고, 라고 우는 것처럼 들리지 않나요? 그래서 '홀딱벗고새'라고 하는데요."

그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몰랐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진짜 그렇게 우는 것 같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홀딱벗고새는 검은등 뻐꾸기란다. 공부를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죽은 스님들이 환생했다는 전설이 깃든 새다. 이 대목에서 스님이 홀딱 벗고 뭘 하라고? 궁금해했더니, 옷을 벗으라는 게 아니라 마음의 상념을 홀딱 벗고 공부에 정진하라는 의미란다.

숲길을 이리저리 걷고 또 걸으면서 홀딱벗고새의 홀딱벗으라는 울음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저 새가 필시 숲에 사람들이 들어와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계주의보를 내린 것일 텐데, 사람들은 새소리를 들으면서 엉뚱한 생각을 하니 필시 새가 이 사실을 안다면 킥킥거리면서 웃음보를 터뜨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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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점점 험해진다. 정 사무장은 맨 앞에서 웃자란 풀을 헤치고 나무사이에 거미가 은밀하게 쳐둔 거미줄을 쳐내면서 걸었고, 우리는 그의 뒤를 따랐다. 이 길을 다녀간 산악인들이 나무에 매단 울긋불긋한 리본들이 보인다. 리본들은 빛이 바래 있었다.

이따금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가다 우리를 건드려주었다. 이따금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도 했으나, 우리가 눈꽃마을로 돌아갈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이 마을길의 일부는 오대산 국립공원에 맞닿아 있어 길(대관령 바우길 3구간)의 거리를 늘리거나 잇기가 어렵다는 것이 정 사무장의 이야기였다. 국립공원은 대부분 출입금지가 된 곳이 많기 때문이란다. 하긴 산을, 숲을,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원형대로 보존하려면 사람의 발길이나 손길이 닿지 않는 편이 가장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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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 남짓 눈꽃마을 오솔길을 걸었다. 마지막으로 내려오던 길은 어찌나 경사가 가파르던지 나는 나중에 아예 주저앉아 엉덩이로 길을 밀면서 내려왔다. 그렇지 않고서는 앞으로 고꾸라지거나 발목을 접지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길은 아무래도 다른 길로 우회를 해야겠는데요, 정 사무장이 말했고 나 역시 동의했다. 가장 가파른 길이 끝난 곳 바로 아래는 밭이었다. 감자밭이 끝없이 이어지는 곳이 대관령이 아니던가. 특히 눈꽃마을은 씨감자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감자는 역시 대관령 감자가 최고란다.

감자밭
 감자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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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2박3일 일정의 대관령 바우길 도보여행은 막을 내렸다. 대관령 바우길 2,3구간은 길을 정비하고 구간을 확정한 뒤에 개방할 예정이지만, 그게 언제쯤 가능할 것인지 확답은 듣지 못했다. 아마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렇지만 대관령눈꽃마을과 미리 연락한다면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대관령 바우길 3구간 눈꽃마을 오솔길(8.8km)
눈꽃마을산촌생태체헙장 → 삼거리 → 숲길 → 능선길 → 마을길 → 눈꽃마을산촌생태체험장


태그:#도보여행, #대관령바우길, #대관령눈꽃마을, #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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