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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266번지 화재현장에서 바라본 타워팰리스. 대조가 인상적이다.
 포이동 266번지 화재현장에서 바라본 타워팰리스. 대조가 인상적이다.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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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가, 화장실에서 조그맣지만 눈이 가는 전단을 보게 되었다. 매학기 초가 되면 학교 이곳저곳에 넘쳐나는 동아리 신입회원 모집 전단 중 하나였지만, 공부방을 함께 할 선생님을 모집한다는 그 전단을 유심히 보게 된 것은 까다로운 가입조건들 때문이었다. 두세 차례의 사전 오티를 꼭 참여해달라, 수업 스케줄을 꼭 지켜달라, 중간에 선생님들이 그만둘 때 아이들이 상처를 받으니 일정기간을 채우지 못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지원하지 말아 달라….

규모가 크지 않아 보였음에도 학생들의 지원을 주저하게 만드는 까다로운 조건들, 그러나 아이들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묻어났던 그 전단 속의 공부방은 바로 포이동 인연 공부방이었다. '강남구의 판자촌'으로만 알고 있던 포이동은 이후에도 매학기 초 화장실 한 켠의 신입교사 모집 전단으로 기억 속으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포이동은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지난 19일 일요일 어머니가 다니시던 교회의 연합예배를 따라가게 됐다. 강남에 있는 판자촌에 불이 나서 예배드리러 간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포이동 공부방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현장에 이르러 '포이동 266번지'라는 현수막을 보는 순간, "아, 그 포이동에 불이?" 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재현장으로 들어서자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말 모든 것이 까맣게 타 버린 모습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특히 불에 탄 가재도구들 사이로 보이는 아이들의 낙서조각들과 장난감들에 마음이 아파왔다. 아름다운 양재천과 그 너머로 보이는 타워팰리스와는 너무도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6월 19일 포이동 266번지에서 열린 연합예배에서 포이동 상황을 전하고 있는 조철순 대책위원장.
 6월 19일 포이동 266번지에서 열린 연합예배에서 포이동 상황을 전하고 있는 조철순 대책위원장.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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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교회와 대한성공회 나눔의 집 등이 함께한 연합예배는 무거운 마음으로 가득 차 숙연했다. 예배 후 마이크를 잡은 조철순 대책위원장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포이동 266번지의 역사와 현재 상황을 전했다. 독재시절 포이동으로 강제이전됐지만 부당한 행정처리로 주민등록도 없는 불법점유자로 낙인찍히고 지금까지 이자가 붙는 토지변상금을 떠안게 된 지난 30년을 이야기하면서 조철순 대책위원장님은 눈물을 보였다. 그나마 2009년에 주민등록을 되찾고 강남구청과 서울시청 측이 주민들과 함께 포이동 문제를 논의해 보겠다고 약속했지만 화재 이후에는 임대주택으로의 이전만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어 조철순 대책위원장님은 판자촌에서의 부모처럼 아이들을 돌봐줬다는 포이동 공부방 선생님들 이야기를 꺼내셨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산다는 강남 한복판의 판자촌 포이동 266에서 자칫 엇나갈 수 있던 아이들이지만 삐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커나갈 수 있었던 건 공부방 선생님들 덕분이라는 것이다.

신입교사 모집 전단에서 느꼈던 것처럼 포이동 공부방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자 진심 어린 벗이 되어주고 있는 듯했다. 예배가 끝나고 마을을 조금 더 둘러보고 난 후 인사를 드리고 나섰지만 그날 이후로도 포이동 266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생각 끝에 포이동 266과 공부방을 다시 찾기로 했다.

다시 찾은 포이동 266번지

장마 전 복구작업이 한창이던 포이동 266번지.
 장마 전 복구작업이 한창이던 포이동 266번지.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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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난 25일 토요일, 사고 13일째를 맞는 포이동 266은 쏟아지는 장맛비에도, 마을 주민들과 사람연대, 그리고 각지에서 찾아온 개인 참여자들이 모여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기자와 친구들은 때마침 점심시간에 도착해 마을회관에서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포이동 266에서는 화재 이후부터 아침·점심·저녁을 주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 지난 13일까지는 포이동 266 맞은편에 위치한 대한적십자 남부혈액원에서 식사를 제공했으나 이후에는 여기저기에서 지원받은 식품과 식판 등으로 주민들이 직접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큰 화재가 났지만 포이동 266이 버틸 수 있는 이유를 오순도순 함께 식사하는 모습에서 엿볼 수 있었다. 기자가 식사하던 마을회관 2층 또한 마을상황을 여기저기 알리느라 분주한 대책위원회, 마을소식을 직접 듣기 위해 각지에서 방문한 사람들, 복구 작업에 한창인 공부방 선생님들과 개인 봉사자들로 북적였다. 식사하면서 신지혜 공부방 선생님에게 간략한 마을상황을 전해들었다.

- 화재피해는 어떻게 되나.
"96가구 중 21가구를 제외한 75가구가 화재피해를 입었다. 60가구는 전소, 15가구는 반파했다."

- 화재피해를 입은 마을주민들은 어디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지금 밥을 먹고 있는 이곳 마을회관이 다행히 화재피해를 입지 않아서 1층에서 여자주민 들이 지내시고, 3층에서 11명의 아이들과 예전에 공부방 선생님으로 활동하던 분들이 함께 지내고 있다. 남자주민 분들은 야외천막에서 지내신다. 화재피해를 입지 않은 21가구에서도 주민 분들이 흩어져서 생활하고 계시다. 화장실 또한 마을회관의 두 개와 마을 공동화장실 한 개 이렇게 세 개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들었다.
"직접적으로 화재로 피해를 입은 주민은 없었지만, 화재 당일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 한 아이가 응급실에 다녀왔다. 화재 이후에도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 전에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할머니들이 많이 넘어져 다치셨다. 주민들 중에 워낙 50대 이상이 많으셔서 감기 몸살이나 신경성으로 편찮으신 분들은 항상 있다. 50대 이상이 많은 포이동 266이기 때문에(주민 185명 중 50대 이상 약 60명) 화재 당시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복구작업 중인 마을에서 장마와 앞으로 다가올 폭염을 견뎌내려면 많은 의료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 강남구청 측에서 의료연계는 해주지 않았나.
"구에서 병원 몇 군데를 지정해줬지만 거동이 불편하신 주민 분들이 많아 한계가 있다. 그 외에 알음알음 지원해 주시기로 한 경우가 있어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하게 될 예정이다. 오늘은 복구작업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연대의 행동하는 의사회에서 진료지원을 나오기로 했다."

- 강남구청이나 서울시에서 지원한 내용은 없는지.
"솔직히 화재 이후부터 13일째 포이동에서 쭉 함께했지만 구나 시에서 먼저 도와준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병원 연계도 동사무소에 먼저 지원요청을 해서 화재가 나고 일주일 정도 후에 이뤄진 것이다. 다만 당장 학교에 가야 하는 교과서와 교복이 타버린 아이들의 학교 측에 물품을 지원해달라는 전달을 해줬고 가방 정도를 사줬다. 학교에서의 지원도 학교마다 잘 신경써주지 않은 학교도 있어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들께 전화를 할 예정이다. 강남구청과 서울시가 협의해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했지만 주민들과 공대위는 거부하고 있는 입장이다."

포이동 266번지는 단지 임대주택 이전으로 해결될 문제 아냐

여자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포이동 266번지 마을회관 1층.
 여자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포이동 266번지 마을회관 1층.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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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다고 소문난 강남구에서 이렇게 큰 화재가 발생했는데 아이들의 교과서나 노인들의 의료지원 등 기본적인 것마저 지원하지 않는 태도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졌다. 식사 후 더 많은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강남구청이 내놓은 임대주택 제공을 주민들이 왜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를 물어보아 포이동 30년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포이동 266번지는 1981년 정부가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넝마주이 등을 당시 서울에서 외진 곳들에 분산수용(강제이주)하면서 당시 포이동 200-1번지라는 이름으로 생겨난 마을이다. 즉 처음부터 주민들을 포이동 266번지에 살게 한 것은 정부이며, 아무것도 없던 황량한 땅을 일구어 마을을 만든 것은 주민들인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주민들을 임대주택으로 내몰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1988년 올림픽이 끝나고 사인만 하면 된다며 주민들에게 자활근로대를 그만두는 각서를 쓰게 하고, 행정대집행으로 진행된 강남구 지역정리에서 포이동 200-1번지는 포이동 266번지로 바뀐 구역에서 빠지게 되었다. 즉 200-1번지에 버젓이 살고 있던 주민들이 이름만 바뀐 포이동 266번지에서는 살고 있지 않은,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유령'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불법점유자로 처리된 이들에게는 토지변상금이 따라붙게 되었다. 1990년 당시에는 30만 원만 내면 된다고 했던 토지변상금이 현재 이자까지 해서 가구당 8천만 원씩이다.

이 때문에 포이동 주민들은 통장을 만들 수도, 포이동에서 나와 월세나 전세를 얻을 수도 없다. 이것이 주민들이 임대주택 이전을 거부하는 하나의 이유이다. 임대주택으로 이전하려면 500~1000만 원의 보증금을 내야 하는데 토지변상금 명목으로 보증금이 압류되어 다시 거리로 내몰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강남구청이 제안한 임대주택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하나 반지하 주택으로 주민들은 언젠가 폐쇄될 공간을 임대주택으로 제공한다는 정부의 언론플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임대주택 제안은 화재가 나기 이전까지 서울시청과 강남구청이 마을을 방문하고 주민들의 요구사항이던 강제이주 인정, 토지변상금 철회, 점유권 및 주거권 보장에 대해 조사를 강구하고 있던 것을 뒤엎는 결정이다. 2003년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를 결성한 이후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 대표들과 직접 만나 사태해결을 약속하고 2009년 주민들이 주민등록에 등재되며 포이동 문제가 해결되나 싶었더니 이번 화재 이후로는 임대주택을 제공한다며 태도가 바뀐 것이다.

하지만 포이동 266 주민들이 임대주택 이전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곳 포이동 266번지가 그들의 생계를 이어가는 삶터이자 30년을 이곳에서 함께 해 온 이웃들이 있는 삶터이기 때문이다. 포이동 266번지는 마을이 생긴 이래로 주민들의 80% 이상이 판자촌 내부에 있는 고물상에서 생계를 이어온 곳이다. 그래서 임대주택 이전은 그들의 일터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또한 주민들이 임대주택으로 뿔뿔이 흩어질 경우 지금까지 포이동 주민들을 버티게 해 줬던 공동체의 끈이 끊어지게 된다. 포이동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사람연대의 행동하는 의사회, 포이동 인연 공부방 등이 함께하고 있다. 노인 인구가 30%에 이르고 미성년자의 40%가 조손가정이거나 한부모가정인 포이동 주민들의 상황을 생각할 때, 포이동 공동체가 해체될 경우에 받을 타격은 단순히 집을 잃는 것의 문제 이상일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포이동 266번지의 문제가 단지 임대주택 이전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또한 이번 화재에만 초점을 둘 일도 아닌 30년의 긴 이야기가 있는 문제인 것임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포이동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던 학교에서 본 교사모집 전단 이야기를 꺼냈다.

주민들이 왜 그곳에 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해줬으면

평화캠프 포이동 인연공부방 신지혜씨.
 평화캠프 포이동 인연공부방 신지혜씨.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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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모집 전단에 까다로운 자격조건을 건 이유가 있었나?
"인연 공부방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 2005년 겨울이었다. 당시 인연 공부방은 포이동 266번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사회당 학생당원들이 일상적 연대를 고민하다가 만들게 된 것인데, 한번도 먼저 손을 내밀며 다가온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당시 아이들은 거부감을 보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도 마음을 열게 되었지만 여전히 포이동 인연 공부방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한 '무료과외' 식으로 생각하고 지원해오는 학생들은 같이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포이동 공부방은 단순히 아이들의 성적을 올려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재미있어 하는지를 같이 찾고, 경험이 폭이 좁은 아이들이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경험을 해 보게 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배경 또한 약자이며 사춘기인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우리가 찾는 교사이기 때문에 포이동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전오티 등을 꼭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 공부방은 어떻게 운영되나.
"월, 수, 금 5시부터 9시까지 1:1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학생들은 미취학부터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 포이동 266번지 총 17명 중 13명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은 30명이다. 주로 숙제를 함께 하고 아이들이 심심해하기 때문에 함께 놀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 화재 이후에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화재 이후에는 복구작업 때문에 수업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던 대학생들이 현재 복구작업에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분들이 야외에 공간을 마련해주셔서 다음주부터 수업을 재개할 생각이다. 아직 아이들이 많이 놀란 상태라 바로 이전과 같은 수업을 하기보다는 이번 일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 앞으로 공부방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공부방이 안정되고 나면 아이들과 함께 인권교육을 하고 싶다. 아이들 또한 사회적 약자이지만 다른 사회적 약자를 바라볼 때면 보통 사람들처럼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시각을 함께 공부하는 프로그램을 짜고 싶다."

이번 포이동 화재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지만, 단순히 '불쌍하다'는 시각이 아니라 화재 이전의 포이동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이 왜 그곳에 계속 살아야 하고 살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신지혜씨의 마지막 당부였다. 모두가 장마로 투덜대는 지금도 복구작업으로 분주한 포이동 266번지가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 - 물품 지원 및 문의 : 담당자 010-6208-2393 (물품 발송 시 주소: 서울시 강남구 개포4동 1266번지)
- 지지방문 및 화재 잔재 치우기, 주거 복구 작업 참여 문의 : 담당자 010-2731-2676-

- 힘내라! 포이동 문화제
일시 : 2011년 7월 3일(일) 19시부터
장소 : 포이동266번지 마을(대한적십자사 서울남부혈액원 옆)
지하철 이용 시
3호선 매봉역 4번 출구 → 강남수도사업소 → 오던 방향 앞 양재천을 건너면 바로 오른쪽 마을
차량 이용 시
양재역 → 영동2교 지나서 유턴 → 뚝방길 → 남부적십자혈액원 바로 오른쪽 마을



태그:#포이동, #화재, #공부방,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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